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멸종 위기의 도시' 부산과 해운대신도시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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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부촌의 대명사 해운대신도시
학령 인구 급감, 초등 통폐합 눈앞
소멸, 원도심·서부산만의 일 아냐
역점 사업 희망 고문, 더는 안 돼

저출산 현상의 고착화로 학령 인구 감소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부산을 대표하는 신도시로, 주거와 교육 여건이 좋기로 알려진 해운대신도시(해운대 그린시티) 내에 있는 몇몇 초등학교가 가까운 미래에 통폐합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저출산과 청년 유출로 인한 학령 인구 감소는 원도심과 서부산 지역에 국한된 문제로 여겨졌지만, 부산의 전통적인 주거 선호 지역인 신도시 지역에도 엄습하고 있어서다.

해운대신도시는 1990년대 말 개발이 완료된 부산 최초의 계획도시다. 노태우 정부 시절 주택 부족 해결을 위해 ‘주택 200만 호 건설’을 목표로 전국적으로 추진된 1기 신도시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좌1~4동 4개 동을 아우르는 타원형 시가지에 아파트 단지들이 질서정연하게 자리하며, 입주 초기 신혼부부 등 젊은 층이 대거 유입됐고, 우수한 학군과 편리한 생활 여건 등으로 주거 지역으로 인기가 높았다. 그랬던 해운대신도시에서 인접한 초등학교 2곳의 올 신학기 1학년 학급 수가 각각 3~4개 반에 불과하다고 한다. 앞으로 입학생 수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두 학교 통폐합의 카운트다운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해운대신도시 내 또 다른 초등학교는 올해 1학년 학급 편제가 2개 반에 불과하다고 한다. 지역 맘카페에서도 해운대신도시 내 초등학교 1호 통폐합이 머지않았다는 건 이미 통설이다.

올해 폐교 대상 초등학교는 전국 38곳. 이 중 대부분이 도농복합지역이지만, 대도시(특별·광역시) 중에는 부산 2곳과 대구 1곳이 포함됐다. 부산은 원도심인 부산진구의 초등학교 2곳이 폐교하고 인근 학교로 통폐합됐다. 학교 통폐합 대상이 될 수 있는 부산 지역 소규모 학교(학생 수 240명 이하)는 매년 늘고 있고 있는데, 부산의 전통 주거 선호 지역이었던 해운대신도시도 이제 ‘남의 일이 아닌 일’이 된 셈이다.

기자가 10여 년 전 잠시 신혼 생활을 했던 해운대신도시는 잘 닦인 방사형 도로망과 근거리 다양한 상업 시설로 젊은 층이 매우 살기 좋은 곳이었다. 학원가가 잘 형성돼 있고, 유치원과 어린이집도 곳곳에 있어 교육과 양육 환경 역시 만족스러웠다. 지금은 여차저차한 이유로 이사를 나왔지만, 아직도 해운대신도시에 살고 있는 지인들의 얘기는 그때와 사뭇 다르다. 한 지인은 “집값은 10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고, 오래된 아파트에 입주민 고령화도 심각하다”며 주변의 누구누구처럼 빨리 탈출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넋두리를 늘어 놓는다.

그나마 남아 있던 해운대신도시의 청년들은 수도권으로 떠났고, 부산의 다른 지역에 재정착을 하더라도 마린시티와 센텀시티를 비롯해 해운대구청 인근 상업 지역에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는 아파트로 옮겨 가면서 해운대신도시의 쇠락은 가속화되고 있다.

얼마 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 세계 숱한 대도시 중 부산을 ‘멸종 위기의 도시’로 콕 집어 걱정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FT는 ‘멸종 위기:한국 제2의 도시, 인구 재앙을 우려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1995∼2023년 60만 명의 인구가 감소한 제2의 도시 부산에 대해 저출생과 고령화 등으로 소멸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서울 중심의 극심한 경제 집중 현상을 지목했다. 한때 부촌의 명성을 지녔던 해운대신도시의 쇠퇴는 FT가 지목한 부산의 위기가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해서 씁쓸하다.

부흥의 기회는 있다. 최근 정부는 해운대신도시 인근 53사단 부지의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부대를 재배치하기로 했다. 부산시는 그린벨트가 해제된 이곳에 첨단산업단지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시는 첨단 연구단지와 스타트업 기업, 녹지공간 등이 어우러진 해운대 첨단사이언스파크를 조성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청년 인구를 유입시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러한 계획이 현실화된다면 직주근접성을 갖춘 해운대신도시는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다. 올해 정부가 지방을 대상으로 노후계획도시특별법 대상지를 선정하는데, 해운대신도시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또 다른 기회다. 재건축이 급물살을 타면 청년층의 탈출 러시를 수그러뜨릴 수 있다.

하지만 청사진만 번듯하게 그려놓고 실현이 지지부진한, 그런 희망 고문만 계속돼서는 안 된다. 인구가 소멸하는 부산의 위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너무나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멸종 위기의 도시’라는 오명을 씻어내고 인구 소멸을 막기 위해 정부와 부산시는 이들 역점 사업을 하루빨리 실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금 당장 지체 없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대성 사회부 차장 nmaker@busan.com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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