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대법원장 청문회와 사법부 독립
민주당, ‘대선 의혹’ 청문회 추진
불분명한 제보… 근거 부족 지적
역대 정권도 사법 갈등 있었지만
헌정 사상 첫 대법원장 청문회
사법부 압박, 독립성 침해 우려
삼권분립 훼손, 국민 피해 이어져
국회가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을 청문회 증언대에 세우려 한다. 전례가 없던 일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청문회를 의결했다. 대선 전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위반 상고심 파기환송부터 한덕수 전 총리와의 비밀 회동설까지 대선개입 의혹을 오는 30일 청문회를 열어 따져 묻겠다는 것이다. ‘대선 개입 의혹’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근거는 약하다. 비밀 회동설 제보자의 신원과 발언의 맥락은 불투명하고, 당사자들은 모두 부인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현직 대법원장을 국회 증언대에 세워 정치적 추궁을 하겠다고 한다. 이는 정치 공세를 넘어 헌정 질서의 근간인 삼권분립에 대한 도전이란 비판도 나온다.
조 대법원장은 사법부 독립과 헌법상 재판 개입 금지 원칙을 이유로 불출석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에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들은 26일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출석을 촉구했다. 민주당은 고발 조치, 대법원 현장 검증 등 후속 대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부 독립은 민주주의의 기둥이다. 입법·행정·사법의 삼권분립이 제대로 작동해야 국가 권력이 균형을 이루고, 그 속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지켜진다. 그러나 최근 국회는 특정 재판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법부를 압박하는 위험한 길로 가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정치와 사법의 긴장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정권은 사법부를 늘 불편해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광우병 촛불집회 관련 판결 등에서 법원이 정부의 기대에 어긋나는 결정을 내리자, 여권은 “법원이 국민 정서를 외면한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하지만 정치적 공세 수준에서 그쳤을 뿐, 현직 대법원장을 증언대에 세우는 시도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때도 정권 말기 각종 국정농단 사건 재판이 이어지며 법원은 여론의 압박을 강하게 받았다. 청와대와 여권은 일부 판결에 불편함을 드러냈지만, 대법원 자체를 정치 청문회의 대상으로 삼은 적은 없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이른바 ‘사법농단’ 수사가 본격화되며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강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법원행정처 문건이 공개되며 재판 거래 의혹이 터져 나왔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결국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에 섰다. 그러나 이 역시 구체적 증거와 수사 과정을 통한 사법적 절차의 문제였다. 국회가 근거 없는 의혹을 앞세워 현직 대법원장에 대한 청문회를 강행하지는 않았다.
윤석열 정부 시기에도 사법부와 정치권의 갈등은 이어졌다. 정치적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올 때마다 판결이 여당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코드 판결”이라는 비난이 여권에서 쏟아졌다. 그러나 여권 역시 대법원장 개인을 겨냥한 청문회 압박 같은 시도는 하지 않았다.
이처럼 역대 정부가 사법부와 갈등을 빚은 전례는 많지만, 지금까지는 권력이 사법부를 비판하거나 불만을 표출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민주당은 대법원장을 국회 증언대에 세워 사퇴를 압박하겠다는, 전례 없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사법부에 대한 단순한 ‘간섭’을 넘어선다. 입법부가 사법부를 공개적으로 심판대에 올려놓고 길들이겠다는 신호다. 이 선례가 굳어지면, 대법원장은 정권과 국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정치가 재판을 지배하는 위험한 구조가 제도화되는 것이다.
민주당은 제보를 근거로 의혹을 제기했지만, 그 제보가 누구인지조차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으로 대법원장을 증언대에 세우겠다는 발상 자체가 비상식적이다. 국회의 면책특권을 방패 삼아 법관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태는 민주주의를 위한 특권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해치는 특권 남용이다.
사법부 독립은 법관의 특권을 위한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대통령도, 국회도, 정당도 법 위에 서지 못하도록 막는 장치가 바로 독립된 사법부다. 정치권이 이 보루를 무너뜨리면,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다. 만약 대법원장이 정치 공세 앞에 위축된다면, 앞으로 국민 누구도 공정한 재판을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다. 법정이 법과 증거가 아니라 정치의 힘겨루기에 따라 움직인다면, 법치주의는 이미 무너진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법부가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는 악순환은 이제 멈춰야 한다. 대법원장 청문회 강행은 그 악순환을 극단으로 내모는 행위다. 민주당은 국민 앞에 사법부 독립을 존중하겠다는 정치적 책임감을 보여야 한다. 정치권은 더 이상 사법부를 흔들어선 안 된다.
강희경 사회부장 himang@busan.com
강희경 기자 him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