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부산 청년, 집 대신 디지털자산
심준식 비온미디어 대표
한국 사회에서 집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자산 증식의 사다리였다. 그러나 그 사다리는 부산 청년들에게 닿을 수 없는 높이에 놓여 있다. 서울 아파트가 부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 동안, 부산 청년들은 다른 선택지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디지털자산으로 향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면서 서울 청년들의 자산은 빠르게 불어났다. 집을 사거나 청약에 당첨되는 것이 곧 ‘자산 증식의 공식’이 되었고, 전세마저 투자 수단으로 변했다. 그러나 부산 청년들은 단지 고향이 부산이라는 이유로 이 사다리에서 배제됐다. 서울과 부산의 자산 격차는 단순히 집값 차이를 넘어, 세대의 미래를 가르는 출발선의 차이로 이어졌다.
부산과 서울 아파트 가격 격차 심화
세대의 미래를 가르는 출발선 우려
부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 지정
청년들에 새 일자리·커리어 토대
누구에게나 새 자산 축적 경로 열려
장기적 흐름 읽고 자산 다변화해야
부산의 현실은 냉정하다. 집값은 정체되거나 하락했고, 미분양 아파트는 수천 가구에 달한다. 청년층 인구는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며, 부산은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큰 순유출을 기록했다. 고용률 역시 전국 최저 수준에 머물렀다. 제조업과 전통 산업이 버텨주던 시대가 저물면서 새로운 일자리는 충분히 늘지 못했다. 여기에 대출 규제까지 겹치면서 ‘서울처럼 빠르게 오르는 집’을 잡는 것은 더욱 멀어진 꿈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 청년들은 부동산이 아닌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이 눈을 돌린 곳은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디지털자산이다. 부동산처럼 수억 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소액으로도 시작할 수 있고, 국경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 곧바로 참여할 수 있다. 서울 아파트라는 높은 장벽 앞에서 부산 청년들에게 디지털자산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새로운 자산 축적의 경로이다.
이런 현상은 현장에서도 확인됐다. 이번 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코리아 블록체인 위크’(KBW)에서 부산말이 정겨운 청년들을 만났다. 행사 티켓은 약 500달러, 우리 돈으로 50만~60만 원에 달한다.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에게는 부담스러운 비용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기차를 타고 올라와 연사들의 발표에 집중하고 있었다. 비싼 티켓값을 감수하면서 서울까지 올라온 이유는 미래의 자산 기회를 잡기 위해서였다. 부산 청년들이 디지털자산에 열정을 쏟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디지털자산 시장의 성숙도를 보면 단순한 투기 대상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시장의 규모와 성격은 이미 달라졌다. 대표적으로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지난 몇 년간 수십 배 성장해 현재 시가총액이 수천억 달러에 이르렀다. 발행사들은 준비금으로 미국 국채를 대량 매입하며, 그 과정에서 달러 패권을 디지털 영역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이는 금융 질서가 이미 새로운 단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기적 가격 등락에 휘둘리기보다 장기적 흐름을 읽고 자산을 다변화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부산이라는 조건도 특별하다. 부산은 대한민국 유일의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돼 각종 실증 사업과 기업 유치가 진행 중이다. 부산은행은 디지털자산 수탁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고, 지역 기반 거래소 운영도 본격화하고 있다. 블록체인 보안·인프라 기업들도 속속 부산으로 들어오고 있다. 청년들에게 이는 단순히 투자 수익을 넘어, 디지털자산 산업 속에서 새로운 일자리와 커리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토대다. 서울이 부동산 자산의 도시라면, 부산은 디지털자산 산업의 도시가 될 수 있는 셈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장기적 흐름을 읽는 일이다. 투자 대가 레이 달리오는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운율을 맞춘다”고 말했다. 1970년대 오일머니는 미국 부동산으로, 2010년대 양적완화 자금은 미국 주식으로 흘러들었다. 이번 세대의 거대한 유동성은 디지털자산과 블록체인 산업으로 향하고 있다.
혁명은 언제나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시작됐다. 블록체인이라는 혁명적 기술 역시 서울이 아니라 부산에서 더 큰 기회로 꽃필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부산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시세에 매달리는 투기가 아니다. 공부하고, 기술을 익히고, 산업에 뛰어들어야 한다. 디지털자산은 단순한 자산 증식의 수단을 넘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낼 무대다.
부산 청년들의 디지털자산 투자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합리적 대안이다. 동시에 새로운 산업에 뛰어들어 미래를 개척할 기회다. 이런 양질의 콘퍼런스가 부산에서도 열려야 한다. 부산 청년들이 굳이 서울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배움과 교류의 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부산시의 시대적 과제다.
중요한 것은 오늘 비트코인이 몇 퍼센트 오르고 내렸는지가 아니다. 10년 뒤 “왜 그때 시작하지 않았을까?”라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필요한 것은 큰 흐름을 읽는 안목과 차분한 준비다. 부산 청년들은 오히려 가장 앞선 무대에 설 수 있다. 그 기회는 이미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