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무엇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지난해 계엄 이후 서점가 '역주행'
극단주의 지도자 등장에 대한 고찰
극단적 대통령 구속된 현 시점에도
여전히 '극단의 정치' 식을 줄 몰라
우리 속 작은 극단주의부터 멈춰야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2022년 대통령 선거 때 난 투표하지 않았다. 참정권을 얻은 이래 대선을 건너뛴 건 처음이었다. 역대 최고의 비호감 선거, 아무리 양보해도 찍고 싶은 후보가 없었다. 올해는 2년 이른 대선을 치를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찍고 싶은 사람이 없다.
공수처가 왜 내란 사건을 수사하는지, 토를 다는 사람들이 많다. 결국 불감당에 손들고 검찰에 사건을 이첩했다. 신문사 문화부장이 왜 칼럼에 선거 이야기를 하는지, 토를 달 것 같기도 하다. 미리 변명하자면, 지금부터 하려는 것은 선거 혹은 정치 이야기라기보다 남은 연휴 동안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은 한 권의 책 이야기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기와 대니얼 지블랫이 함께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국내에 출간된 지 5~6년이나 된 책이 최근 서점가에서 ‘역주행’ 중이라고 한다. 문화콘텐츠 플랫폼 예스24에 따르면, 올 1월 사회정치 분야 베스트셀러 20위권 안에 재진입했다. 지난해 12월의 어느 밤 한국의 민주주의가 한순간에 무너질 뻔한 아찔한 상황을 TV 화면으로 생생히 목격한 사람들이, 도저히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납득할 수 없어 그 이유를 찾고 싶었던 모양이다.
무엇이 한국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가. 물론 최근의 위기는 부정선거 음모와 국회 내 반국가세력의 존재를 맹신하는 극단적 대통령이 불러온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한 해답이 될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에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극단주의자는 언제나 존재했다. 다만 과거의 그들은 대체로 정치의 변두리에 머물렀다. 문제는, 이제 그들은 정치의 중심에 서있다는 점이다.
비상계엄 이후 우리는 극단주의자가 권력을 잡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실감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권력자의 권한 축소를 위한 다양한 방법(개헌)에 새삼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나는, 왜 극단주의자가 이처럼 손쉽게 권력의 중심에 설 수 있게 됐는지가 더 궁금하다. 심지어 기호 1 극단주의자와 기호 2 극단주의자의 비호감 대결인 선거도 부지기수다.
책은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들이 어떤 조건에서 일국의 리더로 선출되는지, 선출된 독재자들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트럼프를 비롯해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들은 어떻게 권력의 중심부에 다가갈 수 있었을까. 책은 이들을 선거 전에 걸러내는 정당의 ‘문지기’(게이트키핑) 기능이 사라진 것을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는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부터 유튜브에서 극단적 목소리를 내던 사람이 선거를 앞두고 특정 정당에 입당하고 또 공천을 받는다. 정당은 그들(극단주의자)의 가치관이 자당의 정치이념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그들 손에 얼마나 많은 열성 표가 쥐어져 있는지를 셈할 뿐이다. 지금의 대통령은 또한 어떠한가. 유튜브 출신은 아니지만, 조국 사태 당시 유튜브 스타 못지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 결과, 보수의 이념 따위는 모르겠고 그저 이길 수 있다는 표 계산만으로 보수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됐다.
대통령이 구속된 지금도 여전히 많은 극단주의자가 목소리를 높인다. 과격 시민들의 ‘법원 습격’을 애써 옹호하고, 아직도 부정선거와 중국을 연결시킨다.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그들을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정치 바보’라며 오히려 걱정한다. 당장은 추종자들의 환호에 취해있지만, 극단의 정치로는 중도를 끌어안을 수 없고, 결국 다음 선거에서 고배를 마시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혹은 저러다 당내 경선 후엔 슬그머니 중도인 척 할 거라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 중 누군가는 선거철 말바꾸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일부는 극단의 정치로도 얼마든지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거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들의 전망이 마냥 틀렸다고 말할 자신이 나에겐 없다. 당장 최근의 차기 대선 좌우 양자대결 여론조사만해도 그렇다. ‘극단의 경쟁력’이 예전만큼 약해보이지 않는다. 결국 많은 정치인이 극단화되는 것은, 그들이 볼 때 오늘날 유권자 역시 극단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가. 민주주의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어쩌면 대통령의 극단주의가 아니라, 정치인의 극단주의가 아니라, 우리 안의 극단주의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극단주의자인가. 열에 아홉은 아니라고 대답할 테다. 그러나 그저 ‘나는 (혹은 우리는) 옳고 그들은 틀리다’라는 작은 신념에서도 극단주의는 싹튼다. 우리 안의 작은 극단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경계의 날을 벼리기 위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어쨌든 이 글은 어디까지나 책 이야기이므로….
김종열 문화부장 bell10@busan.com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