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신인 1년 만에 집권 전무후무… 비상계엄 '악수' [윤 대통령 파면]
취임 2년 11개월 만에 몰락
조국 일가 수사 문 정부 대립각
민주당 정권이 임명한 검찰총장
국힘 대권주자로 급부상 이례적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차별화
노동·연금·교육·의료 개혁 기치
의정 갈등 장기화로 논란 여전
2022년 5월 10일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2년 11개월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정치 신인’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집권에 성공했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엔 정치를 정치로 풀지 못했다. 여소야대 구도 속 윤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각종 의혹으로 코너에 몰린 끝에 비상계엄 선포라는 악수로 자멸했다.
■정치 입문 1년 만에 대통령 당선
검사 출신인 윤 전 대통령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계기는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댓글 조작 사건 수사였다. 당시 수사팀장이었던 그는 서울고검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출석해 수사 외압을 폭로하며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사건으로 항명 논란에 휘말렸고, 징계를 받아 한직을 전전했다.
하지만 그는 2016년 12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기 위한 특별검사팀에 합류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된다. 수사 실무 책임을 맡은 윤 전 대통령은 특검에서 수사력을 인정받으며 두각을 나타냈고, 이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된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적폐 청산 수사를 지휘하며 존재감을 키웠고, 그 공로로 2019년 7월 제43대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윤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를 지휘하며 문재인 정부와 갈등을 겪었다. 2021년에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민주당 정권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야권의 대선주자로 급부상하는 이례적 상황이 연출됐고, 결국 2021년 3월 4일 검찰총장직에서 자진 사퇴하며 대권 도전을 공식화했다.
같은 해 7월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한 윤 전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홍준표 후보를 누르고 최종 후보로 확정됐다. 2022년 3월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1639만여 표를 얻으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불과 0.73%포인트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정치 입문 1년 만에 대통령이 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전 정부 차별화 속 논란도
윤 전 대통령은 취임 후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이전하며 이전 정부들과 차별화에 나섰다. 특히 정부 운영 기조로 건전 재정을 내세우며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했던 직전 문재인 정부와 대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동시에 노동·연금·교육·의료 등 4대 분야에 있어 개혁을 기치로 내걸었는데, 의료개혁을 둘러싸고 의정 갈등이 불거지며 논란이 이어졌다. 윤석열 정부는 필수의료 위기 극복을 목표로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했으나, 이해당사자인 의사 집단은 강하게 반발하며 병원을 떠났다. 지난해 집단 휴학에 들어간 의대생들은 대부분 지난달 말 학교로 돌아왔으나, 의대 증원을 둘러싼 갈등의 불씨는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은 상태다.
또한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9월 21년 만에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연금개혁에도 박차를 가했다. 젊은 세대는 덜 내고 곧 연금을 받는 세대는 많이 내도록 하는 한편,자동으로 납부액과 수급액을 조절하는 장치를 마련하자는 게 주된 내용이다. 이를 둘러싸고 여야는 평행선을 달리던 중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을 41.5%에서 43%로 상향하는 데 합의하면서 지난 1일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공포됐다.
아울러 지방균형발전과 관련한 정책도 펼쳤다. 윤석열 정부는 ‘지방시대 실현’을 핵심 국정 목표로 내세우며 기회발전특구와 교육발전특구, 도심융합특구, 문화특구 등 4대 특구를 중심으로 5대 전략, 9개 정책 등 중점 추진과제를 설정해 제시한 바 있다. 이를 위해 2023년 7월 기존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를 통합한 지방시대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2023년 7월 출범시켰다.
윤석열 정부는 대외정책에서도 문재인 정부와는 전혀 다른 노선을 걸었다. 전 정부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데 주력했다면 윤석열 정부는 ‘전략적 명확성’으로 전환을 꾀했다. 민주주의 가치 외교를 표방하며 미국·일본과 결속했다. 한미는 핵 문제를 다루는 양자 협의체인 핵협의그룹(NCG)을 출범시켰고, 한일 정상은 셔틀 외교를 복원했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