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헌재 결정 승복'은 헌법에 대한 예의

김길수 기자 kks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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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 취임식 때 헌법 준수 선서
헌법 수호자의 의무와 역할 매우 중요
윤, 헌재 결정에 승복의사 밝히지 않아
사회갈등 최소화하는 현명한 결정 기대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취임 선서문이다. 취임 첫 마디가 헌법 준수인 만큼, 대통령은 헌법 수호자로서의 의무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헌법은 국가 통치 체제의 기초에 관한 각종 근본 법규의 총체다. 또 헌법은 국가의 조직, 구성 및 작용에 관한 근본법이며 다른 법률이나 명령으로 변경할 수 없다. 헌법과 관련한 사항의 판단기관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다. 이곳에서는 탄핵 심판, 위헌법률 심사, 정당 해산 심판, 헌법소원 심판, 국가기관 사이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 등을 관장한다. 이처럼 헌재는 국가의 최고 법치 기관 중 하나로, 헌법 수호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핵심 역할을 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의 최종 변론이 지난달 25일 헌재에서 열렸다. 지난해 12월 14일 국회에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73일만이다. 이날 윤 대통령은 최후 진술을 통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계엄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에게 혼란과 불편을 끼쳐 드린 점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그러나 “직무에 복귀하면 개헌과 정치개혁 추진에 임기 후반부를 집중하겠다”며 그 과정에 국민통합을 이루는 데도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탄핵심판 소추위원인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윤 대통령이)헌법을 파괴하고 국회를 유린하려 했다”면서 “파면해 헌법 수호의 의지를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윤 대통령의 사과는 여러 차례 언급됐지만, 진정성 없는 포괄적 유감 표명 수준이라는 게 중론이다. 비상계엄 이후 국가적 손실과 국민적 상처에 비춰 보면 자성과 뉘우침은 여전히 미진하다. 윤 대통령은 최후 진술과정에서조차, 화가 난 국민 감정을 달래기보다 계엄선포 정당성을 주장하며 국회 봉쇄와 정치인 체포 등 위헌·불법 행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무장한 군대를 국민의 대의기관에 투입한 것에 대해선 “고작 280명의 실무장도 하지 않은 병력만 투입했다”고 변명했다. 1명의 군인이라도 국회 무력화를 위해 투입해서는 안되는 것이 헌법 정신이다. 11차례 변론 과정에 보여준 윤 대통령의 발언과 태도는 헌법 수호자로서의 예의를 갖췄다고 보기 힘들다.

계엄에 대한 반성과 성찰보다 장난 같은 은유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탄핵 심판 5차 변론에 출석한 그는 “이번 사건을 보면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지시했니, 지시받았니, 이런 얘기들이 마치 호수 위에 빠진 달그림자 같은 걸 쫓아가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언급했다.

5차 변론 엿새 후인 지난달 10일 오전 10시 58분 부산 기장군에 있는 한 은행에서 30대 남성이 돈을 탈취하려다 붙잡힌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비닐에 싸인 총 모양의 물건을 손에 쥐고 있었던 그는 2분 만에 시민에 의해 제압당했다. 비닐에는 공룡 모양의 장난감 물총이 있었다. 이 남성은 공과금을 내지 못해 살던 오피스텔에서 쫓겨났고,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필요한 게 많아진 상황이라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물총은 아들 장난감으로 확인됐다. 누리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분짜리 은행 강도가 어디있냐”며 “물총 든 강도가 특전사 동원한 대통령보다 감옥에 오래 있을 듯”이라고 비유했다. 다친 사람 없고, 빼앗긴 돈이 없다고 강도죄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헌재는 대통령 탄핵 심판 변론을 종결한 상태에서, 재판관 평의를 거쳐 이달 중순께 선고를 내릴 전망이다. 문제는 그 후다. 탄핵 찬반 집회로 나라는 갈라지고 일촉즉발의 충돌 위기를 맞고 있다. 헌재의 인용 결정으로 대통령이 파면되든, 기각돼 복귀하든 둘로 갈라진 국민 마음을 통합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헌재 결정에 승복한다는 메시지를 내놔야 한다. 헌법 수호자인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다. 탄핵 심판 소추위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도 동참해야 한다. 현재 결정은 곧 헌법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자신에게 불리한 결정이 내려질 경우에 대비해 지지자를 부추기는 행위는 ‘제2의 내란’이나 다름없다. 12·3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은 이제 헌재의 결정만 남았다. 헌재가 헌법 정신에 근거해 국민통합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현명한 결정을 내려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길수 중서부경남본부장


김길수 기자 kks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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