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각금시이작비, 지금이 옳은 삶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이국환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밀양강변 금시당 이름 유래
<귀거래사> 속 글에서 따와
지금 옳고 지난날 그릇됨 뜻
옳은 삶 살고자 다짐 계기
알아야 깨닫는 것이 인생

밀양강변 금시당을 가끔 찾는다. 이곳은 조선 명조 때 문신 이광진 선생이 귀향하여 휴양하고자 마련한 집으로, 수령 450년이 넘는 은행나무 덕분에 가을이면 일대가 주차장이 된다. 나는 금시당의 겨울을 좋아한다. 겨울이면 금시당을 찾아, 들머리 매화나무 가지 끝에 봄을 걸어두고, 뜰 지나 은행나무 옆 배롱나무 아래 근심을 묻는다. 인적 드문 금시당에 물이 고이듯 시간이 고이고, 산책길에 놓인 널평상에 앉아 지난날을 돌아본다.

금시당이란 이름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있는 글에서 따왔다. 각금시이작비(覺今是而昨非), 지금이 옳고 지난날이 그름을 깨달았다는 이 구절은 벼슬길에 올랐던 지난날이 잘못되었고, 벼슬살이 그만두고 귀향한 지금이 잘한 일이라는 뜻으로 흔히 해석된다. 도연명의 나이 41세 때 지방 현령으로 일하며 윗사람에 굽신거리며 살기 싫어 귀향하며 지었던 글이라, 매일 모멸감을 견디며 밥벌이에 나서는 직장인들에게도 와닿는 내용이다. 다만, 〈귀거래사〉의 내용처럼 직이나 업을 내려놓고 돌아와도 반길 가족은 오늘날 드물 듯하여 슬프다.

도연명의 절개를 흠모했던 이광진은 1565년 고향인 밀양으로 돌아와 금시당을 지어 후학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데 뜻을 두었으나, 이 집이 완성된 1566년 54세로 별세했다. 정3품 당상관을 거쳐 담양부사를 마지막으로 귀향했으니, 그는 오랜 관직 생활로 이미 건강이 좋지 못했을 터, 도연명을 흠모했으나 안타깝게도 그의 삶을 따르지는 못했다. 지금은 당시 부친의 병환을 위로하고자 아들 이경혼이 그린 밀양 12경 진경산수화와 밀양강 언덕 위 금시당이 남아 후세에게 삶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3월 첫머리에 딸 혼사가 있었다. 혼사를 준비하며 아내와 대화를 나누던 중, 취업 이후 한 치의 오차 없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딸을 걱정하는 나에게, 아내가 말해주었다. 젊은 날의 당신도 송곳 같았다고. 밤을 지새우며 공부하거나 글을 썼고, 학생의 실수나 오류를 좀처럼 용인하지 않았다. 자신을 엄격히 몰아갔기에 주변 이들에게 관대하지 못했다. 어렵사리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에 진학하고 싶다는 제자에게, 연구 능력이 부족하다며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던 기억은 후회의 못질이 되어 마음에서 빠지지 않는다. 아내가 송곳 같았던 나를 얼마나 배려했을지, 그런 아버지를 두어 자식은 원망이 얼마나 컸을지, 내 그릇된 말과 행동이 가을 금시당 은행나무 잎보다 무수했음을 깨닫는다.

알고 싶은 것이 많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전공인 문학뿐 아니라, 철학, 역사, 심리학, 사회학, 자연과학까지 책을 쌓아두고 닥치는 대로 읽었다. 아는 것이 많아 똑똑하다는 소리에 우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여 시비 가리기를 중시했고, 그러한 신념이 나를 가둘 수 있다는 사실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겨울이면 도연명과 이광진을 떠올리며 금시당을 찾는다. 금시, 지금이 옳은 삶, 이러한 삶은 지난날의 내 그릇됨을 끊임없이 돌아보아야 가능하다. 가을 금시당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번성했으나 지금은 적요만이 남은 겨울 금시당, 그 뜰에 우뚝 솟은 은행나무를 본다. 그토록 풍성한 잎들을 모두 떨구고도 여전히 당당한 은행나무를 흠모한다. 세월이 앗아간 열정과 그동안 이룬 성취를 그리워하기보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지금이 옳은 삶을 살고자 다짐한다.

각금시, 오늘이 옳았음을 깨달으려면, 이작비, 지난날이 잘못되었음을 먼저 알아야 한다. 지각(知覺), 알아야 깨닫는 것이 인생이다. 깨달은 이는 필시 뉘우치며, 뉘우치는 이는 자신을 돌아보며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깨닫고 뉘우쳐 과거의 나를 바로잡아, 지금이 옳은 삶을 살아야 함을, 금시당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일러준다. 금시당은 겨울이 좋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