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잠재적 범죄자' '극우' 매도에 분노하는 2030 남성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공모 칼럼니스트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남녀 갈등 출발
2030 남성 진보 이탈 여론 지형 바꿔
문재인 정부 들어 갈등 구도 공고해져
‘2찍남’ 등 2030 남성 조롱 문화 확산
탄핵 정국 젊은 남성 극우 매도 분위기
‘낙인과 배제’는 유권자 등 돌리게 해
2030 남녀의 갈등이 본격화한 건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부터다. 한 20대 여성이 서울 강남역 인근 빌딩 화장실에서 일면식 없는 남성의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다. 이 안타까운 사건이 남녀 갈등으로 비화한 건 범죄의 원인을 둘러싼 시각 차이 때문이었다. 2030 여성들은 이 사건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여성혐오 범죄’라고 보았다. 남성들은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살인사건’이라고 했다. 갈등은 정치권으로 비화했다. 진보 진영에서 ‘남성은 잠재적 범죄자’라는 구호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2030 남성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 등 거대 양당은 조금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정의당·녹색당 등 진보 정당들은 이 논쟁으로 큰 홍역을 치러야만 했다.
‘남성은 잠재적 범죄자’라는 구호는 청년층 여론 지형을 바꾸는 발단이 됐다. 그전까지만 해도 청년들은 남녀 불문 대체로 진보 성향을 띠었다. 그런데 이때를 기점으로 중도에서 온건 진보를 아우르는 남성들의 진보 이탈이 시작됐다. 극우 성향의 ‘일베저장소(일베)’ 대 ‘나머지 다수’ 구도로 대립하던 온라인 커뮤니티 지형도 남성 대 여성으로 바뀌었다. 이 구도는 문재인 정부에서의 여러 남녀 갈등 사건을 거치며 더욱 공고해졌다.
박구용 전 더불어민주당 교육연수원장은 얼마 전 한 유튜브 채널에서 2030 남성들이 “사유하지 않고 계산만 하는 세대”라며 “스스로 말라비틀어지게 만들고 고립시켜야 한다”라고 주장해 물의를 빚었다. 이 발언은 2030 남성들이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 큰 공분을 샀다. 이번 일은 과거 “60대 이상은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투표 안 해도 된다”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던 정동영 의원의 사례와는 다르다. 정 의원의 ‘노인 비하 발언’이 즉흥적으로 답변하다가 나온 말실수였다면, 박 전 원장의 설화는 길게는 ‘잠재적 범죄자’ 논쟁 때부터 계속된 갈등 구도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요즘 남성 청년들은 보수의 핵심 지지층이 된 듯 보이나 사실 이들의 국민의힘에 대한 충성도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이번 정부 내내 바닥을 기었던 2030 남성들의 대통령 지지율은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제20대 대선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2021년 12월엔 ‘이대남’들의 이재명 민주당 후보 지지율이 한때나마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앞서기도 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는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등 민생 공약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었던 데 반해 윤석열 후보는 “극빈층은 자유를 모른다”거나 “앞으로는 구직앱이 생길 것”이라는 등의 발언으로 논란을 자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지부진하던 그의 2030 남성 지지율은 2022년 1월 들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다시 손잡고 ‘한 줄 공약’을 쏟아내면서 급증했다. 그 기세에 놀란 민주당은 반대편에 있는 2030 여성들을 호출했다. ‘N번방 제보자’로 유명한 박지현을 영입해 전면에 내세웠다. 이때부터 대선은 본격적인 2030 남녀 대결 양상을 띠게 되었다.
문제는 이 시기부터 진보 진영 내에서 2030 남성들을 조롱, 비하하는 문화가 확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민주당 주요 스피커들과 지지자들은 소위 ‘2번남’, ‘2찍남’(모두 2번에 투표하는 남성이라는 뜻) 등의 단어를 만들고 확산시켰다. 요컨대 “국민의힘에 투표하는 젊은 남성은 못 배우고 지질한 남성”이라는 내용이었다. 본인들 딴에는 “우리를 찍어야 세련되고 배운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려는 심산이었겠으나 결과적으로 패착이었다. 정치 성향을 이유로 유권자를 조롱하고 배척하는 태도가 가운데서 관망하고 있던 2030 남성들조차 돌아서는 계제로 작용했다.
최근 양상도 비슷하다. 탄핵 촉구 집회가 한창이던 지난 연말, 적극적으로 거리에 나선 청년 여성들과 달리 남성들은 좀처럼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면서도 그 성과를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챙기는 데에는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제도권에서의 해결을 기다리며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진보 진영 일각에서 “2030 남성이 극우화해서 탄핵에 반대하고 서울서부지법 난동을 일으켰다”는 비난이 터져 나왔다. 집회에 나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극우’로 명명된 2030 남성들은 반발했다. “예전엔 우리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더니 이제는 극우라고 매도하느냐”라는 것이다. 물론 이 집단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찬성 여론은 여전히 높다. 하지만 어느새 민주당을 훨씬 앞서게 된 국민의힘 지지율은 정치권이 유권자를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준다. ‘낙인과 배제’ 전략이 더 많은 유권자를 끌어들일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