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영의 집피지기] 좁으니까 청춘이다?
경제부 부동산팀 팀장
한때 임대주택은 ‘님비’의 전형이었다. 임대주택이란 말만 나오면 인근 주민들은 물론 지역 정치권까지 나서 조직적으로 반대를 하곤 했다. 집값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요즘은 임대주택 이미지가 크게 개선됐다. 입구부터 건설사 로고를 박은 문주를 설치하고, 단지 외관도 세련되게 꾸며 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임대주택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청년들도 임대주택에 사는 걸 전혀 숨기지 않는다. 저렴한 임대료에 전세사기 당할 염려도 없어 오히려 인기가 날로 치솟는다. 지난해 11월 청약을 진행한 부산시청 앞 행복주택 1단지의 경쟁률은 9.1 대 1이나 됐다.
하지만 임대주택 정책은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임대주택에 입주한 청년들은 이곳에서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한다. ‘닭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좁디 좁은 면적 때문이다. 곧 입주가 시작될 시청 앞 행복주택 1단지도 총 589세대 중 전용면적 26㎡가 총 278세대로 비중이 가장 높다. 전용 26㎡는 8평 남짓으로 원룸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의 자녀가 이곳에 청약을 넣었다는 부산시 한 고위공직자 출신 인사는 “아들이 독립해서 차근차근 돈을 모으겠다며 행복주택에 청약을 넣었던데, 비좁은 방을 실제로 둘러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시의 정책 결정에 관여하던 사람으로서 이율배반적일지도 모르겠으나 솔직히 청약에서 떨어졌으면 한다”고 털어놨다.
상황이 이런데도 부산시는 청년 주거 안정을 위한다며 자녀 1명을 출생하면 20년, 2명 이상을 출생하면 평생 공공 임대주택에 거주할 수 있게 지원한다고 지난해 11월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꿈꾸기 힘든 좁은 집에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줬으면 한다는 게 청년을 바라보는 지자체의 시선이다.
부산은 물론 전국에는 전용면적 60㎡(약 24평)가 넘는 임대주택을 찾아보기 어렵다. 임대주택의 전용면적이 60㎡를 넘어가면 정부가 임대주택 건립에 국비로 보조하는 지원금이 확 줄어드는 탓이다. ‘임대주택에 살면서 감히 20평 대를 원하느냐’는 삐딱한 시선과 ‘임대주택 수만 호를 수년 내 공급하겠다’며 공급 세대 숫자에만 매몰된 정치적 구호가 결합한 결과가 아닐까 추측한다.
이유나 과정이 어찌 됐든 청년을 위한 임대주택은 변화가 필요하다. 청년들이 지역에서 일터와 집터를 구하고, 가정을 꾸려 아이까지 낳아 기르게 하는 것이 지자체 청년 정책의 목적이라면 닭장 같은 임대주택은 임시변통조차 되지 못한다. 몸만 간신히 구겨 넣어 잠을 청하는 집에서 청년들이 미래를 그릴 수는 없다. 20평 대 임대주택 건립에 국비 보조금을 확대하고, 지자체는 보다 현실적인 주거 혜택을 지원하도록 고심해야 한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