[데스크 칼럼] 해양수도 부산, 해양부시장이 필요하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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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경제부 차장

해수부 이전으로 해양수도 ‘골든 타임’
세계적 경쟁력 있는 하드웨어 갖췄지만
해양 자원 구슬 꿰어낼 컨트롤 타워 부재
전문성 갖춘 해양부시장직 신설, 권한 줘야

“부산에 분명 기회가 왔고, 실행해 옮겨야 할 타이밍인데 위원회 만들고 계획만 세우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계획이 없는 게 아니에요. 아이디어가 없는 게 아니에요. 전문가들이 오랜 기간 공들여 만든 계획들이 다 있어요. 계획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라 실행할 사람이 없는 거죠. 더욱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할 때입니다.”

“해양수산부가 부산에 온다고 해도 엄밀히 말해 해수부나 유관기관들은 전국구거든요. 해수부나 기관들이 직접 부산을 위해 뭘 해줄 수는 없어요. 부산시가 알아서 잘 활용하고 부산 것으로 만들어야 부산이 진짜 해양수도가 되는 거죠.”

부산이 진정한 해양수도로 거듭나려면 부산시 내에 ‘해양부시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부산이 해양수도로 도약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맞이한 만큼, 해양 관련 전문성과 결정 권한이 있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부산이 가진 하드웨어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세계 7위 컨테이너 항만, 세계 2위 환적 허브라는 물리적 위용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해양 관련 기능들이 부산을 중심으로 집적돼 있어 부산이 가진 여건을 부러워하는 나라와 도시들도 많다. 하지만 부산항이 세계적인 물동량을 처리하며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사이, 정작 그 화물과 선박에 얽힌 부가가치는 다른 도시나 해외로 고스란히 흘러가고 있다. 예컨대 해양금융의 주도권은 여전히 서울과 해외에 있고, 해양보험이나 법률 서비스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열심히 땀 흘려 화물을 나르고 있지만, 그 과실은 다른 도시들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부산이 실속을 차리지 못하는 이유로 부산이 가진 훌륭한 하드웨어를 구동할 강력한 운영체제, 즉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점을 드는 이들이 많다. ‘부산시 고위직에 얘기했더니 한 귀로 흘리더라. 몇 번 얘기했는데 해양엔 전혀 관심이 없더라’며 아예 입을 닫아버린 전문가도 있다.

하물며 민간기업들도 해수부 이전에 맞춰 발 빠르게 해양 관련 조직을 새로 만들거나 키우는 판에 부산시는 ‘해양농수산국’ 틀에 아직 갇혀 있다. 해양산업은 항만물류, 해운, 해양금융, 해양관광, 해양바이오, 해양에너지, 친환경 선박기술, 스마트 항만 등 도시의 경제, 산업, 일자리와 직결된 거대 산업이다. 항만 재개발은 도시 계획과, 해양금융은 금융 정책과, 해양 스타트업 육성은 창업 지원과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국 단위 조직은 다른 실·국과의 수평적 협력을 이끌어내고, 해수부, 부산항만공사 등 유관기관을 아우르는 수직적 조율을 해내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부서 칸막이에 막혀 시너지 효과는 나지 않고, 좋은 계획들은 서랍 속에 잠들게 된다.

해양부시장은 이 칸막이를 허물고 흩어진 역량을 한데 모으는 ‘사령관’이 돼야 한다. 부시장의 책상에는 부산의 미래 먹거리가 될 해양 신산업 육성 로드맵이, 머릿속에는 글로벌 투자 자본을 유치할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때로는 부산항만공사와 머리를 맞대고, 때로는 중앙정부를 상대로 규제 혁신을 설득하며, 부산의 해양 자산을 어떻게 ‘돈’과 ‘일자리’로 바꿀 것인지를 현장에서 지휘하고 투자를 이끌어내야 한다. 싱가포르, 로테르담 등 세계 유수 항만도시들과 교류하고, 국제 해양박람회 등을 유치하며 해양수도 부산의 브랜드 가치도 높여야 한다. 부산의 해양산업, 인재, 재정, 국제협력까지 지원할 수 있는 해양수도특별법 제정도 이끌어내야 한다.

국장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지 않느냐 반문할 수 있겠지만, 순환보직으로 수시로 바뀌는 국장이 해양수도 부산을 위한 전략을 실행하기에는 한계가 많다. 조직 규모나 예산도 턱없이 적다.

이는 결코 자리 하나 늘리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부산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투자’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시는 ‘항만·경제 부시장’을 중심으로 항만공사, 정부, 기업과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세계 2위 해양도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부산도 해양부시장을 중심으로 단순 물류 허브를 넘어 해양금융, 연구개발, 법률 서비스가 어우러진 고부가가치 해양산업 클러스터로 도약해야 한다. 이는 단순 항구도시와 해양수도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다.

해수부, 해양 관련 기관들의 부산 이전은 그저 ‘손님맞이’로 끝날 이벤트가 아니다. 부산의 미래 성장동력을 해양에서 찾을 수 있는 다시 오기 힘든 ‘골든 타임’이다.

“한강이 바다를 이길 수 있겠나! 부산 함 놀러 온나.” 한 달 전 제53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서울 휘문고를 꺾고 우승컵을 거머쥔 경남고 야구부 선수가 환희에 차 방방뛰며 한 말이다. 부산 시민들은 이 정도로까지 벅차 있다. 부산시도 이 정도는 돼야 해양수도 타이틀을 가져갈 자격이 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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