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으로] 즐거움 너머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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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공동연구원

대한민국은 한때 학생들을 때리면서 가르치는 나라였다. ‘시범 케이스’로 맞는 학생을 보면, 나머지 학생들은 저렇게 되지 말아야 할 방도를 찾고는 했다. 무엇이 올바른지에 대한 사유 없이 당장 맞기 싫어 거머쥐는 윤리 감각은 대체로 그 뿌리가 얕다. 또 한번 경험하거나 목격한 폭력은 무엇을 시행하거나 정지하는 손쉬운 도구이자 강렬한 본보기로 옮아간다.

그런 세상에서는 폭력을 쓰지 않고, 개인의 윤리 감각을 기를 공간을 마련해주고,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느낄 즐거움과 보람의 감각을 환기하는 것이 중요한 교육론일 수 있다. ‘참교육’이라는 말이 요즘처럼 보복과 처벌을 뜻하기 이전에는 그 말이 실제로 그런 뜻으로 사용되었다. 선생이 학생 때리기를 예사로 알던 시절에는 그런 접근이 선생과 학생 모두를 인간답게 만드는 유익한 방도였다.

세월이 흘러 대한민국은 교육 현장에서 학생을 때리지 않는 것이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학생들의 주체성을 믿고 그들의 즐거움을 지고의 가치로 대접하는 교육론도 희미한 잔영으로 남았다. 그 사이 사회의 환경도 변했다. 돈을 지불했으니 돈값을 내놓으라는 식의 소비자 정체성으로 모든 가치에 접근하는 풍토가 도처에 만연했다. 학생들에게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의 즐거움을 표현할 수 있는 장이 열렸다.

교사의 체벌이라는 중앙집권적 폭력이 사라진 후에는 학생들간의 학폭이 난무하고, 학생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제 나름의 즐거움을 표출한다. 학생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노알라’로, 여성을 ‘꼴페미’로, 트랜스젠더를 ‘젠신병자’로 부르는 것은, 그 행위가 그들에게 대체로 즐겁기 때문이다. 그 즐거움은 체벌이 만연하던 시절 뜻있는 어른들이 은연 중에 학생들에게 권장하던 것이다. 체벌이 사라진 자리에는 훈육 대신 방임이 남았다.

학생들로 하여금 폭력을 거두고 즐거움을 장려하면 그들로부터의 윤리 감각이 바로 서리라던 것이 지난 시절의 믿음이었다. 온라인의 소위 ‘해방적’ 공간에서 남성이 여성을, 여성이 트랜스젠더를 무시로 ‘패는’ 세상에서, 즐기라는 말은 거꾸로 그 상황을 지속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만일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학생을 ‘패던’ 시절로 돌아가지 않을 것을 전제로, 새 시대에 맞는 사회 윤리의 감각을 새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여기 오늘의 책무다.

고래로부터 인류는 살인과 강간의 즐거움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인터넷과 커뮤니티가 사방으로 열린 이 시대에, 다양한 사회 구성원을 상호 식별할 윤리를 바로세울 방도는 분명히 있다. 그 윤리의 시작은 내 즐거움에도 불구하고 모름지기 해서는 안되는 일이 있음을 훈육하는 것이다. 지난날의 그릇된 믿음과 달리, 그 훈육은 누구를 때리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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