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금융 대전환 시대, 지역금융의 존재 이유와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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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인 BNK금융그룹 회장

행원 시절 지점에서 근무하던 때가 생각난다. 당시 발 디딜 틈 없던 객장은 단순한 금융창구 이상이었다. 시민들 일상의 중심이었고 대한민국 수출 전초기지의 맥박이 뛰던 현장이었다. 섬유·신발·의류·수산물가공품 등 대표 수출품들은 지역은행 창구를 지나 세계로 향했다. 월말이면 셔터문이 내려가도 어음 할인과 외환 업무를 위한 거래처 직원들로 붐볐다.

당시 지역은행은 시중은행보다 앞선 기업대출·무역금융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 문턱은 낮았고 대응은 빠르며 무엇보다 지역기업의 리듬을 가장 잘 이해하는 파트너였다. ‘지역은행’에 일이 몰리는 건 당연했다. 이름 없는 수출업자들의 꿈은 그렇게 지역은행 유리창 너머에서 시작되었다. 지역은행과 지역경제도 활황기였고 자부심도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많은 것이 변해갔다. 산업 구조가 바뀌었고 공장은 해외로 이전했으며 부산은 ‘산업의 중심지’ 타이틀을 잃어갔다. 금융도 그 흐름을 따라갔다. 시중은행의 공세뿐 아니라 인터넷전문은행이라는 경쟁자도 나타났다. 지역은행의 존재감은 작아졌고 생존의 고민까지 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지역기업들의 현실도 고달팠다. 수도권 중심 심사와 규제 속에서 지역은행은 여전히 숨 쉴 틈 같은 존재였다. 그렇다고 비가 오는데 우산을 뺏을 수는 없었다. 지역은행은 지금도 지역의 체온과 정서에 가장 가까운 금융의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의 ‘금융의 대전환’ 제안은 이런 지역금융에게 다시금 ‘존재의 이유’를 묻고 있다. 자본·자산의 성장 중심에서 벗어나 산업과 지역을 살리는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 이는 단순히 규제나 정책을 조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자금흐름·금융기능·금융생태계를 노동·산업·미래성장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정부 차원의 큰 그림이다.

해양수산부를 포함한 유관기관 부산 이전 가시화, 국정과제에 포함된 북극항로 개척 어젠다로 인해 지역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역금융이 단지 ‘지역에서 영업하는 금융’이라면 그 존재 이유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지역을 읽고 지역산업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상생형 금융, 정책금융과 민간의 가교 역할을 하는 신(新)금융플랫폼으로 발전해야 한다.

또한 순이익의 약 15%를 지역에 환원하고 70% 이상 일자리를 지역인재에게 제공하고 있지만 지역금융은 앞으로 그 생산적 역할은 더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지방금융의 존재 이유가 곧 국가균형발전의 핵심전략이자 ‘금융 대전환’의 기반 인프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 객장을 찾던 거래처는 예전 같은 호시절은 아니지만 여전히 지역을 지키고 있다. 간혹 “지역에만 너무 몰두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들을 때면 필자는 지역 기업인들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누군가는 함께 경청하고 공감하며 손을 잡아줘야 한다. 그들과 함께 지역의 옛 명성을 되찾고픈 지역금융 수장으로서 작은 희망이기도 하고 자존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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