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신파의 힘, 푸치니 ‘그대의 찬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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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자코모 푸치니. 위키미디어 제공 자코모 푸치니. 위키미디어 제공

1838년, 파리의 싸구려 방에 네 명의 젊은이가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직업은 시인, 철학자, 음악가, 화가다. 겨울이 되었는데 방세는 밀리고 난로에 넣을 땔감마저 다 떨어졌다. 그때 음악가가 레슨비를 벌었다며 신이 나서 들어온다. 어라, 돈이 생겼네, 집세는 무슨 집세, 술이나 마시러 가자! 너무나도 익숙한 청춘의 공식을 따라 그들은 술을 마시러 간다. 시인 지망생인 로돌포가 잠시 남아 있는데, 그때 운명적인 노크 소리가 들린다. 옆집에 사는 미미가 열쇠를 떨어트렸는데, 촛불이 없어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촛불 좀 빌려주세요.” 이 대목에서 오페라 ‘라보엠’은 음악사를 밝히는 불빛이 된다.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손이 맞닿는다. 로돌포는 미미의 손이 너무 차다면서 그 손을 잡고 녹여 주겠다고 한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너무나도 구태의연한 설정이지만, 이런 점이 ‘라보엠’의 매력 포인트다. 이 오페라에는 귀족도 없고 영웅도 없으며 악당도 나오지 않는다. 치정과 배신과 탐욕으로 죽고 죽이는 드라마가 아니라 서민들의 구질구질한 일상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자, 손을 잡았으니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이때 로돌포가 부르는 노래가 테너 역사에 남는 명곡 ‘그대의 찬 손’이다. “내가 누구냐고요? 나는 시인이에요. 뭘 하냐고요? 시를 쓰지요. 어떻게 사냐고요? 그냥 살아요.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백만장자랍니다.”라고 허세를 떨며 그동안 미미를 마음에 두었음을 얘기한다. “내 마음의 금고에 간직해 온 꿈들이 당신의 두 눈 때문에 모두 날아가 버렸어요. 대신 그곳에 달콤한 희망이 자리 잡았죠”라는 식의 유치 발랄한 고백을 한다.

만일 이것이 연극의 대사였다면 형편없는 장면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어설픈 고백은 대사가 아니라 막강한 오케스트라가 뒷받침하고 있는 푸치니의 아리아다. 그 찬란한 음악의 힘 때문에 청중은 꼼짝할 수가 없게 된다. 신파조의 가사는 멜로디를 타고 향기를 내뿜기 시작한다. 몽롱하게 시작된 노래는 점점 끓어오르다가 하이 C의 막강한 고음으로 불을 댕긴다. 이 노래가 끝나면 미미가 답가를 보내고, 마침내 사랑의 이중창을 부르면서 오페라의 1막이 끝난다.

올해는 자코모 푸치니(1858~1924)가 세상을 떠난 지 딱 100주년이 되는 해다. 푸치니의 오페라에는 멋진 장면이 산더미처럼 많지만, 그중에서 딱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그대의 찬 손’을 가장 먼저 꼽을 수밖에 없다. 나로선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난생처음 본 오페라였으며, 테너의 위력을 체험한 첫 오페라였기 때문이다. 위대한 푸치니여, 편히 쉬시길!

푸치니 ‘라보엠’ 중 '그대의 찬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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