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당근'에 담긴 사회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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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 경제부 차장

중고 거래 플랫폼 넘어선 '당근'
이수지 몽클레르, 크보빵 등
사회 이슈와 소비 트렌드 담겨
따뜻한 동네 커뮤니티로 발전

“당근에 몽클레르가 그렇게 많이 올라온다는데, 나 하나 사서 좀 보내줄래?”

서울 강남 지역 ‘당근’(중고 물품 온라인 거래 플랫폼)에 몽클레르 패딩이 쏟아져 나온다는 보도에 서울에 사는 언니에게 웃으며 전화를 걸었다. 수백만 원대 새 제품을 몇십만 원에 처분하는 이도 있다고 했다. 대치동 ‘제이미 맘’과 400km나 떨어져 사는 ‘피케이 맘’은 입어도 되지 않을까 ‘농담 반 진담 반’ 마음이었다.

개그맨 이수지가 유튜브 채널에서 선보인 ‘대치동 엄마’ 패러디 영상은 ‘싱크로율’뿐만 아니라 ‘당근 후폭풍’으로 더 큰 화제를 모았다. 1탄 영상에서 입은 몽클레르 패딩은 중고 매물이 폭증했다. 일부 강남 엄마들은 “앞으로 몽클레어 입을 수 있을까요” 등의 글을 올리며 언짢은 기색을 보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몽클레르 득템 기회’라며 반색하기도 했다. 이수지가 밍크 조끼를 입고 고야드 가방을 든 ‘대치동 엄마’ 2탄 영상을 올리자 많은 이들이 ‘고야드 당근행’을 예측하기도 했다.

당근을 들여다보면 사회 이슈와 소비 트렌드가 고스란히 보인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호황을 누렸던 골프의 인기가 뚝 떨어진 것도 당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골프를 그만두려는 이들이 너도나도 골프채와 골프 의류를 중고 매물로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에 들어가면서 홈플러스 상품권이 당근에서 ‘핫’해지기도 했다.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팔려는 이들도 많았지만, 알뜰 장보기족과 전자제품 되팔이족들은 ‘삽니다’라는 구매 글을 올리며 오히려 상품권을 사들였다. 허니버터칩부터 포켓몬빵, 먹태깡, 두바이 초콜릿, 크보빵까지 식품업계 ‘품귀템’도 바통을 터치하며 부지런히 올라온다.

부동산과 자동차 직거래도 활발하다. 당근 앱 부동산 매물 건수는 2021년 5243건, 2022년 14만 719건, 2023년 34만 1172건, 2024년 65만 3588건으로 껑충 뛰었다. 실거래 건수 역시 2021년 268건, 2022년 7094건, 2023년 2만 3178건, 2024년 5만 9451건으로 치솟았다. 인천의 한 부동산이 50억 원에 팔렸고, 부산 수영구의 10억 원 아파트도 당근에서 거래됐다.

현재 당근의 누적 가입자는 약 4300만 명으로 주간 방문자가 1400만 명에 육박한다. 고물가 시대에 ‘짠 소비’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당근 거래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또한 ‘경험 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에게도 중고마켓은 필수다. 중고로 싸게 사서 먼저 경험해 보고, 구매한 물건이 더 이상 필요 없다면 팔아버리고 다른 필요한 물건을 사는 식이다. 이전 세대보다 환경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도 당근을 애용한다. 새로 만들어내는 것을 쓰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것들을 재사용하는 것에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당근은 이렇게 ‘전 국민 중고 장터’로 자리매김했지만 시작은 의외로 동네 커뮤니티였다. 2015년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기업을 대상으로 한 물품 교환, 직거래 서비스 앱인 ‘판교장터’로 출발했다. 판교 기업 이메일을 인증해야 이용할 수 있었다. 입소문을 타고 주변 동네 주민들도 직거래가 가능하냐는 문의가 계속되자 ‘지역 기반 중고 거래 서비스’로 변경했다.

당근이 동네로 범위를 설정하게 한 장치는, 중고 거래에서 많이 발생하는 사기를 예방할 수 있어서 당근이 중고마켓 1위로 올라선 발판이 됐다. 또한 ‘동네 생활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발판도 됐다. 동네 질문, 동네 맛집, 분실·실종센터 등 다양한 게시판을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있다. 순대 트럭이 어디에 있는지, 붕어빵 노점은 문을 열었는지, 놀이터에서 잃어버린 아이 옷을 발견한 사람이 있는지 동네 사람끼리만 알 만한 온갖 정보가 오간다. 지난해 동네생활 게시판에서는 3900만 건의 소통이 이뤄졌다.

이처럼 당근은 단순한 중고 거래 플랫폼을 넘어섰다. 우리 사회의 모습과 소비 트렌드를 보여주는 거울이자, 이웃 유대를 강화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물건 하나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지역 사회가 연결되고, 트렌드의 변화가 즉각적으로 반영되며, 환경을 고려한 지속 가능한 소비 문화까지 확산하고 있다.

소비의 방식이 변하는 만큼, 사람들이 관계 맺는 방식도 바뀌고 있다. 당근이 보여주는 ‘이웃과의 따뜻한 거래’는 단순한 경제적 이득을 넘어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하나의 방법이 되고 있다. 앞으로 당근이 또 어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지 지켜보게 된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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