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파리넬리, 바로크 시대의 슈퍼스타
음악평론가
“그의 억양은 순수했고, 트릴은 아름다웠으며, 호흡 조절은 비범했고, 성대는 민첩했다. 그는 가장 넓은 음정을 쉽고 빠르고 명확하게 소화해 냈다.”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요한 콴츠는 가수 파리넬리에 대해 이렇게 극찬했다.
지금으로부터 320년 전 오늘, 당시 나폴리 왕국의 안드리아에서 파리넬리가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카를로 브로스키(Carlo Broschi, 1705~1782)였다. 열두 살 때 아버지에 의해 거세를 당했고, 당시 유명한 작곡가이던 포르포라의 제자가 되어 노래를 배웠다. 그의 목소리는 아름답고 힘이 있었으며, 고난도의 기교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는 이름을 ‘파리넬리’라는 예명으로 바꾸고 이탈리아를 넘어 전 유럽으로 기세를 확장해 나갔다. 말년에는 스페인 궁정에서 활동했으며, 은퇴 후에도 볼로냐로 가서 유유자적하게 지내다가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왜 굳이 거세 가수를 써야 했을까?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서양 중세 시대엔 교회에서 여성들이 노래할 수 없었다. 높은 음역의 노래는 사춘기 이전의 어린 소년에게 맡겨 부르게 했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로 음악이 급격히 발달하고 화성이 복잡해지면서 소년성가대로만 높은 음역을 대체하기엔 한계가 왔다. 소년들은 변성기라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변성기가 되기 전에 ‘거세된 가수’라는 뜻의 ‘카스트라토’를 만들었다.
음악사에는 카파렐리, 세네시노, 포르포리노 등 바로크 시대에 전 유럽을 열광케 한 슈퍼스타의 이름이 전해져 온다. 그중에서도 파리넬리의 인기는 특별했다. 하이브리드적인 매력이라고나 할까? 남성의 힘과 여성의 관능미와 어린이의 깨끗함을 함께 지닌 듯했다.
프랑스혁명 이후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고 오페라의 취향도 달라지면서 카스트라토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다가 1994년 제라르 코르비오 감독 영화 ‘파리넬리’가 발표되면서 카스트라토라는 역사적 존재가 전 세계에 다시 알려졌다. 오늘의 영상은 파리넬리가 오페라 ‘이다스페’ 중에 나오는 아리아, ‘행복의 그늘에서’를 부르는 장면이다. “행복의 그늘에서 사랑하는 그대와 축배를 드네. 행복의 그늘에서 우리 사랑이 아름답게 빛나네. 행복의 그늘에서 우리 사랑이 영원하길 간절히 빌며 기쁨에 젖네.”
지금은 당연히 카스트라토를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남성이 가성을 이용하여 높은음을 내는 카운터테너가 활동하고 있다. 안드레아스 숄, 필립 자루스키, 프랑코 파지올리, 야쿠브 오를린스키 등의 카운터테너 스타가 나왔으며, 한국에서도 이동규, 정민호, 장정권, 최성훈 등이 활발하게 무대를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