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재심, 법정 밖에서 시작되는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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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법무법인 예주 대표변호사

'최말자 혀 절단 사건' 61년 만에 무죄
재심 제도 본질과 한계 동시에 보여줘

법 절차만 따졌다면 파기환송 불가능
여성단체·여론 관심 덕분에 길 열려
진실 바로잡기 어려운 현실에 씁쓸
흠결 인정 용기로 법 정의 수호해야

1964년, 18세의 한 여성이 자신을 성폭행하려는 남성의 혀를 깨물어 절단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유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과잉방어”라며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녀는 범죄자로 낙인찍힌 채 평생을 살아야 했다. 그런데 2025년 9월, 무려 61년 만에 법원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당시 행위는 명백한 정당방위에 해당하며, 유죄 판단은 잘못이었다”고 밝혔다. 이른바 ‘최말자 혀 절단 사건’은 재심 제도의 본질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재심은 이미 확정된 판결을 다시 다투는 ‘사법의 마지막 문’이지만, 그 문턱은 매우 높다. 형사소송법 제420조는 재심 사유를 제한적으로 규정한다. 유죄 증거가 된 증언이나 감정이 허위로 밝혀진 경우,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 경우, 증거 조작이나 위법한 수사가 드러난 경우, 재판에 관여한 법관이 직무 관련 범죄를 저지른 경우 등이 그것이다. 이는 확정판결의 안정성과 권위를 지키고 사법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그러나 이러한 엄격한 요건 때문에 최말자 사건도 단순한 법적 절차만으로는 재심까지 나아갈 수 없었다.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 것이 아니라 법리 해석이 달라졌을 뿐이기에, 수십 년 동안 사건은 기록 속에 묻혀 있었고, 그 전환점은 여성단체와 시민사회의 연대였다. 여성단체들이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며 피해자의 방어권을 적극적으로 주장했고, 언론이 이를 다루면서 여론이 움직였다. 1·2심은 새로운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재심 청구를 기각했지만, 대법원이 파기환송 결정을 내리면서 재심의 문이 열렸고, 결국 법원은 61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이 과정에서 법률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회적 관심과 여론의 힘이었다. 재심은 결코 법정 안에서만 시작되지 않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 성범죄 사건의 재심을 준비하면서 재심의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를 깊이 체감했다. 이미 유죄가 확정된 사건에서 새로운 증거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기록은 닫혀 있고, 수사기관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피해자의 진술만 남은 사건에서 그 신빙성을 다시 검증하거나 새로운 정황을 밝혀내기 위한 단서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 사건이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다뤄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언론이 직접 발로 뛰며 취재를 진행했고, 방송 이후 여론이 형성되자 침묵하던 사람들이 제보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증거를 찾을 수 있는 작은 실마리가 하나둘 나타난 것이다. 사법절차만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웠던 길이 언론과 여론의 도움으로 열리는 것을 보며 재심이 얼마나 사회적 힘에 의존하는 절차인지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법조인으로서 이러한 현실에 회의감도 들었다. 사법제도는 정의를 세우는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그럼에도 억울함을 풀기 위한 실마리가 언론 보도나 여론의 관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제도만으로는 진실에 다가가기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법이 진실을 찾는 도구라면, 여론은 그 문을 두드리는 힘이다. 지금의 재심 제도가 이토록 높은 벽을 가지고 있다면, 법만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최말자 사건 역시 여성단체들의 꾸준한 문제 제기와 언론의 재조명이 없었다면 61년 만의 무죄 판결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처음부터 조금만 더 치열했다면, 재심까지 갈 필요가 있었을까?” 수사기관은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사건을 송치하지 말고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 검찰은 경찰 수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위법이나 허점이 없는지 다시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법원은 “검찰이 알아서 잘했겠지”라는 안일한 신뢰를 버리고 증거를 철저히 검토하며 법리를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

최근 재심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PD가 만난 한 담당 수사관은 방송 인터뷰에서 “직접적인 증거가 없을 때는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라 생각하고 공판에 부친 것도 있다”라고 말했다. 법원이 알아서 밝혀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사건을 송치했다니, 그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수사기관이 증거를 끝까지 확보하지 않은 채 법원에 떠넘기는 순간, 사법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

재심은 사법의 마지막 양심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재심이 활발한 사회가 아니라, 재심이 필요 없는 사회다. 수사기관과 법원이 처음부터 치열하게 의심하고 검증하는 구조를 갖춘다면 억울한 유죄도, 뒤늦은 무죄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잘못된 판결 하나가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다면, 올바른 판단 하나는 한 인간의 존엄을 지킨다. 재심은 법이 멈춘 자리에서 다시 정의를 향해 나아가는 두 번째 기회다. 잘못을 바로잡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 사법의 흠결을 스스로 인정하고 고치는 용기야말로 법이 정의를 지키는 그 존엄함을 지키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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