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학수의 문화풍경] 왜 우리는 춤을 보고, 추는가
동서철학 아카데미 숲길 대표
자신과 세계 이해하는 철학적 동작
아름다움·기교 넘어 존재 진실 탐구
삶을 새롭게 사유 긍정할 기회 제공
얼마 전 울산 대학의 문화예술 아카데미에서 필자는 무용 철학을 강의하였다. 무용에 관한 철학적 토론은 주로 춤의 가치를 탐구한다. 무용 철학은 춤을 단순한 신체 움직임이나 예술 형식으로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 왜 춤을 추며, 왜 춤을 감상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무용은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관람 댄스인데 이것은 보는 춤이고, 둘째는 참여 댄스인데 이것은 추는 춤이다. 두 종류의 춤은 가치가 서로 다르다. 첫째 관람 댄스에 발레, 현대무용, 조선무용, 그리고 K팝 댄스와 같은 형식이 속한다. 이 경우 무용은 안무가가 구성하여 무용수가 무대에서 공연하는 작품이며, 관객은 객석에서 그것을 감상한다. 관람 댄스는 현실을 재현하기보다 가상의 세계를 창조한다. 발레 ‘백조의 호수’는 왕자와 백조 공주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랑의 세계를 형성하며, 마사 그레이엄의 ‘비’(Lamentation)는 슬픔에 잠긴 개인의 감정 세계를 만들며, 한성준의 ‘태평무’는 나라의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왕비의 희망 세계를 구성한다.
둘째 참여 댄스는 소셜 댄스, 클럽 댄스, 스트리트 댄스처럼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춤이다. 관람 댄스에서 무용가와 관객은 분리되지만, 참여 댄스에서는 그러한 구별이 없다. 살사나 바차타, 왈츠, 힙합 댄스, 그리고 전통 강강수월래 같은 춤이 참여 댄스의 사례이다. 참여 댄스는 극장이 아니라 축제, 놀이, 의식, 사교의 장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춤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이 물음은 관람 댄스의 경우 “왜 춤을 봐야 하는가”, 참여 댄스인 경우 “왜 춤을 추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서양에서는 20세기 초까지 춤의 담론은 관람 무용에 집중되었다. 형식론에 따르면 무용의 가치는 춤 자체에 있어서, 무용수의 기교, 안무의 구성, 그리고 움직이는 신체의 아름다움이 곧 가치이다. 반면 표현론은 춤을 무용가의 감정 표현으로 간주하고, 그 감정 표출에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반면 중국의 공자는 춤의 가치를 관객의 관점에서 평가한다, 무용 작품은 관객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주는데, 여기에 춤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떤 춤은 관객의 마음을 지나치게 침울하거나 흥분하게 만드는데, 이런 것은 나쁜 춤이다. 반면 어떤 춤은 관객의 정신을 절도 있고 조화롭게 만드는데, 이런 춤이 좋은 춤이다.
20세기 독일의 하이데거도 공자처럼 예술 작품의 가치를 그것이 관객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에서 바라보았다. 그의 진리론적 예술론을 무용에 적용하면, 춤은 인간과 세상의 진실을 깨닫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진도 씻김굿은 무용수의 기교가 훌륭하거나 몸선이 예뻐서가 아니라, 공연을 보는 관객에게 인간 유한성의 진실을 알려 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참여 댄스에서 춤의 가치는 외부인의 판단이 아니라, 참여자의 체험에 있다. 예를 들어 이슬람의 수피 댄스에서 무용수는 동그란 원을 그냥 반복해서 돈다. 거기에는 복잡한 동작 구성도 없고, 전문적 기교도 없다. 이런 춤의 가치는 춤추는 과정에서 개인이 얻는 초월적 체험에 있다. 힙합 댄스는 미국에 거주하는 아프리칸 아메리칸 그리고 라티노 청년의 저항적 표현이며, 그 반항의 자세에 춤의 가치가 있다.
19세기 독일의 니체는 참여 댄스의 가치를 가장 잘 설명한다. 인생은 고통스럽고 세상은 부조리하다. 댄스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염세적 방관적 자세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삶을 긍정하는 행위이다. 니체는 후회, 죄의식, 열등감처럼 우리의 기분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생각을 중력의 정신이라고 불렀다. 춤은 그런 중력의 정신을 극복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발레의 ‘그랑 제떼’와 동래 학춤의 ‘날음새’는 무용수가 공중으로 날아서 중력의 정신에 저항한다. 이처럼 ‘당겨내림’에 저항하는 도약은 여러 댄스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브레이크 댄스의 헤드 스핀은 머리를 축으로 삼아 온몸을 회전시키는 고난도 기술이다. 보통 머리는 취약한 부분이라 보호해야 할 영역으로 여기지만, 댄서는 관습적 신체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 머리를 오히려 힘과 균형의 중심으로 삼는다. 그 회전을 통해 몸은 정신을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장이 된다.
무용 철학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보는 춤과 추는 춤은 왜 가치가 있는가? 춤은 신체의 미나 동작의 기교를 넘어서, 인간 존재의 진실을 드러내고 삶을 긍정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무대 위의 공연에서든, 공동체의 축제 속 춤판에서든 춤은 늘 우리에게 삶을 새롭게 사유하고 긍정할 기회를 제공한다. 춤은 인간이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고, 인생의 자세를 선언하는 철학적 동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