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부산 로컬의 맛, 바다를 건너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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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 경제부 차장

보리에의 '바비킴', 일 도시락 문화와 만남
삼진어묵, 해외 시장서 전통의 세계화 시도
소비자들은 스토리 담긴 로컬다움에 열광
부산, 로컬브랜드 글로벌화 교두보로 부상

일본 후쿠오카의 작은 식당에서 매일 김을 굽는 연기가 퍼진다. 식당 안에서는 20대 일본 여성들이 라면 국물에 소주잔을 부딪친다. 한국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을 직접 실현하고 싶어 찾아온 손님들이다. 직접 참기름을 짜고 김을 굽는 퍼포먼스로 충무김밥을 내놓는 ‘바비킴’은 부산 기업 보리에가 만든 새로운 분식 브랜드다. 부산 사람에게는 흔하디흔한 분식 메뉴지만, 일본 젊은 세대에게는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특별한 무대가 된다. 분식이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한류 콘텐츠와 맞닿은 문화적 경험으로 소비되는 순간이다.

바비킴은 후쿠오카에서 첫발을 뗀 뒤 현지 호응을 바탕으로 일본 전역 확장과 미국 진출을 준비 중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해외 경험을 토대로 다시 한국 시장에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하겠다는 구상이다. 한국에서 이미 수없이 소비되던 분식이 해외에서 ‘경험’이라는 가치로 재해석되고, 그 성공이 다시 국내 시장으로 역류하는 흐름이다. 작은 매장이지만 글로벌 도전의 전진 기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부산의 전통 어묵 브랜드 삼진어묵은 또 다른 길에서 세계화를 시도하고 있다. 1953년 자갈치시장에서 출발한 삼진어묵은 이미 부산과 전국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진 향토기업이다. 오랜 세월 부산 시민의 일상식이자 관광객의 기념품이었던 어묵은 이제 K푸드의 대표 주자로 해외 무대에 서고 있다. 호주 시드니, 베트남 호찌민, 대만 타이베이 등 해외 주요 거점에 매장을 열며 글로벌 소비자를 직접 만나고 있다. 어묵은 해외 소비자들에게 생소한 음식이지만, 단백질이 풍부하고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특성 덕분에 간편식·건강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바비킴은 오랜 F&B 경험을 가진 기업이 새롭게 내놓은 도전적 프로젝트다. 한국 드라마와 K컬처의 힘을 빌려 ‘문화 체험형 분식’을 만든다. 삼진어묵은 70년 가까운 역사를 기반으로 축적된 브랜드 자산을 활용해 ‘전통의 세계화’를 꾀한다. 둘 다 부산이라는 지역성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같은 궤적에 있다.

두 사례에서 찾을 수 있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지역의 정체성을 지켜내는 일, 현지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일, 음식을 단순한 상품이 아닌 문화적 경험으로 바꾸는 일이다. 충무김밥은 남해안 선원들의 소박한 식탁에서 시작해 일본의 도시락 문화와 만나 새로운 메뉴가 됐고, 어묵은 자갈치시장의 전통 먹거리에서 출발해 오늘날 글로벌 간편식으로 진화했다. 바비킴 매장을 찾은 일본 젊은 세대가 드라마 속 장면을 재현하듯, 음식은 이제 국경을 넘어 문화를 체험하는 언어가 되고 있다.

여기에는 글로벌 시장의 변화도 깔려 있다. 세계 소비자들은 대량 생산으로 표준화된 상품만을 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지역성·스토리·경험이 결합된 상품을 선호한다. 글로벌 브랜드가 제공하지 못하는 틈새를 로컬 브랜드가 채운다. 부산에서 만들어진 어묵, 부산에서 온 분식이 해외에서 힘을 얻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로벌 시대의 경쟁력은 오히려 ‘로컬다움’에서 나온다.

부산이라는 도시의 특수성도 빼놓을 수 없다. 부산은 항구도시로서 바다를 통해 세계와 이어져 온 도시다. 일본·중국은 물론 미주·유럽과도 연결돼 있고, 다양한 문화가 섞이며 외부를 향한 개방성이 생활에 녹아 있는 도시다. 국제영화제, 크루즈 관광, 마이스 산업으로 세계와 접속해 온 경험도 로컬 브랜드의 해외 진출에 힘을 더한다. 이런 토양은 로컬 브랜드가 해외 시장에 도전할 때 강점으로 작용한다. 바비킴과 삼진어묵의 글로벌 진출은 단순히 한두 기업만의 성과가 아니라 부산이 가진 문화적·지리적 자산이 어떻게 세계와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과제도 분명하다. 개별 기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해외 진출에는 자본과 네트워크가 필요하고, 현지화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불가피하다.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적극 나서서 해외 전시·팝업·브랜드 홍보를 체계적으로 연결하고,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바비킴과 삼진어묵의 사례와 같은 성과가 부산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세계화는 더 이상 대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작은 분식집이 일본 젊은 세대의 문화 체험 공간이 되고, 부산 어묵이 대양을 건너 글로벌 식탁에 오르는 시대다. 부산 로컬 브랜드의 글로벌 도전은 단순한 해외 진출이 아니라, 지역 문화의 세계화이자 도시 전략의 진화다. 후쿠오카의 충무김밥, 시드니의 어묵 매장은 부산이 세계와 만나는 새로운 창이다. 작은 가게의 불빛이 해외 거리에서 환하게 빛날 때, 그 빛은 다시 부산의 내일을 밝힌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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