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성장통
서정아 소설가
통증에 괴로워하며 서로 찔러댄 시간
어긋난 것들 맞춰질 때 통증 멈출 것
청소년뿐만 아니라 누구나 아픔 있어
성장통 견딘 이들 단단한 미래 기대
최근 들어 아이가 발목과 무릎, 사타구니 주변의 통증을 자주 호소했다. 심할 때는 서 있지도 못하겠다면서 갑자기 주저앉아버렸다.
정형외과에 가서 검사를 했지만 별다른 소견은 없었다. 성장기 아이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성장통 같다면서, 뼈가 자라는 속도에 비해 근육이나 인대가 자라는 속도가 느리다 보니 그로 인해 통증이 유발될 수 있다고 했다.
병원에서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기에 집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찜질과 마사지를 해주었다. 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겪는 일이니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위로하면서.
극심한 통증으로 매일 괴로워하는 아이를 계속 지켜보는 일은 나에게도 고통이었다. 조금이라도 나아질 방도가 있다면 뭐라도 해볼 텐데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만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게다가 통증은 통증으로만 그치지 않고 무기력과 짜증으로 이어졌다. 나중에는 그 짜증이 통증 때문인지 아닌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아파서 그렇다는 아이에게 야단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만, 다 받아주자니 내 마음에도 한계가 찾아왔다.
정형외과에는 다시 가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이번에는 통증의학과를 찾아갔다. 증상을 들은 의사가 아이의 눈을 쳐다보며 이렇게 물었다. “니 몇 학년이고?” 아이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중2요.”
그러자 의사가 다시금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중2병인가.” 어쩐지 정확한 진단명을 들은 것만 같았다. 의사는 아이가 아프다는 부위를 눌러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중2가 제일 무섭다.”
그래, 이 아이는 중2다. 그걸 잊고 있었다. 아이는 중2답게 의사의 질문에 매번 표정 없이 단답형으로 대답했고, 주사를 맞고 나와서는 이까짓 것 별 거 아니라는 듯 갑자기 으스댔다.
주사가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다시 주사를 맞기가 싫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새 근육과 인대가 좀 더 자라났던 건지, 다행히도 아이의 통증은 나아졌다.
그렇지만 아이가 커가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은 수시로 나타날 것이다. 조금 놀리듯이 중2병이네 뭐네 하지만 결국은 그것도 마음의 성장통이다. 뼈가 자라는 속도를 근육과 인대가 따라잡지 못해 온몸이 아팠던 것처럼, 정신의 어떤 부분이 자라는 속도를 다른 부분이 따라잡지 못하니 감정은 들쑥날쑥하고, 송곳처럼 튀어나온 감정들에 찔려 아플 수밖에.
예컨대 독립심과 비판적 사고력은 쑥쑥 성장하는데, 절제력이나 포용력은 그에 미치지 못함에서 오는 불균형이랄까.
결국 성장통이라는 것은 자라나는 속도의 불균형에서 비롯되고, 그렇게 생각해보면 성장통이 오로지 성장기 아이들에게만 오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사람의 정신은 죽을 때까지 성장할 수 있다. 육체는 쇠락해도 정신은 그 육체의 틀을 깨고 높게 뻗어나갈 수 있다. 성인이라고 해서 그 성장의 과정이 늘 안정되고 균형 잡혀 있는 것도 아니니, 성장하려는 이들에게는 언제든 마음의 통증이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 인기몰이를 했던 자기계발서 중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있었다. 그러나 청춘만 아픈 것은 아니다. 중년도 아프고 노년은 더욱 아프다.
실은, 아프니까 사람이다. 진정 살아 있으니까 아프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향해 계속해서 자라려니까 아프다.
제법 긴 시간 동안 우리는 함께 아파왔다. 통증 때문에 서로를 찔러대기도 했다. 이것이 성장통이라면, 어긋난 것들의 균형이 맞춰질 때 비로소 통증은 멎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통증의 시간 동안 더욱 단단하게 자라난 우리의 정신은 위기의 순간마다 굳건한 힘을 보여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통증이 불치의 병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성장통이었기를. 곧 다시 만나게 될 세계에서는 따뜻한 봄날 오후의 햇살처럼 서로를 보듬으며 미소 지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