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의 생각의 빛] 글쓰기의 악몽
문학평론가
허공의 말들이 세상을 재단하는 시대
말을 모아 글로 남겨야 하는 일은 고통
심연의 사유 담는 본래 가치 회복되길
지난 연말부터 설날을 지난 지금까지 한국에서 벌어진 윤석열 대통령 탄핵 관련 사태를 생각하면, 이처럼 영화나 드라마보다도 더욱 눈과 귀를 의심하게 하는 때도 아마 없을 것 같다. 2017년 전직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으로 국정농단의 전모가 드러날 때도 우리는 눈과 귀를 의심했던 사실을 기억한다. 아직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근래 10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에 두 명의 대통령이 탄핵 정국의 주인공이 돼 TV 화면에 생생하게 중계되는 ‘비극 아닌 비극’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통령 탄핵 사건을 두고 연말부터 연일 탄핵 찬반 집회가 도심 한복판에서 꽁꽁 언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현재 구치소에 구속 수감된 대통령이 지난해 가을 무렵부터 부쩍 “반국가 세력” 운운하면서 그간 무의식에 잠들어 있던 국민의 이념 정서와 감정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할 당시만 해도 사태가 이렇게 급박하게 파국으로 치닫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나 또한 대통령의 경직된 사고를 걱정하면서도 역사 교과서에서나 존재한다고 믿었던 ‘비상계엄’이 2024년에 선포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대통령의 지난 발언들을 비롯해 대통령 고교 동문인 몇몇 국무위원과 국방부 예하 수장들의 인선과 승진을 생각하면 이제야 뭔가 아귀가 맞춰지는 듯하다.
물론 이런 ‘복기(復棋)’에서 끄집어낸 정황과 속내를 꿰맞춰 본 사람들이 많을 줄로 안다. 여기에 지난 1월 19일 폭도들의 법원 침탈, 계속된 선거관리위원회 부정선거 의혹 제기, 극우 유튜버들의 지속적인 ‘가짜뉴스’ 선동이 국민의 눈과 귀를 혼몽하게 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는, ‘새해’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지난해에다 여분의 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법률 체계가 탄핵 심판 과정에서 교묘하게 적용되어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의 과정뿐만 아니라 심지어 계엄령 선포 직후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에 들이닥친 계엄군의 작전마저도 대통령의 ‘통치행위’란 이름으로 하등 위법일 리 만무하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에서 봇물 되어 터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은 단순하고 명백하지만 그 사실을 들여다보는 눈과 인식이 다양해진 점에서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대통령의 주장대로 고도의 통치행위였든, 자신에게 심각한 파국을 안겨다 줄 것이 분명한 국회 특검법 상정을 무마하려는 의도에서 비롯한 목숨을 건 무리수였든, 지금의 ‘대한민국호’는 분명 안개로 가득한 바다 위에 위태롭게 떠 있다. 차기 대선을 꿈꾸는 예비후보들도 자신의 속셈을 위장한 채 당분간 눈에 보이지 않는 선거 전략을 기획할 것이다. 언론 보도에서 탄핵 관련 단독기사와 속보가 끊이지 않는 이때, 글쓰기가 업인 나 자신을 돌이켜본다.
글은 말보다 어렵다고들 한다. 당연한 것이, 말은 수시로 할 수 있지만 글은 곰곰이 생각한 뒤에라야 나오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문장이나 문맥 또한 일관성이 있고 호응에 맞아야 함은 물론이요, 글에 내비친 글쓴이 견해의 진실성 여부와 관계 없이 그 생각의 앞뒤가 명쾌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사람이 말로써 드러내지 않는 평소 자신의 철학과 소신, 그리고 세계관을 은연중에 세상에 알리는 일이 된다. 어떤 누구도 어떤 이유에서든 글쓰기의 자유를 침해할 자유가 없다. 사람은 글을 쓸 때 가장 진솔하고 정직한 상태로 돌아간다. 글은 거짓을 모르기 때문이다. 설령 거짓이나 현혹의 수단으로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의도를 숨길 수 없기에 글은 거짓을 모른다.
글이 새처럼 광활한 하늘을 휘젓고 다니면서 인간의 무한한 상상과 크레바스(빙하 속 깊고 거대한 틈)와도 같은 심연의 사고를 확장할 때, 인간 문화와 정신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글쓰기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건 아니다. 요즘처럼 ‘말하기’와 ‘듣기’로써 세상을 함부로 재단하고 확신하고 맹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시대일수록 글이 지닌 ‘오묘한’ 가치를 되짚는 일이 잦아졌다.
1·19 ‘법원 찬탈’을 감행했던 젊은이 대다수가 자신의 그런 행위를 초래하게 한 가장 직접적인 동기는 바로 ‘말’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들었던 말은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일종의 전염병처럼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을 것이다. 이런 사실은 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역설을 깨닫게 한다. 그런 말을 엄선해서 글로 옮겨야 하는 나로서는 새해가 되어서야 비로소 ‘글쓰기의 악몽’을 예감한다. 악몽 같은 현실은 시간이 지나면 어떤 형식으로든 수습이 되지만, 한 번 휘갈긴 글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속내가 점점 드러나니 말이다. 그나저나 또다시 을사년을 맞이한 심정이 괜한 기우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