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물의 도시 부산과 대양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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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한국해양대 명예교수

해방 이후 선진 한국 형성 발판 돼
수도권 중심 ‘일극체제’ 구조 속
해양 수도·글로벌 허브 기능해 와

해수부 이전 결정, 그 역할 재확인
대양을 무대로 세계와 네트워킹
자타 공인 열린 부산주의 꼭 필요

부산을 ‘물의 도시’라 불러도 되겠다. 대부분 내륙의 도시는 서울, 파리, 프라하, 부다페스트, 뮌헨, 디트로이트처럼 강을 끼고 발달했다. 물길을 좇아 살아온 인류의 역사를 반영하지만, 이들을 온전한 의미에서 물의 도시라 부르진 않는다. 물의 도시는 강과 더불어 바다에 접하면서 물을 매개로 삶을 영위하고 이동하는 도시를 일컫는데 런던, 뉴욕, 도쿄와 같은 수위의 세계도시가 이러한 속성에 기반하고 있다. 대개 농업과 어업에서 출발해 근대의 공업지역으로 변모하면서 서서히 연안 항구에서 바다 바깥으로 나아가는 발전의 과정을 거친다. 또한 싱가포르, 더블린, 바르셀로나, 마르세유 등의 차상위 세계도시들도 물과 함께 발달해 왔다. 시선을 돌려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물의 도시를 찾으려고 한다면 자연스럽게 부산이 떠오르게 된다.

섬을 비우고 바다를 금지하던 조선시대에도 강은 주요한 통항의 수단이었다. 수영강과 낙동강 유역에 사람이 모이고 수로를 통해 산물을 이동했는데 부산포의 개항과 더불어 진행된 식민적 근대화 과정에서 부산항이 중심에 놓이면서 부산은 근대도시로 발전한다. 좌우로 수영강과 낙동강이 있고 그 사이에 동천, 초량천, 보수천 등이 바다를 잇는 형국은 부산이 물의 도시임을 나타내는 원형이다. 이는 근대화 과정에서 매립과 복개로 그 성격이 약화하기도 하지만 연안 바다로 나아감으로써 오히려 확장된다. 서해와 남해, 동해라는 연안을 넘어서 대양로부터의 관점을 형성한 도시가 부산이다. 〈모든 삶은 흐른다〉를 쓴 로랑스 드빌레르가 지적하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들은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안에 있는 섬’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구 전체로 볼 때 섬과 같은 육지에 살면서 바다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저 뭍의 끝에 닿아있는 연안에 시선이 머물 뿐이다.

반쯤 섬이라는 뜻을 지닌 한반도를 둘러싼 서해, 남해, 동해는 엄밀히 말하면 연안이다. 대양은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남극해, 북극해를 말한다. 흔히 부산을 동아시아 지중해의 결절지라고 하는데 동해에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잇는 해항도시라는 의미이다. 19세기 말부터 청과 러시아와 일본이 부산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한 역사를 우리는 잘 안다. 그만큼 중요한 지정학적 장소가 부산이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경유하고 근대화 과정에서 부산은 단순히 네트워크의 결절지에 그치지 않는다. 스스로 대양과 네트워킹해 선진 한국을 형성하는 발판이 되었다. 그러니 부산은 한국이 품은 대양의 꿈을 상징한다. 이러한 대양의 꿈을 드빌레르는 ‘넓고 깊은 바다를 대양이라고 부르고, 우리는 때때로 그곳으로 떠나기를 꿈꾼다. 대양으로 가고자 할 때 우리는 그야말로 커다란 결심을 해야 하고, 새롭게 시작될 뭔가를 찾아 그곳으로 출발한다. 단순히 현재 살고 있는 땅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을 내려놓고 익숙한 모든 것을 떠나 저 멀리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출발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부산은 벌써 이러한 출발을 했고 그 꿈을 변함없이 지속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아직 대양을 바로 알지 못하고 연안이라는 국가 중심의 시야에 갇혀 있다. 여기에다 중심의 인력에 이끌려 수도권 일극체제가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부산은 끊임없이 일극체제를 지연하거나 극복하는 방법으로 소환된다. 해양 수도, 부울경 메가시티, 글로벌 허브 시티 등의 도시 목표가 그렇다. 모두 나름의 설득력을 지닌 대안으로 들끓었으나 안타깝게도 여전히 실현되지 못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일국 차원의 분권이라는 문제의식으로 보면 왜 부산만 특별한가라는 의문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대양적 전환을 통해 세계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주역이 되는 과정을 상기한다면 어떨까?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 그리고 남극해로 나아간 도시가 어디인가? 바로 부산이라는 사실을 알긴 어렵지 않다. 이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서는 논리를 담는다. 해양 네트워크 도시로서 대양을 무대로 세계와 네트워킹하는 도시는 부산이며 이러한 특이성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서 대양의 꿈을 상징해 왔다.

새 정부가 북극 항로 개발을 매개로 해양수산부를 부산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만시지탄이 있으나 크게 환영할 일이다. 앞서 말했듯이 부산은 이미 북극항로가 아니더라도 태평양 항로, 인도양 항로, 대서양 항로를 개척했다. 먼 남극해까지 원양어선을 띄우고 있다. 이러한 일을 서울이나 대전이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한편으로 부산은 가장 대표적인 물의 도시이다. 미시적으로 도시의 실핏줄과 같은 물길을 살리고 거시적으로 대양을 쉼 없이 연결하는 노력을 경주한다. 부산이 있어 한국은 명실상부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로 도약하고 있는 셈인데, 이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열린 부산주의가 종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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