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 테더가 5700원까지… 한국선 널뛰는 스테이블코인 [커버스토리]
안정적 가상자산 스테이블코인 급등 사태
27일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거래
테더 1개당 가격 1480원 넘어
환율 1437원대보다 2.9% 비싸
10일 빗썸선 5755원까지 올라
트럼프 “중국에 100% 관세” 발언
시장조성자 없는 제도 허점 여파
해외 거래소와 유동성 단절 발생
가격 불안 현상 반복될 가능성
그래픽=류지혜 기자 birdy@·클립아트코리아
미중 무역전쟁 긴장감에 대다수 가상자산이 급락했지만,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는 하루 만에 7배까지 치솟았다. 환율에 고정돼야 할 스테이블코인이 ‘안정적(Stable·스테이블)이지 않다’는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이번 스테이블코인 급등 사태는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한 이례적인 현상이다. 줄곧 코인 쇄국정책을 견지하던 국회와 금융당국의 미적지근한 태도가 시장 왜곡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5000원대까지 뛴 ‘롤러코스터’ 테더
27일 오전 9시 기준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와 빗썸에서 테더 1개당 가격은 각각 1481원, 1480원에 거래되고 있다. ‘김치 프리미엄’은 2.91% 수준이다. 이는 우리나라 시장에서 테더가 더욱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테더는 1달러에 가치를 고정한 스테이블코인이다. 그러나 원달러 환율이 지난 2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1437.1원에 마감한 점을 고려하면 1480원대에서 거래 중인 테더 가격은 이미 안정적이라는 이름과 거리가 멀다.
이번 가격 급등의 불씨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지난 10일(현지 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수입품에 10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자 위험자산 투자 심리는 일제히 얼어붙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주요 코인은 하루 만에 7~8%가량 하락했다.
하지만 해외 가상자산거래소에서 테더는 일시적으로 0.5% 올랐을 뿐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했다. 왜곡된 급등 현상은 오직 원화 가격이었다. 원달러 환율을 훌쩍 넘어 1500원대까지 치솟는 등 김치 프리미엄이 발생했다. 업비트에서 1455원이던 테더 가격은 7시간 만에 1655원으로 13% 넘게 뛰며 이례적 움직임을 보였다. 빗썸에서는 가격이 5755원까지 치솟았으나, 1분 만에 1700원대로 급락하는 롤러코스터 장세가 펼쳐졌다.
전문가들은 무역 불안이 커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지자, 달러에 연동된 테더가 ‘안전자산’으로 인식돼 수요가 폭증한 결과로 보고 있다. 가상자산거래소 코빗의 김민승 리서치센터장은 “이번 급등은 해외 시장의 ‘마진콜’(강제 청산) 사태와 국내 거래소의 반응 지연이 맞물린 결과”라며 “해외 코인 시장이 급락하면서 투자자들이 청산을 피하려고 급히 증거금을 채워야 했고, 이때 국내 거래소에서 테더를 대량으로 사들이면서 가격이 급등했다”고 설명했다.
■‘시장조성자’ 부재 파고든 제도 허점
그러나 표면적인 이유 이면에는 더욱 복잡한 구조적 문제가 숨어 있다. 시장의 안정을 뒷받침해 줄 제도적 허점이 이번 사태를 키웠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매년 증권사를 선정해 ‘시장조성자’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시장조성자는 증권시장에서 매매 양방향의 적절한 호가를 제시해 안정적인 가격 형성을 지원하는 사업자다.
하지만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는 공식적인 시장조성자가 없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서 해당 조항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는 법인 또는 금융기관이 시장조성자로서 활동할 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 국내에서 가상자산 거래는 개인투자자에게만 허용된다. 바이낸스와 같은 세계적 가상자산거래소들은 유동성 공급자 제도를 통해 시장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김 센터장은 “국내 자산시장은 매도 주문이 잠시 끊기면 가격이 급등하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1억 3500만 원대에서 거래되던 비트코인 가격이 업비트에서는 오후 10시 45분부터 11시 사이 최저 8800만 원까지 급락하기도 했다. 코스피 대장주 삼성전자의 시가총액보다 5배 가까이 몸집이 큰 글로벌 대체 자산인 비트코인이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서 휘청인 셈이다.
결국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고질적인 김치 프리미엄이나 ‘역프리미엄’(국내 거래소에서 해외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는 현상)은 정식 시장조성자들이 활동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개인투자자 홀로 가격 왜곡을 정상화하는 데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이다.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 쟁글의 장경필 최고전략책임자는 “한국은 해외 거래소와 유동성이 단절돼 있기에 같은 자산이라도 해외와 국내 거래소 간 가격이 제때 맞춰지지 않는다”며 “해외에서 폭락이 일어나도 국내 거래소는 송금과 입금 제약 탓에 이를 빠르게 반영하지 못한다. 유동성 연동이 개선되지 않으면 가격 불안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 반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 이정훈 기자 leejngh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