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회적경제를 넘어 ‘사회연대경제’로의 전환
배광효 도시행정가·사회혁신연구원장
기후 위기, 고령화, 지역 소멸 대응
복합적 사회문제 해결 도구로 주목
부산 사회목적기업 육성 도시
법·제도·금융 시스템 뒷받침 돼야
지속 가능한 새로운 성장 디딤돌
부산은 산업화 과정에서 이루었던 성과들에 대한 유지·발전과 함께 고용불안·지역 쇠퇴·양극화라는 사회문제 해결의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포용적 성장’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고, 바로 이 지점에서 ‘사회연대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활용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지만 사회연대경제는 단순히 이윤, 성장만을 추구하는 경제가 아니다. 유엔과 OECD 그리고 유럽의 국가들은 이미 이 길을 앞서 걷고 있다. 프랑스는 사회연대경제법을 제정해 사회목적기업을 법적으로 정의하고 세제 혜택과 공공 조달 정책들을 연계했다. 스페인은 사회연대경제를 국가 경제의 독립 부문으로 인정했다. 우루과이, 튀니지 등도 사회연대경제 기본법을 제정해 고용과 지역개발 정책의 중심에 두고 있다. 다양한 국제기구와 국가들에서 사회연대경제 활성화를 정치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사회문제 해결의 새로운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최근 ‘사회적경제’ 용어를 유엔, ILO 등 국제기구 공식 용어로 통용 중인 사회연대경제(Social and Solidarity Economy)로 통일하기로 했다. 또한, 사회연대경제 기본법 제정을 추진하며 사회목적기업이라는 포괄적 개념을 도입하려 한다. 여기서 사회목적기업은 협동조합과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등을 묶은 사회적경제 기업뿐만 아니라 소셜벤처, ESG 친화 기업까지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다. 기존 사회적기업 제도가 취약계층 고용과 서비스 제공 중심으로 협소하게 운영되었다면 사회목적기업은 기후 위기, 고령화, 지역 소멸 같은 복합적인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광범위한 기업 및 비즈니스모델을 아우른다. 민간 혁신기업과 사회적경제 조직이 제도권 안에서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법적 틀이 마련되는 셈이다.
부산은 해양·항만·관광 도시라는 특성을 살려 돌봄·환경·문화예술·청년창업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목적기업을 키워낼 수 있다. 지난 8년여에 걸쳐 운영되고 있는 공공·민간 협력 모델인 ‘부산경제활성화지원기금(BEF)’은 선제적으로 지역 내 사회목적기업에 대한 지원·투자를 통해 기업의 경제적 성장과 사회문제 해결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왔다. 오늘도 많은 사회목적기업이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지역 대학, 연구소, 기업,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사회적 가치 창출을 앞세운 경제 생태계를 만든다면 이는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부산 경제의 새로운 성장 디딤돌로 작용할 것은 자명하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법적 기반 확립이다. 사회목적기업의 범위를 명확히 하고, 창출된 사회 성과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지역 내 생태계 조성이다. 부산시 차원의 사회연대경제지원센터를 강화하고, 구·군 단위 생활밀착형 실험 공간을 확산해야 한다. 셋째, 사회적 금융의 활성화다. 사회 투자 펀드, 지역 기반 임팩트 금융을 확대해 기업 자립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시민 참여와 거버넌스 구축이다. 행정·기업·시민이 함께 사회문제 해결의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협치 모델이 필요하다. 나의 이익이 상대방의 이익을 침해하는 거버넌스 모델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0년대 중반, 사회적기업과 관련한 비즈니스 연구가 동시에 진행되었던 최초의 도시가 부산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최근 정부의 사회연대경제 정책에 부응하는 광역 단위의 최초 연구 또한 부산에서 진행되었다. 부산시는 ‘사회적기업 육성계획(2026~2030)’의 수립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 기관을 선정하고 사회적기업과 함께 사회연대경제를 동시에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 개발을 시작했다. 사회연대경제에서도 부산이 앞장서서 모범적인 정책과 비즈니스모델을 발굴, 실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회연대경제는 지금까지 보여왔던 ‘지원금 의존적 비즈니스모델’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율성과 혁신, 지역공동체의 힘을 기반으로 한 ‘사회연대경제 도시 부산’으로 거듭날 때,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키워내는 지속 가능한 도시로의 전환이 가능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부산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