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비트코인과 금의 세계관 대결
정소희 공모 칼럼니스트
가상자산과 실물자산 대표 주자
엎치락뒤치락 세계 금융시장 주도
미국·중국 치열한 패권 경쟁 대리전
문명권 특성 따라 선호 화폐 달라
기독교는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
중국 문화는 시각적인 요소 중시
최근 비트코인과 금은 엎치락뒤치락하며 금융시장의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 비트코인과 금의 관계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먼저 비트코인이 위험자산이라면 금은 안전자산이라는 대립 구도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암호화폐는 대개 위험자산으로 분류되고 비트코인은 암호화폐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상장지수펀드(ETF)가 출시되었고 국가들도 일부 보유하고 있는 만큼 위험자산으로만 단순히 치부하기엔 그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는 것 같다. 반면 금은 안전자산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한편 비트코인은 가상자산이고 금은 실물자산이라는 차이점도 있다. 비트코인은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는 없지만 서버에 디지털 형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금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실물 형태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반짝이는 금이다.
필자가 보기에 비트코인과 금의 관계는 점점 더 치열해지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과 화폐전쟁 속에 숨겨진 세계관의 대결로 보인다.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비트코인과 금을 다르게 해석하고 또 다르게 가치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따라 대상의 존재 방식과 정의가 달라지고 그 정의에 따라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지가 달라지는 사유 과정과 다르지 않다.
앞서 비트코인과 금의 구별로서 비트코인은 비가시적이고 무형적이며 금은 가시적이고 유형적이라는 특성을 언급했다. 이는 인류의 다양한 문명 중 현시점에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두 문명으로만 거칠게 요약해본다면 유대인과 중국인의 세계관 대립, 유대기독교 문명과 중화 문명의 세계관 대립, 곧 둘의 철학적 입장 차이처럼 보인다. 유대기독교 문화는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한다. 신과 성령은 시각적으로 감각될 수 없다. 그러나 참된 신앙을 통해서 마침내 말씀과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시각보다 비시각적, 청각적 요소가 매우 중요한 문화적 특징을 지닌다. 중세 기독교에는 교육 목적으로 시각적 요소가 다수 첨가되었지만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우상숭배를 금지한 유대 율법의 영향으로 성상을 엄격히 금지했다. 반면 중국 문화는 보이는 것에 주목한다. 자연에서 발견하는 질서들이 도(道)가 되고 도를 깨우쳐 순리를 따르기 위해서는 외부 세계를 관찰하는 일부터 시작하기에 시각적인 요소가 중요해진다.
청각과 시각은 주관과 객관의 인식적 차이도 가지고 있다. 녹음 기술이 생겨나기 전까지 소리는 고정적으로 담아둘 수 없기에 흘러가는 형태로만 존재했다. 또한 소리는 음량에 따라 누구에게는 들리지만 누구에게는 들리지 않아 보다 소규모의 사적인 범위에서만 감각될 수 있었다. 따라서 과거에 청각을 통해서 어떤 존재를 객관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 시각은 시력을 지니고 있다면 대상의 존재를 증명하기가 청각보다 용이하다. 밤하늘에 뜬 달을 보는 시각적 경험은 거리와 범위에 제한 없이 보편적으로 지각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각은 청각보다 객관적인 성격을 가진다.
감각의 차이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경험적 인식과도 유관하게 작용한다. 시간을 내재적 직관, 공간을 외재적 직관으로 정의한 칸트의 구분에 비추어 보면 청각은 상대적으로 유량의 주관적이고 시간적인 특성을 담고 있는 반면 시각은 저량의 객관적이고 공간적인 특성을 담고 있다. 이렇게 청각 중심 감각관과 시간 우선 세계관, 시각 중심 감각관과 공간 우선 세계관은 두 문명의 인식론부터 존재론,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에 이르기까지 상이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물론 고대문명사에서 출발하는 분기의 유래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차이 등은 글에서 생략하고 단순화한 점이 있다. 종교개혁을 이끈 루터의 ‘오직 믿음으로’라는 모토는 교회라는 공간을 지우고 시각적 성례 의식들을 배제시킴으로써 내적 주관의 무형성을 세계 인식의 중심으로 다시 위치시켰다. 프로테스탄티즘과 유대 문명은 보이지 않는 손과 믿음에서 신용으로 대체된 비가시적 가치, 끊임없이 유통되어야 하는 돈과 자본의 흐름, 형상의 제거와 물리적 공간성의 부재 등 현대 사회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비트코인과 금은 대결하는 두 문명의 토대가 된 세계관의 차이를 함축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두 화폐의 특성이 내포하고 있는 감각 인식적 근원은 양자역학의 미시세계 속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닮았다. 현대물리학에 따르면 입자와 파동은 동시 관측이 불가능하지만 둘은 공존하며 이중성의 구조를 갖는다. 또한 두 성질의 행동은 궁극에 불확정성의 원리와 확률로 나타난다. 그래서일까, 한국인은 비트코인과 금 모두에 ‘김치프리미엄’를 더해가며 두 자산에 열심히 투자하고 있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한국은 대결하는 두 국가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기를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