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북항, 춘래불사춘 퇴치법
이호진 경제부 선임기자
지난 5년 동안 변한 것 없는 북항
감사·수사, 엑스포 실패 '설상가상'
민간 앞선 공공부문 마중물 투자
내년 개항 150년 희망 되살려야
부산에게 부산항은 무엇인가?
부산과 부산항을 향한 근원적 물음이다. 이런 질문에 이르게 된 과정은 대략 이렇다.
부산항 없이 부산이라는 도시의 근현대사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데, 부산에는 왜 변변한 부산항박물관 하나 없을까. 2007년 기본계획 고시부터 거의 20년이 다 돼 가는 북항 재개발지역은 왜 허허벌판일까. 부산역 뒤 충장로의 어지럽고 울퉁불퉁한 도로는 도대체 언제 깔끔하게 정비될까.
2020년 이후 5년 만에 다시 이 분야 취재를 맡은 기자는 바뀌지 않는 부산항을 보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하다 근본적 의문에 이르렀다. ‘왜 이렇게 안 바뀌나.’
북항 재개발 1단계 사업은 2022년 연말 기반시설 조성 공사가 마무리됐다. 분양 대상 부지와 도로, 공원 등이 완성됐고, 친수공원도 부분 개방했다. 탁 트인 바다와 거대한 부산항대교를 부산역 바로 앞에서 조망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며 시민들은 달라질 북항의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그 시점부터 북항 재개발사업은 거의 중단 상태다. 감사원 감사와 검찰 조사가 이어지면서 사업 시행 주체인 부산항만공사(BPA)가 잔뜩 움츠러든 것이다. BPA 내부에서는 재개발 담당 부서가 최대 기피 부서라는 얘기도 들린다. 감사·수사에 따른 징계가 이어진 이후, 이 업무를 맡는 BPA 직원 입장에선 최대한 방어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BPA도 감사 대상 기관이기에 법규에 따라야 한다는 점을 부인할 순 없다. 위법한 사례가 있다면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전례 없는 최초의 항만재개발사업을,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접목한 공기업이 담당한다는 점을 감사원이 얼마나 반영했는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자율을 부여했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만으로 특혜와 불법의 올가미를 덧씌운 것 아닌가 곱씹어볼 일이다.
감사 이후 BPA는 땅을 분양받은 기업들에게 감사원 지적 그대로 ‘애초 사업계획대로 속히 착공하라’는 요구만 앵무새처럼 되뇌지만, 기업들은 거의 한목소리로 ‘10년 전 보름 만에 후닥닥 만든 사업계획안대로 무조건 착공을 독촉하는 것이 과연 사리에 맞느냐’고 하소연한다. 분양부지에 대한 소유권 이전이 안 된 상태라 재산권 행사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착공을 미루게 하는 요소라는 지적도 나온다.
민간 부문이 투자를 하려면 공공이 마중물을 부어야 한다. 그럼에도 애초 해양수산부와 BPA, 부산시 등 관련 기관과 공기업들이 북항을 채우겠다고 약속한 공공 콘텐츠는 기약이 없었다. 겨우 북항마리나만 문을 열어 수영장과 다이빙풀을 운영 중일 뿐, 오페라하우스는 여전히 공사 중이고, 단일 부지로 가장 넓은 랜드마크 부지는 아직도 주인을 찾지 못한 상태다. 중앙역부터 북항을 관통하는 트램 계획도 아직 계획에 멈춰 있다. 부산항박물관, 연안유람선터미널 부산항역사관 등도 마찬가지다. 땅만 만들었을 뿐, 시민 발길을 끌어들일 공공 콘텐츠와 인프라를 조성해야 할 공공의 의무는 소홀히 하면서 만만한 민간 기업만 옥죄는 형국이다. 지난해까지 범정부 역량을 모아 희망을 걸었던 2030월드엑스포 유치가 무산되면서 엑스포 무대로 삼으려던 북항의 그림자는 더 짙어졌다.
최근 콘텐츠를 개편한 북항 재개발 홍보관을 찾은 날은 초봄답지 않게 바람이 차가웠다. 봄이 왔으나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옛말이 떠올랐다. 한낮 북항 일대는 겨울과 봄 사이 변덕과 혼돈 속에서도 평온했다.
더디긴 해도 BPA는 북항 공공 콘텐츠의 기능과 규모에 대한 용역을 올 상반기까지 마무리 짓고, 하반기부터는 각 시설에 대한 설계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용역 대상은 △IT영상지구 내 문화공원에 시민이 원하는 교양시설(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등)과 편의시설 설치 △연안여객터미널 리모델링 후 부산항기념관 조성 △유·도선장 적정성 검토 △북항마리나와 연계한 해양레포츠콤플렉스 조성 △재개발지역 내 교통체계 검토 및 개선안 마련 △현 BPA 부지 주변 연안유람선터미널 기본구상 수립 등이다.
내년이면 역사적인 부산항 개항 150주년이다.
오지 않는 봄을 마냥 기다릴 일이 아니다. 공공부문이 먼저 마중물을 신나게 부으면 활기는 살아난다. 때마침 북극항로니, 미국 해군함정 MRO(유지 보수 정비)·신조 추진이니 등 기대를 갖게 하는 소식이 잇달아 들린다. 한국 산업화의 견인차였던 부산과 부산항의 다가올 150년을 위해서라도, 과거와는 다른 열정과 추진력이 필요한 시기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