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허망하고 씁쓸한 대왕고래 프로젝트, 어이할꼬
8개월 만에 끝난 윤석열 정부의 ‘일장춘몽’
국민 신뢰 추락, 정부 책임은 피할 수 없어
하지만 자원 개발은 국가적인 중대 과제
정치권 간섭 배제·국민 인내심이 전제 조건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를 개발한다는 일명 ‘대왕고래 프로젝트’. 지난해 6월 윤석열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직접 발표하며 온 국민의 눈길을 끌었던 이 프로젝트는 불과 8개월 만에 ‘희망 고문’으로 끝나고 말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6일 “경제성을 확보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실토(?)하면서 대국민 사기극까지 거론되는 등 후폭풍이 만만찮다. “석유 발견”이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국민을 상대로 정부가 섣부른 발표로 우롱한 셈이다.
■ 윤 정부의 실상 보여준 “석유·가스 대박”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어이없는 실상이 국민에게 공개되면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책임론은 물론 향후 정부의 다른 유전 개발 사업도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되짚어 보면 이 프로젝트는 발표 당시부터 언론 매체와 정치권의 여러 의혹에 휩싸였다.
영일만 앞바다에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다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환영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런데 단지 가능성이 높다는 정도의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그것도 윤 대통령이 직접 국정브리핑 1호로 발표하면서 뭔가 ‘정치적 냄새’가 난다는 의혹을 자초했다. 브리핑에 배석했던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매장 가치가 삼성전자의 시가총액 5배 정도”라고 허풍을 떨었다.
당시 윤 정부는 4·10 총선 참패 후 국민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져 이를 만회할 정치적 소재가 절실하던 때였다. 결국 모든 국민이 솔깃할 ‘막대한 양의 석유 매장’을 발표하며 안팎의 눈길을 끄는 데 성공했지만, 채 1년도 못 가 스스로 “정무적인 이유로 많은 부담을 안고 이 프로젝트가 진행됐다”라며 같은 입으로 두말을 뱉고 말았다. 졸지에 국민만 바보가 된 기분을 느껴야 했다.
■ “윤 정부가 하는 일이 그렇지”, 그럼에도…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큰소리쳤던 정부의 1차 탐사 시추 실패 자인으로 추가 사업 진행이 불투명해졌다. 사업을 계속 추진할 동력 확보 자체가 어려워졌다. 담당 공기업인 한국석유공사도 올해 안으로 2차 시추는 하지 않을 방침임을 내비쳤다. 게다가 프로젝트의 신뢰성과 가능성이 급락하면서 예산 확보는 물론 추가 탐사와 관련한 채권 발행 등 자금 조달도 매우 불확실해졌다. 국민적 신뢰가 바닥이고, 탐사 비용 조달마저 어렵다면 프로젝트의 명맥은 유지되기 어렵다.
프로젝트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 역시 부정적이다. 대통령 탄핵심판 이후 보수 정권이든, 진보 정권이든 간에 국민 신뢰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유전 탐사를 다시 시작하기는 쉽지 않다. 국민들의 숙원인 산유국의 꿈을 이처럼 정치적 계산으로 허망한 지경에 빠트린 윤석열 정부의 거칠고 엉성한 일 처리가 더없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유국을 향한 자원 개발은 무작정 포기할 수가 없는 사업이다. 정권과는 무관한 국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처럼 하루아침에 우리 바다에서 석유나 가스가 펑펑 쏟아질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나 지나친 흥분은 삼가야 한다.
대신 넉넉하게 시간을 잡은 뒤 정밀한 분석을 통해 조용히 유전의 실체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도 ‘대박’을 거론하며 국민들을 들뜨게 하지 말고, 국민들도 그런 소리에는 애초부터 귀를 닫는 편이 더 낫다. 학계에서도 1차 시추로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는 상태가 아닌 만큼 앞으로 동해의 심해 지역 탐사를 통한 지질 데이터 축적과 분석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모두 새겨야 할 지적이지만 가장 기본적인 전제 조건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정권·정치권의 정략적인 간섭 배제와 국민의 인내심이지 싶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