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파의 생각+] 2024년에 읽는 <1984>
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교수·공모 칼럼니스트
예브게니 자먀찐의 〈우리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더불어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꼽히는 조지 오웰의 〈1984〉. 소설 〈1984〉는 지금으로부터 75년 전에 출판되었지만 〈1984〉를 통해 던지는 오웰의 경고는 2024년을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소설의 배경인 오세아니아는 극단적 전체주의 사회다. 오세아니아의 정치 기구인 ‘당’은 가공의 인물 ‘빅 브라더’를 내세워 강력한 독재를 펼친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 체계와 권력 유지를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당원들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우선 전파의 송·수신이 모두 가능한 텔레스크린과 마이크로폰을 곳곳에 설치해 당원들의 모든 사생활, 일거수일투족 심지어 표정까지 철저하게 감시한다. 단순히 감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성욕까지 당에서 통제한다. 나아가 단어의 수를 줄인 신어를 만들어 사용하게 하는데 이를 통해 생각의 폭을 좁힌다. 당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당원들의 욕구와 사고까지 지배함으로써 그들의 권력을 영속화하려고 한다.
비상계엄령 꺼낸 집권 세력의 행태
75년 전 〈1984〉의 경고와 흡사해
국민 대다수의 깨어있는 정신 중요
2024년 우리 국민들이 직접 증명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이러한 당의 통제에 의문을 품는다. 즉 사람들의 의식과 욕구를 통제하면서까지 당이 권력을 가지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 근원적 동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조지 오웰은 이렇게 답한다. 유사 이래 권력을 찬탈한 이들은 국민에게 권력을 한시적으로 위임받아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든 뒤 다시 권력을 돌려주겠다고 하였지만, 누구든 권력을 장악하면 포기하지 않았다고. 권력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라고.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그는 정부 정책에 대한 감시와 비판, 견제를 ‘반국가적’이라는 단 하나의 단어로 치환하였다. 그리고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 총을 든 군인을 투입해 스스로 빅 브라더가 되려고 하였다.
대통령도 대통령이지만 대통령이 속한 ‘당’은 더욱 납득하기 힘들다. 그 당은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을 위헌·위법하다고 말하면서도 헌법을 파괴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과 관련해서는 ‘분열하면 당이 망한다’며 부결을 당론으로 정했다. 그리고 첫 번째 국회 본회의에서 투표를 포기하고 퇴장함으로써 탄핵안을 보이콧하였고, 다음 본회의에서는 당 소속 의원 108명 중 85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더 섬뜩한 것은 국민의 뜻에 따라 탄핵안에 찬성한 의원을 ‘이기주의자, 배신자, 세작, 쥐새끼’로 몰아세우며 색출하여 반란자를 징계·처벌하자고 한다는 것이다. 그 당에 민주주의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그 당이 보이는 전체주의적 발상과 행태는 흡사 〈1984〉를 연상케 한다.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성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주장을 뻔뻔하게 내세우고, 때로는 폭력적인 패악질까지 서슴지 않는다. 권력을 활용해 어떤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는 사라진 채 오로지 권력 획득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추악한 민낯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당의 행태도 그 면면을 살펴보면 그 당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비상계엄과 탄핵을 빌미로 권력을 빼앗을 궁리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소설 〈1984〉에는 당원 계급 아래 전체 인구의 85%를 차지하는 무산 계급이 존재한다. 이들은 가난하여 당장 하루 먹고살기에 바쁘기 때문에 정치나 사회 구조에 관해 관심이 없다. 그러나 이들은 당원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고귀한 희생정신과 사랑, 인간적 가치를 지니고 살아간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이들이 무지에서 눈을 뜨고 행동에 옮길 때 비로소 당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84〉에서는 무산 계급이 깨달음을 얻지 못한 채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였지만 다행히 2024년의 대한민국 국민은 달랐다. 완전 무장한 특수부대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하는 장면이 방송되자 국민들은 국회로 달려가 군인들을 막아섰다. 그 당이 탄핵안 투표를 거부하고 반대할 때 수십만, 수백만 명의 국민들은 거리에 운집해 한 목소리를 내었다.
국민들의 함성에 탄핵안은 가결되었지만 아직 〈1984〉는 끝나지 않았다.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를 돌아보자. 탄핵 촛불 집회 이후 국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갔고 기득권 세력의 구태의연한 정치는 반복되어 지금의 사태를 만들었다. 따라서 국민들의 힘이 모인 이때, 국회의원 국민소환제와 같이 국민이 권력을 직접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기득권 정치 세력에 위임된 권력을 국민이 원할 때 언제든지 회수할 수 있도록 정치 구조를 개선해야 비로소 〈1984〉가 끝나고 새로운 해가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