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새해엔 '무해력, 원포인트업, 아보하' 하세요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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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 한국을 관통할 키워드 중에서
작고 순수한 것들이 갖는 힘, 무해력
소소한 목표를 성취하는 원포인트업
무탈한 보통날에 대한 찬사, 아보하
오늘보다 한발짝 더 내딛는 새날 되길

‘푸른 뱀의 해’라는 을사년이 겨우 이틀 뒤라니…. 시간이 정말 쏜살같이 간다고 느껴지는 세밑이다. 나이 드는 만큼 세월 가는 속도도 빨라진다는 우스갯소리가 허투루 들렸는데, 이제는 매해 체감하는 속도가 진심 다르다.

매년 이맘때면 서점가에 등장하는 책이 있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와 소비자학과가 내놓는 〈트렌트 코리아〉다. ‘트렌드 코리아 2025’는 기후감수성(기후 변화의 민감성을 바탕으로 한 소비자와 기업의 태도), 옴니보어(Omnivore·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는 잡식성 소비), 그라데이션-K(단일민족의 정체성을 넘어 다양한 글로벌 문화를 수용하는 한국), 토핑경제(표준화된 기성제품 대신 나만의 취향과 개성을 토핑처럼 덧붙여 강조하는 소비 트렌드) 등 10개의 키워드를 제시했다. ‘아, 내년은 우리 사회가 이런 흐름을 타겠구나’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고 재미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무해력, 원포인트업, 아보하 3가지 키워드는 크게 공감이 됐다.

먼저 무해력(無害力). 작고 귀엽고 순수해서 해를 주지 않는 것들이 사랑받으며, 그 존재만으로 가지게 되는 힘을 뜻한다. 사방이 공격해오는 것만 같은 이 살벌한 세상에서 무해력은 많은 이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힘이다. 올해 초까지 국내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신드롬을 일으켰던 푸바오가 무해력의 대표 주자라 할 수 있겠다.

이와 함께 나다움을 잃지 않는 새로운 자기계발의 패러다임, 원포인트업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더욱 번성할 전망이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조금씩 성취하고, 도달 가능한 작은 목표를 세워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성장하는 건데, 올해를 강타한 러닝크루 열풍이 시작점일 수도 있겠다. 꼭 러닝이 아니더라도 하루 단위로 소소한 목표를 이뤄내면서 일상 속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일은 ‘진정한 고귀함은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보다 나아지고 있는 것’이라는 뜻깊은 표현을 떠올리게 한다.

또, 아주 보통의 하루라는 뜻의 아보하는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을 겪으면서 평범한 일상을 빼앗길 뻔했던 많은 이들에게 널리 회자되고 있는 용어다. 가히 이달의 최고 인기 키워드가 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아보하는 행복의 과시로 변질된 소확행에 대한 피로이자 반발로 읽힌다. 작더라도 확실하게 행복을 추구하고 나아가 그것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과시해왔던 행위는 어쩌면 되레 행복을 방해하게 되어버린 건 아닐까. 고백하자면 나도 소셜미디어 광풍에 동조돼 ‘예쁜 집밥 사진 쯤은 SNS에 올려야 하지 않나’ 하는 찜찜한 의무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던 것을 반성하게 된다.

2024년은 개인적으로 굵직한 이벤트가 있었다. 연초에는 갑상선암이 발견돼 수술과 입원으로 혼미한 시간을 보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원망의 마음이 일기도 했지만, 차츰 몸 속에 자리잡은 암 조직을 도려내고 제대로 건강을 챙기자는 쪽으로 생각이 옮겨갔다. 고맙게도 수술은 잘 끝났고, 건강식을 가까이 하게 됐으며, 사부작사부작 꾸준히 몸을 움직이는 생활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

그뿐인가. 보름 전에는 생애 처음으로 돋보기 안경을 맞췄다. 태어나 단 한번도 안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 준수한 시력을 자랑했건만, 업무 특성상 근무시간 대부분을 커다란 모니터와 마주하고 있으니 갈수록 눈이 피곤해졌고 차츰 스마트폰이나 책 속 글자가 흐릿하게 보이게 됐다. 흰 머리, 팔자주름, 퇴행성 관절염에 이어 노안까지 찾아온 건데, 연거푸 닥친 노화현상이 씁쓸하기도 했지만, 어쩌지 못하는 현실을 그저 평온하게 통과해보자는 다짐으로 정리하고 있다.

뱀의 해, 내년에는(고작 이틀 뒤지만) 올해의 나보다 한두 발짝 정도라도 앞서 나가고자 한다. 코리아 트렌드에 맞게, 나다움을 잃지 않겠다는 것을 기본값으로 두고 말이다. 올해 하루 1만보 이상 꾸준히 걸었으니, 새해에는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뛰어보려고 한다. 띄엄띄엄 먹었던 생야채 샐러드는 더 열심히 챙겨 먹고, 올해 겨우 한달 정도 체험 수준에 머물렀던 명상을 다시 시간 내어 시도해볼 생각이다. 스스로 안아주고 보듬어주는 ‘셀프 위로’도 시작할까 한다. 나를 가장 날 알고 이해해주는 사람은 역시 나일 테니까. 잠자리에 들기 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오늘 하루 감사했던 일, 스스로 잘했던 일을 떠올리면서 양팔로 나를 안아주는 루틴을 만들면 긍정 에너지가 샘솟을 것만 같다.

다시 트렌드 키워드로 돌아가, 독자 여러분께 건네는 새해 인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 풍진 세상에서 오늘 하루 잘 버텼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아보하). 작은 일상은 소중할 뿐더러 힘도 세기에(무해력), 오늘 실천할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해 꾸준히 이뤄내면서 여러분 만의 가치를 끌어올리시길(원포인트업) 기원합니다.”

김경희 편집부장 miso@busan.com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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