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으로] 민주주의는 목숨이다
김대현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공동연구원
민주의 꿈은 높고 크다. 누구나 위정자를 투표해 선출할 수 있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유와 평등의 원칙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때로는 시위로, 전쟁으로, 피로 얻어낸 성취다. 왕의 손아귀에서 민의 권리·의무를 해방시킨 근대 시민혁명과 맞물려, 힘센 나라와 힘 약한 나라의 위계는 그 민의 권리·의무를 또 한번 가로막았다. 오늘날 국제 사회에 통용되는 인권은 탈식민 민족의 자결권 개념에 크게 빚졌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써있는 3.1운동은 그렇게 쉽게 얻어지지 않은 민주공화제와 민족 자결의 원칙을 조용히 웅변한다.
제국주의로부터 놓여난 탈식민 국가가 한번 세워졌다고 민주의 꿈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날 전제군주정과 신분제가 그랬듯이, 어떤 그룹의 인간이 다른 그룹에 비해 열등하고 그들에게 제한된 자유와 평등을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인류사에 뿌리깊다. 민족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세워진 나라에서조차 그런 차별의 생각은 쉽게 근절되지 않는다. 그중 대표적인 차별의 근거가 바로 성별, 즉 젠더다. 젠더는 세상 많은 실질적 차별의 뿌리이면서 다른 사회적 차별의 은유로 활용된다. 과거 많은 수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신들이 통치하는 피식민국을 여성으로 비유했다.
구조적 차별은 차별하는 그룹과 차별받는 그룹 사이의 동일성과 차이를 동시에 활용한다. 가령 남성과 여성이 전적으로 같은 사람이라는 말은, 그 사이에 가로놓인 차별을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는 식으로 활용된다. 남성과 여성이 애초에 다르다는 말은, 그 사이에 가로놓인 차별에 근거를 달아주고 그 구분을 영원히 지속하기 위한 밑밥으로 사용된다. 일견 모순돼 뵈는 이런 전략은 인간 사회에 의외로 흔하다. 일제 강점기 민족 차별에 시달리던 일본인과 조선인을 저 동일성과 차이의 도식에 대입해도 얼추 들어맞는 것이 그 예다.
오늘날 민주의 꿈 가운데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있다. 신과 깨달음 앞에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고등 종교 경전의 수려한 문구를 제쳐두고, 사람을 차별해도 좋다는 그 속의 몇몇 구절과 전승을 종교 전체의 가르침으로 호도하는 사람들을 향한 경종이다. 민주의 원칙이 그 어느 때보다 위협받는 이 때,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포함된 비상행동 공동의장단의 단식이 2025년 3월 19일자로 12일을 맞이했다.
차별받는 이들에게 반차별이란 밥이자 목숨이다. 그 밥과 목숨을 향한 길이 때로 밥과 목숨을 잠시 떼어놓는 싸움을 통해야만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슬픔이다. 그 슬픔을 딛고 도달할 싸움의 승리는 3.1운동을 이마에 써놓은 대한민국 헌법이 증거한다. 민주와 반차별은 우리가 걸어온 역사가 저도 모르게 아로새긴 예정된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