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부산항에 취하다
해운대·광안리보다 덜 알려진 원도심 야경
영도 봉래산 둘레길 따라 정상에 오르면
가까이는 남항대교·부산항대교부터
멀리 해운대 고층 마천루까지 파노라마로 감상
봉래산 정상까지 안 올라가도
청학배수지 전망대와 산복도로 전망대서
부산항대교와 부두 품은 절경 한눈에
영도 흰여울문화마을에서 본 아경엔
도시적인 남항대교와 한적한 마을 모습 공존
코끝을 간지럽히는 따뜻한 공기, 은은한 가로등 조명 아래 핀 벚꽃, 싱그러운 흙 냄새…. 봄밤에는 오감이 열린다.
시작의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봄. 낮은 화사하고 밤은 요상하다. 다른 계절의 밤보다 봄밤은 더 설레고, 더 아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오다 급기야 주체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둘 중 하나를 택한다.
술 혹은 산책. 그래서 봄밤은 야경을 감상하기도 좋다.
부산은 ‘취한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매혹적인 야경을 곳곳에 품었다. 부산의 대표적인 야경 명소로 해운대와 광안리해수욕장 일대가 꼽힌다.
반면 원도심 야경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부산 영광을 이끌었던 역동적인 항구, 피란민들의 고단한 삶이 묻어 있는 주택들, 그리고 부산의 미래를 이끌 북항까지, 이들이 만들어내는 야경에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새싹이 움트는 봄의 기운을 닮았다.
■봉래산 정상에서 부산항 전체 조망
원도심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는 영도 봉래산이다. 봉래산에서는 가깝게는 북항과 남항부터, 멀리 광안리와 해운대까지 부산 전체의 야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봉래산에는 둘레길 12코스가 있는데, 산책 삼아 나서 야경을 감상하기에는 3코스 일부 구간이 적당하다. 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 기념관에서 출발해서 정상까지 가는 길로, 그리 험난하지 않아 50분 안팎이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 기념관은 영도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고구마 재배가 시작된 것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우리나라 고구마는 조선시대 통신사 조엄이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접한 뒤 춘궁기를 대비해 봉래산 기슭에 심은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조내기 고구마는 영도 고구마를 일컫는다. 1층 기념관은 무료로 운영되는데 고구마의 역사와 종류 등을 간략하게 알려주는 곳이다. 2층 카페와 전망대에서도 야경을 감상할 수 있긴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정상을 안 가기는 섭섭하다.
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 기념관에 가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남포역이나 영도대교에서 9번 버스를 타고 청산학원에서 내린 후 300m 가량 걸어가야 도착할 수 있다. 차량을 이용하면 이곳에 주차를 할 수 있지만, 주차 공간은 협소하고 야간에는 주차를 할 수 없다.
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 기념관 옆으로 난 길은 봉래산 둘레길과 이어진다. 정상까지 길이 잘 닦여 있고 경사도 그리 가파르지 않아 초등학생들도 갈만하다. 가는 길 중간에 해련사와 KT 송신소, 봉래산체육공원 등을 지난다. 가로등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산책하는 이들도 간혹 만날 수 있어 밤중 산책이 그리 심심하지 않다.
정상 도착 전 불로초 공원의 불로문 전망대가 나온다. 불로초 공원은 중국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기 위해 주술사 서복을 보낸 곳 중 한 곳이 봉래산이라는 설화를 바탕으로 2014년 조성된 공원이다. 황칠나무, 홍매자, 하늘수박, 산수유 등의 30여 종의 귀한 약초를 심었다고 한다. 정상에서 느껴지는 탁 트인 전망은 아니어도 부산항대교를 중심으로 해운대까지 부산의 아름다운 야경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참고로 부산항대교는 오후 7시 반부터 8시 사이에 불이 켜진다.
봉래산 정상에 도착하면 부산 남항과 송도, 천마산 방면과 북항 해운대 방면 야경을 360도 파노라마로 즐길 수 있다.
남항대교에서 뿜어져 나온 불빛과 검은 바다가 대비를 이루는 가운데 묘박지에 정박한 배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검은 천 위에 금빛 실을 수놓인 듯한 여백의 미와 화려함이 공존하는 풍경이다.
북항 방면의 풍경은 역동적인 에너지가 꿈틀댄다. 산복도로에 점점이 들어앉은 소박한 불빛들은 북항친수공원으로 내려오면서 도로와 고층건물을 만나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이어진다. 부산항대교를 건너 감만 컨테이너 부두에서 뿜여져나온 불빛들은 박력이 넘친다. 해운대 마린시티 일대의 야경은 멀리서도 우아하고 아름다운 빛을 발산한다.
SNS 상에는 일몰이 아름다운 곳으로 봉래산 복천사가 꼽히기도 한다. 복천사 풍경과 도심 고층 빌딩의 모습을 동시에 사진에 담을 수 있는 포토 스팟으로 통한다. 복천사에서 정상까지 가는 길은 고구마 역사관에서 가는 길보다 더 길고 난도가 높다.
■부산항대교와 남항대교를 가까이서
봉래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것이 버겁다면 청학배수지 전망대를 추천한다. 공원에 조성된 무료 전망대로 부산항대교와 북항친수공원, 산복도로의 풍경을 더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 항공샷 같이 너무 멀리서 본 야경에 별다른 감흥을 못 느끼는 이들이라면 오히려 청학배수지 전망대에서 본 부산항대교 일대 풍경이 더 마음에 들 수 있다. 인근에는 작은 카페들도 있어, 데이트 코스로도 좋다. 버스 정류장이 코앞이라 도보 여행자들이 접근하기 좋다. 자동차로 이동한다면 남해지방해양경찰청 교육센터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영도에서 부산항대교를 바라본 풍경 못지 않게 반대편 육지에서 보는 야경도 멋지다. 산 중턱 산복도로에서 바라본 풍경은 모두 근사하지만, 부산항대교를 정면에 두고 탁트인 느낌을 주는 곳은 중구 영주동 ‘역사의 디오라마’ 전망대이다. 이곳에 세워진 안내판에도 ‘부산 해안경관 조망공간’이라고 친절하게 적혀 있다. 북항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와 일몰, 일출을 감상하는 명소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개통된 ‘영주오름길’ 엘리베이터 덕분에 부산역에서 접근성이 더 좋아졌다. ‘영주오름길’ 엘리베이터는 중구 영주 배수지체육공원에서 ‘역사의 디오라마’ 전망대 앞까지 약 100m 구간에 설치되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부산항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역사의 디오라마’ 아래 쪽에는 경사형 엘리베이터인 ‘초량 168계단 하늘길’을 비롯해 이바구플랫폼(청년창업공간) 등이 조성되어 있다. ‘초량 168계단 하늘길’은 잦은 고장으로 철거된 모노레일을 대체해 들어섰다. 현재 시범운영 중으로 이달 11일부터 정상 운영될 예정이다. 해가 지기 전에 이바구플랫폼이라 불리는 카페와 식당 등을 둘러보고, ‘역사의 디오라마 전망대’로 향해도 좋겠다.
남항대교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는 여러 곳이지만, 흰여울문화마을에 가면 전혀 다른 정취의 두 가지 야경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흰여울문화마을 안내센터 앞에서 남항대교를 바라보면 고층 아파트와 남항대교가 만들어낸 화려한 도시의 야경이 아찔하다. 고개를 돌려 흰여울문화마을을 바라보면 해안가 절벽과 그 위의 집들에서 새어나온 불빛으로 고즈넉한 분위기의 야경이 펼쳐진다. 고개만 돌리면 정반대 느낌의 야경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야경을 감상할 때 밤 바다가 들려주는 나지막한 파도 소리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송지연 기자 sj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