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인구 변화와 도시의 미래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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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형 일자리, 지역 소멸과 지속 가능성의 갈림길

전국 합계출산율 0.75명 ‘인구 절벽’
지역 청년 유출 탓 울산 110만 붕괴

경기 화성, 출생아 늘며 100만 돌파
첨단 기업 유치·취업자 수 증가 덕분
기술직 비례 서비스 직종 창출 효과
지역내총생산, 울산 추월 부산 추격

일자리와 도시 성장 상관관계 확연
첨단산업 전환 성장 동력 마련해야

지난해 11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24 부산 ICT 일자리박람회에서 개막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지난해 11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린 2024 부산 ICT 일자리박람회에서 개막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2023년 영국 남자 신생아 이름 중 ‘무함마드’(Muhammad)가 가장 많았다. 무슬림 이민 가정이 선호하는 ‘무함마드’는 ‘노아’ ‘올리버’ ‘조지’와 10년째 선두 경쟁 중인데 2022년 2위에서 이듬해 1위에 오른 것이다. 다산을 선호하는 이민자가 전체 출생률에 무시하지 못할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데, 이 현상은 독일도 마찬가지다. 2023년 태어난 신생아 중 무려 27.8%가 이민자 가정에서 나왔다. 2016년 통계를 보면 독일인 여성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당 기대 출생아 수)은 1.45명에 불과했으나 이민 여성이 1.95명이었던 덕분에 평균이 올라가 합계출산율 1.59명을 기록했다.

유럽은 인구 위기에 선방하는 사례로 꼽힌다. 2023년 독일의 합계출산율은 1.35, 영국은 1.44, 프랑스는 1.68이었다. 히지만 이민자 변수를 감안해야 유의미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즉, 저개발 국가의 젊은이들은 교육과 일자리의 기회가 있는 선진국으로 몰리고, 늙어 가는 선진국은 젊은 피 수혈을 통해 성장 동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민자 유입이 없었다면 ‘합계출산율 1명’의 저지선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

통계청의 지난달 26일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2024년 합계출산율은 0.75명이다. ‘찔끔’이긴 하지만 전년 대비 0.03명 증가했다. 부산(0.68명)과 서울(0.58명)은 특별·광역시 중 가장 낮았지만 역시 하락세를 멈추고 반전했다. 하지만 한국은 선진국에 비춰 보면 여전히 ‘국가 소멸’ 수준이다.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로 떨어지면 인구 반토막이 기정사실화되기 때문이다.

유럽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젊은 세대의 구직 행렬은 인구 구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도 유사 사례가 보인다. 2024년 출생 통계에서 경기도 화성시(1.01명)와 평택시(1.0명)는 일자리와 도시 성장의 상관관계를 실증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화성은 2년 연속 인구 100만 명을 넘겨 올해 특례시로 승격했다. 인구 유출이 심화되면서 지난해 인구 110만 명선이 무너진 울산(0.86명)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첨단 미래 산업과 전통 제조업의 대비이기도 하다.

일자리를 찾아 젊은층이 몰리는 도시는 성장 가도를 달리지만 노인만 남은 도시는 쇠락 일로를 걷는다. 인구 구조 변화로 도시의 미래를 읽는다면 화성·평택과 울산은 양극단에 서 있다.

■ 일자리, 청년 세대, 출생률 선순환

서울 수서에서 경기도 평택으로 이어지는 고속철도 SRT 라인은 약동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전자, 현대모비스 등 굴지의 대기업 공장과 연구 시설이 평택과 용인, 화성에 들어서면서 일대는 상전벽해를 거듭했다. 용인은 꾸준히 인구가 늘어 109만 명으로 울산을 곧 제칠 기세다. 특히 화성의 성장은 눈부시다. 인구 19만 명의 화성군이 2001년 3월 화성시로 승격된 지 23년 만에 100만 명을 돌파하며 폭풍 성장했다.

비결은 일자리다. 화성 내 22개 산업단지에 반도체·자동차·바이오 등 첨단 미래 분야 2만 7000여 개 기업이 입주해 끊임없이 젊은 인재를 빨아들인다. 동탄신도시 등에 정주 여건이 갖춰지고 수도권을 촘촘하게 연결하는 철도·도로 등 도시 기반 시설이 조성된 것도 한몫했다. 고임금 정규직 일자리를 찾는 전국의 취업 희망자들에 선망의 지역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 덕분에 주민 평균 연령은 39.3세로 낮아졌다.

2021년 기준 화성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91조 417억 원으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1위였다. 울산의 79조 7620억 원보다 높고 부산(106조 5100억 원)을 바싹 추격할 정도로 큰 경제권으로 부상했다. 반도체 벨트 조성 등 대기업의 투자 확대도 예정되어 있으니 취업자는 더 몰릴 전망이다. 일자리와 청년 세대, 출생률이 서로 원인과 결과가 되어 선순환되면서 도시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농촌 지역이었던 화성은 20년 만에 전국에서 가장 젊고 활기찬 대도시로 성장했다.

■ 청년이 살기 힘든 도시

1인당 GRDP 전국 1위, 중산층 노동자 도시…. ‘대한민국 산업수도’라는 자부심 깃든 울산의 수식어는 이제 옛말이 됐다.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지만 알짜배기가 빠져나가면서 울산은 갈수록 기력을 잃고 있다. 주요 대기업이 연구소와 엔지니어링 센터를 고급 인재 유치에 유리한 수도권으로 이전한 탓에 생산 기지로 전락한 것이다.

지난해 발간된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는 대기업 주력 부문이 떠난 울산에서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가 사라진 것이 도시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고 진단했다. 비정규직 하청 노동만 남은 지역에서 버틸 수 없는 청년 세대의 수도권 유출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청년이 떠나고 고령자만 남게 되니 도시의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울산은 좋은 일자리 덕분에 인재가 유입돼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좋은 일자리에 인재를 빼앗기는 신세가 되면서 쇠락하고 있다.

■ 일자리, 도시 흥망 좌우

대도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첨단 기술 분야 일자리가 필수다. 미국의 노동경제학자 엔리코 모레티는 일자리를 매개로 도시의 성장과 쇠퇴를 연구했다. 모레티가 주목한 건 ‘승수 효과’와 도시 불균등 발전이다. 소프트웨어, 생명공학, 에너지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일자리가 1개 생기면 전문 및 비숙련 서비스 일자리 5개가 파생되는 ‘승수 효과’ 덕분에 도시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첨단 산업이 특정 대도시에 집중되면서 도시 사이에 경제적 격차가 커지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보스턴, 시애틀은 첨단 산업 덕분에 인재가 몰리고 번성하지만,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 등 전통 제조업 중심 도시가 쇠퇴한 이유다.

화성·평택의 급성장이 설명되는 대목이다. 통계청의 ‘시군구 취업자수’ 통계를 보면 화성·평택에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일자리다. 화성의 2013년 상반기 취업자 수는 27만 3000명이었는데 2024년 상반기에 54만 7000명으로 곱절 증가했다. 평택도 21만 4000명에서 33만 7000명으로 큰 폭으로 성장했다. 일자리가 젊은 세대를 부르고 출생률도 높여 결국 도시의 활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확연하다. 일자리와 도시의 흥망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 부산, 지속 가능한 사회로 가려면

한국고용정보원 통계에 따르면 부산 청년 인구(15~29세) 비중은 2014년 6.69%에서 2023년 5.95%로 10년 내리 쪼그라들었다. 전국 17개 시도 중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청년이 살고 싶은 도시’ 구호가 참담한 대목이다. 부산이 광역시 최초로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유일하게 ‘소멸 위험’ 경고를 받은 상황과 동전의 양면이다.

부산의 미래 전략에 대한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글로벌 허브도시의 미래상은 첨단산업이 번성하고 청년 세대가 꿈을 펼치는 곳이다. ‘부산형 판교 테크노밸리’라는 청사진으로 추진되는 센텀2지구 도시첨단산업단지를 비롯해 부산이 전통 산업 대신 미래형 산업 유치에 적극 나서는 까닭이기도 하다.

부산은 화성·평택의 길을 지향하지만 발 딛고 있는 현실은 울산과 판박이다. 부산이 미래를 기약하려면 첨단 미래 기술 중심의 산업 구조 혁신을 이끌어 내야 하고 그 결과는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야 한다. 부산은 소멸과 지속 가능한 도시의 갈림길에 서 있다. 길잡이는 일자리다. -끝-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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