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인공지능과 기자의 일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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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규 사회부 차장

알파고 후 바둑계 변화 다룬 <먼저 온 미래>
언론계도 낚시성·가짜 뉴스 증가에 매출 위기
신뢰성과 ‘인간의 기사’ 찾아 집중해야 할 때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를 한 인공지능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 2013년 개봉작 ‘그녀’의 배경이 바로 올해, 2025년이었다. 올해 개봉한 ‘미션임파서블’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 ‘데드레코닝’에서 톰 크루즈가 맞서 싸우는 빌런은 핵전쟁을 획책하는 인공지능 ‘엔티티’다. 인공지능은 어느새 SF에서 일상으로 훅 들어왔고,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장강명 작가의 르포 〈먼저 온 미래〉는 2016년 이세돌 9단과 구글 AI 프로그램 알파고의 대국 이후 바둑계를 취재해 인공지능이 사회에 가져올 변화를 경고한다. 인공지능 이후 바둑 고수는 예술성과 권위를 잃었고, 바둑 중계는 인공지능이 시시각각 승률을 계산해 보여주는 경마식이 됐다. 바둑의 가치와 프로 기사의 일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그 변화는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작가는 이 질문을 소설가라는 자신의 직업으로 자주 돌린다. 소설을 쓰는 인공지능이 진화해 5분에 하나씩 하루에 훌륭한 장편 288편을 써낸다면 문학의 가치와 소설가의 일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작가는 바둑계에서 ‘인간의 바둑’을 이기고 지는 승패의 서사에서 찾는 흐름이 생긴 것처럼, 문학과 같은 예술에서는 창작자의 스토리텔링과 팬덤이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기자라면 이렇게 물을 수 있겠다. 인공지능은 언론의 가치와 기자의 일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최근 소식들은 이렇다. 네이버의 인공지능 뉴스 편집 알고리즘 때문에 가짜 ‘단독’과 유명인의 SNS를 베껴쓰는 뉴스가 늘었다는 연구가 있었다. 공영방송은 인공지능이 만든 영상을 메인뉴스에 써서 논란이 됐다. 미국에서는 한 신문사가 추천도서 기사에서 15권 중 10권이 존재하지도 않는 책으로 드러나자 인공지능으로 썼다고 인정했다. 구글의 인공지능 요약 서비스 때문에 트래픽과 매출이 줄었다며 소송을 건 언론사도 있었다.

인공지능은 이용자 취향에 기반한 알고리즘의 이름으로 ‘낚시성’ 기사 생산과 소비를 부추기고 있고, 인공지능으로 요약해서 보여주는 정보 때문에 정작 기사 원문을 읽는 사람은 줄어든다. 인공지능이 만든 가짜 정보가 버젓이 기사로 유통되는 일은 지금도 들키지 않았다뿐이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가짜 추천도서 기사를 실은 미국 언론사가 인력을 20% 감축한 상태였다는 건 놀랍지도 않다.

이런 변화가 전적으로 인공지능 탓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클릭을 유도하는 기사의 폐해는 포털 뉴스 서비스가 등장했을 때부터 유구하다. 즐길 거리들이 늘어나니 기사 원문을 읽는 사람은 원래 줄고 있었다. 대규모 인력을 갖춘 기성 언론사 모델은 위기인 지 오래다. 인력이 줄고 뉴스 유통이 실시간이 되면서 기자들의 노동 환경과 삶의 질은 나아지기는커녕 나빠진 쪽에 가깝다.

대신 인공지능은 앞선 어떤 기술보다도 압도적인 능력과 속도로 이런 변화를 가속화시키고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 것이다. 인공지능이 어떤 가치를 파괴한 뒤에야 우리는 그 가치가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묻게 될 것이다. 이처럼 삶과 일의 방식을 뒤흔들 중대한 권한을 인공지능을 이끄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먼저 온 미래〉의 핵심이다.

그러니까 언론은 지금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지만큼이나 언론의 가치를 다시 묻고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시사인의 지난해 신뢰도 조사에서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은 ‘가장 신뢰하는 뉴스 프로그램’ 공동 2위였다. 미국에서는 ‘최고의 뉴스 브랜드’를 꼽는 설문조사에서 CNN 다음으로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크리에이터 조 로건이 2위를 기록했다. 언론을 언론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자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나. 인공지능은 언론에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럴듯하게 거짓말을 지어내는 인공지능의 환각 때문에 언론사의 기사가 더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신뢰성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최근 조사도 인공지능이 아니라 ‘사람’의 기사가 갖는 경쟁력에 기대를 갖게 한다. 응답자 절반 이상이 사진 대신 인공지능으로 만든 이미지를 쓰거나 인공지능에게 자료 조사를 맡긴 기사를 뉴스로 보기 힘들다고 답한 것이다.

인공지능과 연애하고 인공지능에 의존하다 목숨까지 버리는 사람들이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게 됐다. 정치인과 국제분쟁 뉴스에서 얼굴과 목소리를 감쪽같이 재현한 딥페이크도 이미 현실이 되었다. 인공지능이 사회를 어떻게 바꾸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 질문을 던지는 것 또한 인문학뿐만 아니라 언론의 역할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기 위해서 더듬더듬 인공지능을 배우면서, 쉬운 냉소와 드문 낙관을 나누면서 기자들은 오늘도 마감을 한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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