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청년 담론에 가려진 중장년의 비애
이동수 세대정치연구소 대표 공모 칼럼니스트
한국 사회에서 저항(86세대)과 자유(X세대)의 상징이었던 청년이 사회적 약자로 인식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후반부터다. 당시의 청년 문제는 구조적인 측면이 강했다. ‘치솟는 등록금에 시급 3000~400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대학을 졸업했더니 눈앞에 주어진 일자리라곤 비정규직뿐이었다’라는 이야기는, 개인의 별난 경험이 아니라 세대 전반이 마주한 문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그 시기가 대한민국이 본격적으로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때였기 때문이다. 방아쇠를 당긴 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의 산업이 발전하면서 우리 수출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한국 경제를 뜨겁게 달궜던 중국발 호황의 열기가 식어갔다. 2000년대 중반까지 5%를 넘나들던 경제성장률은 2010년대 들어 2~3%대로 주저앉았다.
상대적 소득 높아 각종 정책에서 제외
가난한 '4050' 냉혹한 현실에 방치돼
40대 사망 원인 암 아닌 자살이 1위로
반면 정부·지자체 청년 위한 정책 경쟁
사회 약자라는 공감대 온갖 지원 나서
세대별 정책 현실 맞게 재조정 나서야
인구구조도 유리하진 않았다. 당시 청년들은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였다. 이들은 부모만큼 인구수가 많아 ‘에코 세대’라고도 불렸다. 2000년대에 태어난 요즘 20대 초중반은 나이마다 5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반면 1990년대 초반에는 매년 약 70만 명이 태어났다. 많은 수가 일자리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데 이들을 받아줄 일자리는 점점 사라졌다. 청년들은 노동시장에서 ‘슈퍼 을(乙)’일 수밖에 없었다. 청년을 착취한다는 의미의 신조어 ‘열정페이’가 유행했다. 2015년 ‘헬조선’이 사회적 화두로 부상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청년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그즈음이었다. 전국의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2015년을 전후해 청년 관련 부서를 신설했다. 다양한 청년 정책들이 속속 도입됐다. 부산에서도 2015년 청년취업지원팀이 신설된 이래 청년 지원 전담 조직이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2017년엔 부산광역시 청년 기본 조례가 제정되며 청년들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청년 정책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결과, 청년 정책은 양적으로 꽤 많이 성장했다. 일자리·주거·참여 등 분야를 막론하고 여러 분야에서 청년들을 위한 정책이 도입되었다. 구직 비용을 지원하는 건 기본이다. 일정 기간 주택 월세를 보조해 주는 곳도 적지 않다. 부동산 중개보수나 이사비를 지원하는 지자체도 있다. 말 그대로 ‘없는 정책이 없는’ 실정이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청년은 사회적 약자’라는 컨센서스가 형성되어 있다. 반대로 중장년은 상대적 강자로 인식된다. 아마 이 시기가 개인의 생애주기에 있어 사회적 지위와 소득이 가장 높은 때이기 때문일 것이다. 통계청이 지난달 25일 발표한 ‘2023년 국민이전계정’에서도 한국인은 45세 때 노동소득이 가장 높은 걸로 나타났다. 이때 정점을 찍은 개인의 ‘흑자’는 점점 줄어 61세부터는 쓰는 돈이 벌어들이는 돈보다 많은 ‘적자’로 돌아섰다.
같은 날 발표된 ‘2024년 사망원인통계 결과’는 또 다른 장면을 보여주었다. 40대 사망원인에서 자살이 암을 누르고 1위로 올라선 것이다. 40대에서 자살이 1위를 차지한 건 1983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처음이다. 특히 40대 남성의 자살률이 2023년 대비 2024년 18.8%나 증가해 다른 집단을 압도했다. 경제적 어려움이 주된 원인일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의 핵심 주체로 활동할 나이이지만, 그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느끼게 될 압박감과 상실감도 더욱 클 거란 이유에서다. 전체 고독사에서 중장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노인층을 압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그간 청년층은 약자로서 시혜적 지원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많은 지자체가 이들을 하나라도 더 돕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그 결과, 당사자들조차 필요성에 의문을 가지는 정책이 넘쳐나게 됐다. 반면 중장년층은 생산성이 높은 시기라는 이유로 정책 대상에서 소외된 경우가 많았다. 온라인에서도 “왜 청년 정책만 있고 4050 정책은 없냐”는 중장년들의 넋두리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 집단이 소득·자산에 있어서 평균적으로 청년·노인보다 여유로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평균이다. 개개인의 사정을 따져보면 그럴 수 없다. 어쩌면 양질의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자산을 형성하지 못한 중장년들이 직면한 현실은 청년들이 처한 것 이상으로 냉혹할 것이다. 새벽 인력시장에 나온 일용직 노동자들의 면면만 보더라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정체성은 계층이 가지는 문제를 가리곤 한다. 중장년층이 겪는 위기가 다른 집단에 비해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거다. 40대 자살률이 급증했다는 통계는 그 현실에 경고음을 울리는 것만 같다. 세대별 정책에 리밸런싱(rebalancing)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