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가벼운 입은 반자본주의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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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동량 줄어 해상운임 7주 연속↓
트럼프 관세 전쟁이 하락 부추겨
오락가락 경제정책에 시장 혼란
신뢰 잃은 자본주의 성장 어려워

말 그대로 ‘카오스’다. 해양산업 동향을 나타내는 통계들을 들여다보거나, 관련 산업계 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숫자와 말들 속에 깊은 불안감이 느껴질 때가 많다. 조선 관련 분야에선 오히려 기대감이 느껴진다. 분야별로 희비가 교차하고 있는 해양산업은 미국 트럼프 정부가 몰고 온 혼돈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지난달 말 글로벌 해상운송 항로 운임을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1515.29을 기록했다. 1월 초 2505.17에서 연속 7주 하락했다. 14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SCFI는 세계 15개 노선의 운임을 종합해 계산한 지수로, 수치가 뚝뚝 떨어진다는 것은 운송비가 그만큼 싸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옮길 물동량이 없어졌으니, 해운회사들이 가격을 낮추고 있다는 뜻이다. 해운 회사의 불안감과 세계 경기의 둔화가 떨어지는 숫자에서 읽힌다.

해상운임의 하락은 계절적 요인으로 설명되지만, 빠른 속도의 추락은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당연히 트럼프 정부의 영향이 크다. 트럼프는 캐나다, 멕시코, 중국을 넘어 유럽까지 전 세계와 관세 전쟁을 벌일 기세이다. 가뜩이나 경기 둔화가 우려되는데, 관세 전쟁 예고는 둔화를 침체로 바꾸었다. 관세의 실질적인 영향은 하반기에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은 공포스럽기도 하다.

반면 조선업은 요즘 매우 ‘핫’하다. 트럼프가 직접 ‘K조선’에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고, 동맹국에서도 미국 군함 건조할 수 있는 법안이 추진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트럼프가 중국 선박에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는 발표로 반사이익 이슈도 있다. 이런 기류가 모여 조선업만큼은 트럼프 수혜주가 되었다.

사실 최근까지 조선업은 상당한 호황기였기 때문에, 곧 경기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이 흐름을 트럼프 효과가 막은 셈이다. 다만 트럼프의 말과 약속에 기반한 기대가 정말 어느 정도 현실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뱉은 말에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힘은 막강하지만, 말은 매우 가볍다는 걸 지구인이라면 대부분 인정할 것이다. 트럼프는 기존의 정치인들은 상상하기 힘든 극단적인 주장과 요구를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더욱이 직관적이면서 단순하게 쉽게 말한다. 상상하기 힘든 요구를 단순화해 힘 있게 주장하니, 상대는 주눅이 들기 쉽다. 그러다 갑자기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행보를 두고 ‘광인전략’이라고도 한다. 고도의 계산된 행동이든, 원래 그런 캐릭터이든, 트럼프는 미치광이처럼 상대국에 겁을 주며, 세계 경제를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다. 캐나다, 멕시코를 상대로 한 관세 논란을 되짚어 보자. 중과세하겠다고 했다가, 직전에 유예했다가, 또 부과한다고 했다가, 다시 합의점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제시한 10%, 25%, 50% 등의 수치는 면밀한 검토와 계산을 거친 것은 아닐 것이다. 숫자들은 논리적 결과가 아니라, 과세의 무서움을 보여주기 수단에 불과하다. 논리적으로 꼭 필요했던 과세가 아니었으니, 쉽게 주장하고 접을 수도 있는 것이다.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의 이런 행보를 동맹 관계도 뛰어넘는 극단적 국익 우선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말이 가벼우면 신뢰를 잃기 마련이다. 화폐는 사실 신뢰의 산물이다. 소라 껍데기든, 종이 조각이든 어떤 물건에 특정한 가치를 주기로 약속을 하면서, 화폐가 생기고 경제가 시작됐다. 경제 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신뢰의 가치는 더욱 커졌다. 안정적인 경제 기반에 대한 믿음이 생겨야, 기업과 정부들이 안심하고 투자를 이어갈 수 있다.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시장이 믿음을 줄 때 개별 경제 주체들의 잠재력이 극대화된다는 건 자본주의 역사에서 입증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는 자본주의를 퇴보시키고 있다. 관세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 논리적이지 못한 정책으로 글로벌 시장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것이 본질적인 해악이다.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누가 혁신을 하고 미래를 준비하겠는가. 본질적인 성장은 멀어지고 하루하루 버티기 바쁜 허약한 자본주의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국내 조선업도 위태로워지고, 미국 국민도 궁핍해진다. 당장 중과세로 수입품이 비싸지면, 미국 기업과 국민에도 타격이다. 사실상 과세는 수입품을 사는 자국민이 대신 내는 세금과 비슷하다. 국익 우선주의라고 부르기 힘든 정책이다.

트럼프 1기때에도 초기 광폭행보가 요란했지만, 대체로 곧 제자리로 돌아왔다. 지금의 트럼프는 더 ‘반자본주의’ 인물이 된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지만, 부디 그가 진짜 광인은 아니기를 바란다.

김백상 경제부 차장 k103@busan.com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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