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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용의 '금알못' 탈출기] 15조 VIP 고객을 잡아라
지난해 9월 울산시금고를 두고 경남은행과 국민은행이 격돌했다. 시금고 선정은 지자체의 예산을 관리하는 은행을 정하는 일이다. 접전 끝에 경남은행이 울산시금고를 유치했다. 그로부터 2개월 뒤, 경남은행은 울산 영업점 전체 간판에 ‘울산 경남은행’을 새겼다. 울산과 경남은행이 함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 사건은 금융권에서는 은행 간판을 바꿀만큼 은행이 가지는 지자체 금고 유치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회자된다.
부산 금융권의 최근 최대 화두는 부산시금고다. 부산시 예산 15조 원을 관리할 은행이 24일 최종 선정된다. 지역 은행인 부산은행이 2000년부터 24년간 시금고 주금고를 수성해왔다. 이후 4년에 한 번 벌어지는 입찰마다 한 차례 경쟁도 없었다. 하지만 올해 국책은행인 기업은행과 시중은행인 국민은행이 도전장을 냈다.
왜 은행들은 시금고에 사활을 걸까. 은행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15조 원 예산 중 은행 계좌에 머무는 돈은 8000억 원 남짓이다. 하지만 ‘예금을 하지 않는 시대’에 예금 확보에 비상이 걸린 은행들 입장에서 거액의 예산을 굴리는 고객인 지자체는 매우 매력적인 고객이다. 수도권 지자체 금고는 시중은행 간 과당 경쟁이 붙어 ‘레드오션’이 됐다. 새로운 시장을 찾아 시중은행, 국책은행은 지역으로 ‘남하’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은 앞다퉈 부산과 상생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후원금을 시금고 선정 전 내놓고 있다. 시금고 평가 항목에 지역 사회 공헌 항목이 엄연히 있는 만큼 은행 입장에서는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올해 초부터 부산신용보증재단에 출연금 액수로 은행들이 경쟁을 한 것, 최근 잇달아 지역 사회에 거액의 사업비와 함께 정책 지원을 하는 것도 시금고와 분리해 생각하기는 어렵다.
지역에 도움이 되는 일이니 백번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씁쓸함이 몰려온다. 치열하게 부산에 구애를 던지는 은행들이 24일 이후에도 계속될 수 있을지 하는 우려에서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처럼 2028년이나 돼서야 은행들이 또 사회공헌 ‘벼락치기’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다.
부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산시라는 15조 원 VIP 고객에게 높은 금리를 제공하고 지역에 많이 공헌하는 은행이 시금고에 선정됐으면 한다. 심의위원회 심의위원들이 금리, 향후 지역 사회 공헌 예산인 협력사업비 같은 숫자를 꼼꼼히 살폈으면 한다. 또한 15조 원을 맡기는 VIP고객의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4년간 은행이 꾸준히 VIP에게 좋은 대우를 해줄 수 있을지도 꼼꼼히 따졌으면 한다.
2024-09-1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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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하의 타임아웃] MZ 여성의 ‘야구 직관’ 이유
지난 4일 오후 롯데 자이언츠와 KT 위즈와의 시즌 14차전 경기 시작 한 시간 전. 부산 사직구장에 들어선 관중 중에서도 MZ 세대 여성 팬들이 제법 많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다채로운 롯데 유니폼을 입으며 롯데 사랑을 과시했다. 올 시즌 롯데 선수들이 착용 중인 유니폼부터 클래식 유니폼 ‘스머프’까지 기자가 이날 발견한 그들의 유니폼 종류만 5개가 넘었다.
5일 한국야구위원회(KBO) 통계를 보면 올 시즌 시작 이래 전국의 야구장을 찾은 관중 수는 지난해 810만 명을 훌쩍 넘어선 935만 6805명이다. 이 기세대로라면 ‘1000만 관중 시대’가 확실시된다. 롯데의 관중 동원 수 또한 지난해 89만 1745명에서 올해는 95만 명을 넘어섰다. 관중 수를 끌어올린 1등 공신은 MZ 세대 여성 팬들이 꼽힌다. 자연스럽게 그들이 야구장을 방문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직장 선배와 경기를 보러 온 이나경(21) 씨는 록 콘서트 같은 현장 분위기를 치켜세웠다. 특히 롯데 선수들이 등장할 때마다 응원가를 떼창할 때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게 현장 직관의 매력이라고 이 씨는 말했다.
이 씨 주변에는 롯데 유니폼을 입은 대학생 임지우(20) 씨와 친구 백진희(20) 씨가 경기 시작을 기다렸다. 두 사람 모두 올해 야구장을 처음 방문했다고 한다. 임 씨는 “숏 폼 플랫폼에 야구장 모습이 자주 떠 궁금하던 차에 친구 따라 사직구장에 와봤다”고 말했다. 백 씨는 “가족들 모두 롯데 팬이기 때문에 야구 규칙을 익히고 경기를 구경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전했다.
임 씨는 야구장을 찾는 또 다른 속사정을 털어놨다. “최근에는 극장 가격도 올랐고요, 아이돌 콘서트에도 가려면 10만~15만 원 정도는 줘야 해요. 야구장과 극장 가격이 비슷한데 같은 가격이라면 더 재미있는 곳을 찾는 거죠.”
임 씨의 말처럼 야구장의 매력을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 즉 ‘가심비’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그동안 언론은 야구장을 찾는 MZ 세대 여성의 증가 이유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특히 소셜미디어가 일상화된 젊은 여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KBO와 각 구단이 펼친 다양한 소셜미디어 전략이 주효했다는 보도가 많았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이 고물가 시대에 주머니 사정이 팍팍해진 MZ 세대의 현실도 반영하고 있음을 깨달으니,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야구장에서 이들과 다양한 대화를 나눴지만 모두가 롯데의 가을야구 진출을 열망하고 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롯데의 ‘찐 팬’을 자처하는 직장인 조지은(27)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5등 안에 들기를 바라지만 못 들어도 괜찮습니다. 그저 열심히 하는 모습만 보여주시면 만족해요.”
2024-09-0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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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의 그림책방] 5초와 3초
공을 다루는 데 능숙하지 못하다. 그래서 주변에 구기 종목 중 유일하게 가능한 것이 피구라고, 공 피하기만 잘한다고 말했다. 새로 나온 그림책 <휘슬이 두 번 울릴 때까지>(사계절)를 보며 피구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음을 알았다. 이명애 작가는 ‘너를 맞히지 않으면 내가 아웃되는’ 피구라는 게임의 이면을 보여준다.
피구 경기하는 날, 한 반이었던 아이들은 두 팀으로 나뉜다. ‘삐익’ 휘슬 소리와 함께 공격이 시작된다. 도망가다 제일 앞으로 밀려난 친구, 달리기가 느린 친구, 겁 많은 친구, 무리에서 떨어진 친구를 향해 공이 날아간다. 가슴에 퍽! 등에 퍽! 얼굴에 퍽! 공격하는 공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팔을 다친 친구도 동료를 구하던 친구도 공에 맞아 퇴장한다. 최·김·한·오·곽·안·조…. 작가는 공에 맞은 아이들에게 이름을 붙여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불러들인다.
운 좋게 살아남은 주인공은 얼떨결에 공을 받게 된다. ‘5초 안에 공격하지 않으면 내가 아웃이야.’ 친구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진 주인공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휘슬이 두 번 울려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는 공 던지기. 누군가 그려 놓은 선 안에서 이뤄지는 피구 경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피구 경기장의 주인공이 고민한 5초만큼 짧지만 의미 있는 시간을 그린 그림책이 또 있다.
정진호 작가 <3초 다이빙>(스콜라)의 주인공은 ‘나는 잘하는 게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 친구는 달리기를 해도 1등과는 거리가 멀고, 밥도 천천히 먹고, 공부도 그저 그렇다. 심지어 그가 응원하는 야구단까지 ‘또 졌네’ 단골 팀이란다. 태권도 학원 사범이 누구든 이길 수 있는 발차기를 가르쳐줬지만, 주인공은 그 비법을 쓰고 싶지 않다. 자신의 승리 뒤에 다른 이의 패배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좀 느린 아이’로 불리는 주인공이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며 하는 생각을 읽으며 알게 된다. 느리게 보이는 아이의 행동이 ‘더 깊이 생각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주인공이 다다른 곳은 다이빙대 위. 그곳에는 먼저 온 두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 하나 둘 셋! 딱 3초면 같이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배운다. 세 사람의 다이빙, 약간의 어긋남을 품은 ‘푸웅덩’ 소리가 지긋지긋한 무더위를 날리듯 경쾌하다.
2024-08-2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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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의 문화시선] 부산 ‘오페라 풍년’의 이면
봄가을에 비해 여름철 클래식 공연계는 비수기로 통한다. 더욱이 8월은 대형 공연장 개보수 등으로 대관 업무도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 공연장 수급도 좋지 않다. 그런데도 올여름 부산의 오페라 공연만큼은 풍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그렇다.
을숙도문화회관은 지난달 제10회 을숙도 오페라축제를 맞이해 4개의 작품을 지역 민간 오페라단 협업으로 무대에 올렸다. 전년도 10월에 했던 축제를 7월로 앞당겼다. ‘마술피리’(부경필하모닉오케스트라), ‘라 트라비아타’(부산예술오페라단), ‘팔리아치’(드림문화오페라단), ‘세비야의 이발사’(나눔오페라단)가 공연됐다.
해운대문화회관은 소규모 극장에 맞게 각색·구성한 4개의 오페라 작품을 제2회 피콜로 오페라 페스티벌이란 이름으로 개최했다. 역시 네 개의 민간 오페라단과 협업해 ‘라 트라비아타’(부산예술오페라단), 창작오페라 ‘물의 아이’(영아츠컴퍼니), ‘피가로의 결혼’(프로젝트오리지널), 영미오페라 ‘그 남자 그 여자 & 이상한 네일숍’(아트내상스)을 7, 8월에 걸쳐 선보였다.
부산오페라단연합회도 제2회 부산소극장오페라축제라는 이름으로, 7, 8월 2개 작품을 올린 데 이어 오는 10월까지 공연한다. ‘돈 파스콸레’(부산캄머오페라단)와 ‘코시 판 투테’(올웨이코리아오페라단) 공연이 끝났고, ‘피가로의 결혼’(온누리오페라단)과 ‘사랑의 묘약’(아지무스오페라단)이 남아 있다.
두 달여 동안 무려 10편의 오페라가 올라간 부산 무대를 생각하면 일단 놀랍다. 하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오페라 제작 재원을 들여다보면 그 실상은 더욱 적나라하다. 을숙도문화회관의 경우, 네 작품 중 두 단체는 각각 2500만 원, 나머지 두 단체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역맞춤형 중소규모 콘텐츠 유통’ 사업에 선정돼 7100만~7230만 원의 예산을 지원받았다. 해운대문화회관은 4개 팀에 총 5000만 원을 지원했다. 팀당 1500만 원씩 3개 단체에 나가고, 1개 단체는 500만 원을 지원했다. 그리고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금 3000만 원씩을 보태 각 팀이 3500만~4500만 원으로 한 편의 오페라를 만든 셈이다.
부산시나 대구시 등에서 제작하는 오페라 시즌 전막 작품 한 편에 3억~4억 원가량 들이는 데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물론 예산이 전부는 아니지만, 오페라 예술에서 재원 비중은 작품의 질에 비례하기에 클 수밖에 없다. 다양성과 대중성 측면에서 여러 형태의 오페라가 시도돼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작품 완성도 측면에서 이대로 좋은가 싶은 고민이 생기는 지점이다. 그래도 ‘종합예술의 꽃, 오페라’인데 말이다.
2024-08-2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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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의 집피지기] 노인과 바다, 그리고 아파트
도심에는 청년보다 노인의 비중이 훨씬 높고,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건 바다 뿐이라고 해서 부산에 붙은 별칭이 ‘노인과 바다’다. 요즘엔 노인과 바다 뒤에 ‘아파트’를 붙이기도 한다. 고개를 들면 다닥다닥 붙은 고층 아파트 단지만 보인다고 해서다.
지난달 29일 부산시는 ‘민선 8기 부산 고용지표 크게 개선! 일자리의 질도 함께 올라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부산의 15세 이상 고용률이 2002년 월드컵 이후 최고치를 달성했다는 거다. 그러나 여전히 전체 고용률 지표는 전국 17개 시도 중 최하위다. 이례적으로 느낌표까지 붙인 보도자료와는 달리, 지역에 남은 청년들이 느끼는 공허함과 허탈감은 전혀 해소되지 않는다.
YK스틸의 당진 이전은 일자리에 목마른 청년들에게 박탈감마저 느끼게 한다. 2011년 시가 LH의 택지개발계획 변경을 승인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일자리가 없어 청년들이 보금자리를 떠나는 판국에 그나마 남아있는 일자리마저 밀어낸 건 고작 아파트였다.
지난해 5월 폐점한 연산동 홈플러스 외벽에는 ‘굿 뉴스’라는 현수막이 나붙었다. 마트 건물이 1군 건설사가 짓는 고층 아파트로 바뀐다는 게 굿 뉴스라는 거다. 남천동 메가마트 자리에는 평당 5000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질 좋은 일자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마트가 사라지면 수백 명의 밥벌이도 함께 없어진다. 지난 5년간 문을 닫은 부산지역 대형마트는 6곳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그 자리엔 어김없이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이 추진된다. 재빠르게 손을 털려는 유통업체나 부동산 개발자들이야 이런 굿 뉴스에 구미가 당길지 모르겠으나, 대다수 시민들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청년들의 일자리는 밀려나고, 오션뷰의 초고층 아파트만 빽빽이 들어서는 도시에 장밋빛 미래는 없다. 성장하는 도시에는 아파트 대신 창업 센터나 연구 단지,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 공간이 들어선다. 물론 극단적인 수도권 중심체제에서 기업들이 지방을 외면하는 걸 오롯이 지자체 탓으로 돌리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아파트 건설이 가능한 용도지역이면 도장부터 찍고 보는 지금의 행정으로는 변화의 가능성조차 제시하기 어렵다. 이기대의 길목에서 사업 인허가 절차가 진행 중인 고층 아파트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공공재적 가치를 보호할 고민이나 노력 없이 행정기관이 뒷짐만 진다면 이기대는 물론 도시 전체를 망칠 수도 있다.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는 개발업자들에게 잘못된 선례를 남겨선 안된다. 초고층 아파트에 남겨진 노인들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을 부산의 미래는 상상하기조차 싫다.
2024-08-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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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우의 맛있는 여행] 제주도 유감
10년 전 제주도에 가족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리고 숙소로는 리조트를 골랐다. 제주도의 인기 음식인 갈치와 흑돼지도 여러 번 먹었다. 당시에는 자동차, 숙소, 식사 모두 부담하기 힘들 만큼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2년 전 취재 때문에 제주도에 다시 갔다. 이번에는 혼자였는데 모든 사정이 과거와 많이 달랐다. 숙소, 관광지 입장료, 카페 등도 비쌌지만 음식이 가장 문제였다. 갈치와 흑돼지를 먹고 싶었지만 1인분을 판매하는 식당을 찾을 수 없었다. 취재비는 한정됐는데 혼자서 한 끼에 5만~10만 원을 주고 갈치, 흑돼지를 2~3인분이나 먹을 수는 없었다.
결국 아침, 저녁 식사는 호텔에서 해결하고, 점심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등을 사 먹어야 했다. 첫날 숙소로 이동하던 중 대학교 근처 식당에서 학생들이 많이 찾는 싼 돈가스 가게를 발견한 건 운이 좋은 경우였다.
취재 때문에 전국 여러 도시를 두루 돌아다니는데, 비싼 식당도 적지 않지만 취재비로 감당할 수 있는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식당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제주도의 경험은 당혹스러웠다.
알고 보니 이런 상황은 기자만 겪은 일이 아니었다. 최근 제주도의 음식 가격은 물론 식당의 행태에 불만을 토로하는 여행객이 늘었다. 유튜브나 신문, 방송에 ‘제주도에서 바가지를 썼다’거나 ‘너무 비쌌다’, 혹은 ‘질이 낮은 음식을 받았다’는 영상과 기사가 오르기도 했다. 이미 경험해 본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컨슈머인사이트’라는 소비자 리서치 전문기관이 최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제주도에 갈 돈이면 일본에 갈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80%가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기관은 ‘실제 일본 여행비는 제주도의 2.2배이기 때문에 이런 인식은 오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핵심은 인식이 오해냐 아니냐가 아니다. 소비자들은 ‘제주도는 비싸다’라고 느낀다는 점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상황에 대처하는 제주도나 여행 관련 업계의 태도는 그다지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 ‘비싸다’는 불만에 대해 제주도 행정당국이 ‘잘 찾아보면 싼 음식점도 많다’고 밝힌 게 단적인 예다. 물론 잘 찾아보면 싼 음식점은 한두 군데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짧은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여행객에게 시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싼 음식점을 잘 찾아보려고’ 귀한 시간을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제주도나 여행 관련 업계의 이런 태도는 ‘그래도 온다’라는 믿음이 바탕에 있기 때문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제방 붕괴는 손가락만 한 구멍에서 시작한다는 걸 되새겨 보길 바랄 뿐이다.
2024-08-0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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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철의 정가 뒷담화] 개딸과 그들의 '민주'
지금은 거스를 수 없는 ‘당원 주권주의’ 시대다. 지역·세대 균형을 반영해 온 대의원제는 이제 과거 유산이 됐다. 이는 당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정치적 효용성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대부분의 당원이 아닌 권력이 집중되는 지도자 한 명의 효능감만을 위한 슬로건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다수의 폭력성에 소수는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상황에서 의견의 강렬함을 키우는 용도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 정치에서 살펴볼 수 있다.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는 이변 없는 말 그대로 ‘어대명’(어차피 당대표는 이재명)이다. 이재명 후보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으며 그를 엄호하는 최고위원 후보들도 선전하고 있다.
이는 이재명 후보의 유일한 대항마인 김두관 후보의 고향 부산·울산·경남(PK) 경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PK 야권 최대 관심은 최고위원 후보 선거로 자연스레 옮겨졌다. 하지만 여기서도 변수는 없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4위에 머물렀던 ‘찐명’ 김민석 후보는 부울경 순회 경선에서 친명 지지자들의 표를 얻어 1위로 올라섰다.
당대표 ‘절대 1위’ 이재명 후보의 선택을 받은 이른바 ‘명픽’ 김 후보의 약진은 예상된 부분이다. 하지만 적어도 부울경에서 만큼은 그 기세가 꺾일 것으로 전망됐다. 그는 부산·울산·경남 재도약의 첫걸음인 KDB산업은행 이전 반대의 최전선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PK 민주당 권리당원은 김 후보로 몰려갔다. 그들이 사랑하는 이 후보가 대다수 부울경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사업을 외면하더라도 대선 가도에 문제가 없다는 일종의 ‘전략적 판단’인지는 압도적 몰표를 준 그들만 알 것이다.
어대명의 끝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사법 리스크를 차치하면 지금의 탄탄한 강성 지지층을 기반으로 대선까지 직행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팬덤 정치의 최후를 맞이할 것이라며 기저에서 숨죽이고 있는 여론은 그저 소수에 그친다는 판단 아래에서다.
다만 확실한 건 대다수의 부울경 주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마지막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이는 대선의 기본 공식이다. 역대 진보 정당 대선 후보가 그랬듯 PK에서 선전하지 못하면 대선 승리는 불가능하다.
이미 화살은 날아갔다. 그 끝을 지켜볼 뿐이다. 김민석 수석 최고위원을 만들어 이재명을 호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부울경 권리당원의 판단에는 시대적 통찰력이 포함돼 있었기를 응원할 뿐이다.
2024-08-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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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랑의 골 때리는 기자] 잘 다치는 기술이 필요해
여성 풋살 열풍을 몰고 온 SBS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최근 한 장면이 화제가 됐다. 스포츠트레이너 출신 유튜버 심으뜸이 가수 유빈과 공을 두고 몸싸움을 하던 중, 무리하게 뒷쪽에서 유빈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장면이다. 심으뜸은 이에 대해 사과를 하지 않고 돌아섰고, 유빈은 “무리하게 다리 휘두르지 말자, 다칠까 봐 그런다”며 경고했다. 그제야 심으뜸은 “공만 봤다, 죄송하다”라고 사과했다. 이를 두고 심으뜸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영상에 달리기도 했다.
심으뜸의 속내는 알 수 없으나, 고의로 이 같은 행동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사실 이런 상황은 여성 풋살 경기에서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 특히 초급자의 비율이 많을수록 그렇다. 공을 접해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여성들은 공을 뺏는 데 몰입한다. 그래서 무리한 태클이 경기에 지장을 주고 상대편을 다치게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지 않다.
물론 잘못된 행동을 고치고 상대방에게 사과만 한다면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부상을 입히거나 당했을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특히 가해자일 경우는 미안함에 주눅이 든다. 피해자가 되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상대방의 거친 플레이에 감정이 상하고 행여 다툼이 벌어질까봐 두렵다. 보통 처음 풋살을 접해보는 여성들이 가해자가 되고 실력 있는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초급자랑은 공 못 차겠다’,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몸싸움이 두렵다’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여성 초보자들은 이러한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커 결국 잘하는 사람들만 모여 공을 차게 되는 비극적 결말로 이어진다. '이 재밌는 공놀이를 남자들끼리만 했다니'를 외치며 풋살의 재미를 알아가던 여성들이 결국은 그전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셈이다.
오래 공을 차기 위해선 ‘잘 다치고 잘 싸우는 법’을 알아야 한다. 공을 뺏을 땐 다리 사이로 발을 넣는 게 아니라 몸으로 먼저 상대방을 막으면서 공을 지켜야 한다. 발로 무리하게 공을 뺏다간 상대방도 나도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순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실수를 하면 바로 사과해 풀면 된다. 누구나 이러한 노하우를 알기까지 친절한 동료들의 배려가 필요하다. 나 역시 처음 공을 차는 다른 여성들 때문에 다친 적도 많지만, 항상 내가 처음 풋살을 시작했을 때 여성 동료들로부터 받았던 배려를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결국 이런 경험과 교훈을 나눌 수 있는 것은 같은 취미를 가진 여성들뿐이다. 심으뜸 영상에 달린 날 선 댓글과는 다르게, 유빈은 다칠 수 있으니 그런 행동은 자제하자고 심으뜸에게 친절히 말을 건넨다. 여성 동료들이 경기장을 떠나지 않으려면 친절한 가르침이 필요하다.
2024-07-2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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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용의 '금알못' 탈출기] 요새 누가 저축해요?
지난달 옛 대구은행인 iM뱅크가 큰 주목을 받았다. 지역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이슈도 있었지만 연 20% 금리의 적금 상품때문이었다. 앱은 접속자가 몰렸다. 고금리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20%는 어떤 투자로도 쉽게 얻기 힘든 수익률이다.
예상대로 여기에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이 상품에 넣을 수 있는 돈은 하루 최대 5만 원이다. 기한은 60일이다. 만기를 채워도 300만 원이고 받게 될 세금을 빼면 이자는 4만 원 정도다.
아무리 20% 이자라도 갸웃하게 되는 지점이다. 사실 고객도 다 안다. 고금리에 혹해 상품을 가입하려면 우대 금리 항목들이 빼곡히 우리를 기다린다. 자사 카드도 넉넉히 써야하고 자동이체도 걸어야하고 조건이 많다. 하지만 iM뱅크의 이 상품은 불티나게 팔렸다.
물가가 치솟고 고금리로 월급으로 대출 이자 내기도 빠듯한 요즘이다. 연이자 20% 상품의 인기에는 불황의 팍팍함이 녹아 있다. 고금리 상품에 대한 갈증이다. 연 이자 3~4%대 이자만 바라보며 돈을 묵혀두는 건 ‘옛날 투자’가 됐다.
급등 주식이나 급등하는 가상자산에 투자하면 하루 수익이 10%인 상황에서 1년 진득히 3~4% 이자를 기다리는 건 무모한 일로 보이기 쉽다. 여러 투자처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젊은층에게는 더욱 그렇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공개한 '청년 미래의 삶을 위한 자산 실태 및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19세~39세 청년 가구주 중 소득대비부채비율(DTI)이 300%이상인 '위험' 지표에 해당하는 경우는 21.7%였다. 청년 4명 중 1명 꼴로 연봉 3배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무엇이 투자의 정도일까. 급등하는 주식, 코인 같은 이야기의 이면도 반드시 봐야한다. 급등을 하면 다행이지만 급락주를 만나 자산을 다 잃는 경우도 곱씹어봐야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유튜브에 ‘1억’을 검색하면 수십 개의 영상이 1억 원 모으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가장 조회수가 많은 영상에서는 월 264만 원씩 3년, 혹은 153만원씩 5년, 그것이 버겁다면 월 106만 원씩 7년, 어떠한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그냥 저축만 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댓글에는 악플도 달린다. ‘그렇게 무모한게 투자법이냐’고.
묵묵히 저축하는 투자에도 이면은 있다. 인내심, 참을성이 아니다. 성실함이다. 한 달에 일정 부분 저축을 하기 위해서는 성실한 생활이 전제돼야한다. 하고 싶은 것 다하고는 쉽지 않은 투자법이다.
투자에 왕도는 없다지만, 팍팍한 세상에서 자신의 삶을 절제하고 지키며 하는 투자. 투자의 이면까지 살핀다면 한 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결국 티끌 모아 태산이다.
2024-07-18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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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하의 타임아웃] 미국 야구가 전한 울림
지난해부터 1년간 미국에서 연수 생활을 하던 중 메이저리그 경기를 두 차례 관람하는 기회가 있었다. 경기 내용을 제쳐두더라도 자연스럽게 한국과 미국의 야구 문화와 여건 등을 비교·대조하며 구경할 수 있는 행운도 얻은 셈이다. 첫 번째 경기는 지난해 6월 18일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카우프만 스타디움에서 열린 캔자스시티 로열즈와 LA 에인절스와의 대결이었다. 올해 5월 14일에는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체이스필드에서 펼쳐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를 두 번째로 관람했다.
홈팀에 대한 뜨거운 응원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비슷했다. 그들 또한 공수 교대 타임에 ‘키스타임’과 ‘댄스 대결’과 같은 이벤트를 벌이며 야구장을 찾은 팬들을 즐겁게 했다. 전체적으로 흥겨운 분위기 속에 경기가 진행됐다. 다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구도 부산’ 야구 팬들의 열광적이고 특색 있는 응원보다는 다소 밋밋한 게 사실이었다.
반면 부러운 점도 분명히 존재했다. 사직구장 재건축 논란이 떠올라 미국의 야구장은 어떤지 눈여겨 보았다. 1973년에 개장한 카우프만 스타디움에는 필드 뒤 쪽에 있는 거대한 분수 ‘워터 스펙타큘러’가 인상적이있다. ‘분수의 도시’라는 별명을 지닌 캔자스시티의 특성을 담아낸 것이라고 한다. 경기장 주변에는 360도 산책로가 있어 팬들이 경기 중에도 이동하며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이날 ‘야구 천재’ 오타니 쇼헤이의 투런 홈런은 덤으로 얻은 볼거리였다.
개폐식 지붕을 가진 돔구장, 체이스필드는 더운 여름철에도 실내에서 쾌적한 경기 관람이 가능하다. 실제 기자가 경기를 관람했던 5월 중순만 하더라도 피닉스의 낮 최고 기온이 30도 이상 치솟았다. 하지만 냉방 장치가 가동 중인 체이스필드 안에 들어서자 더위를 한 순간에 잊어버렸다. 체이스필드는 또한 수영장이 있는 외야석으로도 유명하다.
인프라 측면 외에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야구장에서 군인들에 대한 예우가 늘 빠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매 경기마다 미국을 지킨 영웅, 즉 군인 한 명을 관중들에게 소개하는 이벤트가 열린다. 그러면 모든 팬들이 일어나 그를 향해 박수 갈채를 보낸다. 미국인들 속에 배어 있는 군인 예우 정신을 야구장에서 직접 보니 신선했다.
이 두 차례의 미국 야구장 방문은 단순히 스포츠 관람을 넘어 많은 생각과 깨달음을 안겨줬다. 우선 세계 최고의 야구 팬을 가진 부산은 현재 사직구장을 뛰어넘는 야구장을 가질 충분한 자격이 있다. 메이저리그의 경기장처럼 부산의 특색을 살린 것으로 말이다. 무엇보다도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에서 군인, 소방관, 경찰관 등 우리 곁의 영웅을 기리는 이벤트가 더 많이 생겨나기를 기대한다.
2024-07-1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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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의 그림책방] 소리로 만나는 여름
투둑, 투두둑 톡톡, 쏴아아, 쿠르르릉.
장맛비 소리가 귀를 두드린다.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인 듯하다. 아이보리얀 신경아 작가의 <여름비>(논장)는 더위를 식혀주는 책이다. 한여름 발아래 땅이 이글거릴 때 들리는 비 소식은 반갑다. 한 방울 두 방울 비가 듣기 시작하면 물 위 소금쟁이의 움직임이 바빠진다. ‘툭툭’ 잎사귀를 치던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작가는 비에도 여러 색깔이 있음을 보여준다. 세차게 쏟아지는 검푸른 비, 촉촉이 세상을 적시는 초록 비, 보얗게 주변을 휘감는 안개비. ‘투둑투둑’ 비가 그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청개구리부터 꼬마 오리까지 비가 온 뒤 맑은 세상을 즐기러 나온다. 무지개가 그려진 비 웅덩이에서 뛰어노는 아이의 모습(그림)에서 경쾌한 음악이 느껴진다.
박주현의 <쭉>(도서출판풀빛)은 수박으로 수많은 소리의 향연을 펼친다. 이제까지 수박이 내는 소리는 ‘쩍’하고 갈라서 ‘쩝쩝’ 맛나게 먹고 ‘퉤’ 씨를 뱉는 정도만 있다고 생각했다. 그림책을 보면서 수박이 가진 소리의 잠재력을 너무 몰랐다는 것을 깨닫는다. 쭉, 쫙, 짝, 척, 찍, 쩍, 착, 쩝, 슝, 툭, 쏙, 싹. 여름의 소리가 얼마나 힘찬지 눈과 귀로 느낄 수 있다. ‘툭’ 땅에 떨어진 수박씨가 ‘쏙’ 흙 속 깊이 스며든 비를 만나고, 계절을 지나 ‘싹’으로 재탄생한다. 다양한 소리만큼 수박이 가진 생명력도 함께 전달된다.
세상은 수많은 소리로 채워져 있다. “아침이 오면 소리들이 기지개를 켜.” 미란 작가는 <모두 다 음악>(사계절출판사)에서 일상이 품고 있는 멜로디를 들려준다.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선 아이의 동선을 따라 소리의 흐름이 펼쳐진다. ‘쓱쓱’ 골목길 비질 소리. 일하러 가는 사람들의 차 소리. ‘휘잉’ 하늘을 가르는 새 소리. ‘까르르’ 어린이 웃음소리. 거대한 도시와 자연 풍경 속에 실로폰·호른·피아노·기타·트럼펫 등 다양한 소리를 연상시키는 악기 그림이 숨어 있다. 바람을 따라 ‘사르락사르락’ 숲길을 달리며 아이는 속삭인다. “모두 다 음악이야.” 우리는 매일 다른 소리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있다. 올해 여름의 소리가 바쁜 이들에게는 여유로, 힘든 이들에게는 위로로 다가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2024-07-0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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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의 문화시선] 문학관-공연장 '윈윈'해야
부산 금정구 ‘만남의광장’에 들어설 부산문학관 건립 소식은 부산 문학인들에겐 숙원이었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부지가 결정된 만큼 건립에 속도를 내면서도 빈틈없어야 한다는 게 문학인들의 지적이다. 계획대로라면 2025년 실시설계 후 2027년 완공하고, 2028년 연초 개관이 목표이다. 현재 부산연구원에서 대형 투자사업 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이다.
한데, 문학관 건립과 관련해 최근 금정문화회관 관계자들이 뿔이 났다. 문학관을 짓는다는데 문화회관 관계자가 왜 화를 내는 것일까. 이유인즉슨, 문학관 건립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금정문화회관 옥외 주차장 부지(39면 규모)를 사용했으면 한다는 부산시의 공문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진 의견 협의 단계이고, 사용(연계) 가능 여부를 묻는 내용이다. 하지만 부지 소유권이 시에 있고, 운영권만 금정문화회관에 있다 보니 불안불안하다.
금정문화회관은 “수용 불가”로 시에 회신했다. 불가 사유는 금정문화회관은 영락공원 조성에 따른 보상 차원의 지원 사업으로 건립된 만큼 그 취지가 유지되어야 하고, 현재 187면이 확보된 주차면은 일평균 출입 차량 261대에도 턱없이 모자라며, 공연이나 행사에 따라 최대 719대까지 출입하는 등으로 지금도 부족한데 옥외 주차장이 수용되면 주차난 가중과 관람객 불편은 불 보듯 뻔하다는 거다. 게다가 그 일대는 대체 용지도 구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현재의 옥외 주차장이 금빛누리홀(대공연장) 뒤편과 연결돼 해당 공간은 무대 세트 등 공연 물품을 반입하는 대형 화물차량이 드나들거나 주차해야 하고, 단체 관람을 하는 대형 버스 주차 시설로 사용돼 왔다는 사실이다. 단순 주차장이 아니라 공연장 운영에 필수 시설이란 의미다.
금정문화회관 관계자도 ‘기관 이기주의’는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문학관이 옆 부지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만 해도 정말 기뻤다”면서 “시의 계획처럼 문학관 조성과 함께 인근 금정문화회관, 금샘도서관, 오륜대한국순교자박물관 등과 연계해 새로운 문화의 거리로 조성하면 새로운 금정 문화 벨트를 형성해 ‘윈윈’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컸다”고 말했다.
다만, 공문서가 왔다 갔다 하기 전에 현장 상황을 좀 더 숙지하고, 관계자 의견을 경청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부산의 모 예술행정가는 “일차원적으로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계획을 짜다 보면 저럴 수 있다”며 “문학관 주차장을 지하로 넣더라도 두 시설이 모두 살아날 수 있는 적극적인 행정이 아쉽다”고 말했다. 새로 짓는 시설만큼이나 기존 공간도 존중하면서 또 하나의 문화 클러스터를 이룰 때 진정한 상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24-06-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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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의 집피지기] 위기의 지역건설업
부산의 한 중소 건설사 대표는 요즘 사무실로 출근하기가 겁난다고 했다. 일감은 없고 미수금만 쌓여가는 상황을 직원들도 뻔히 아는데, 그들을 볼 낯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처럼 동고동락했던 이들을 차마 내칠 수 없어 희망의 끈만 붙잡고 있는 실정이다.
올 들어 전국에서는 14곳의 종합·전문건설업체가 부도 처리됐다. 그중 서울 업체는 1곳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지역 건설사들이다.
부산의 경우 지난달 남흥건설과 익수종합건설이 부도 처리됐다. 두 업체는 모두 시공능력평가액 700억 원 이상으로 부산에서는 20위권에 들던 곳이었다. 이를 바라보는 다른 업체들은 다음 차례가 누구일지 마음만 졸이고 있다.
최근에는 호남의 중견 건설업체 남양건설이 기업회생절차 종결 8년 만에 다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지난해 전국 시공능력평가 99위를 기록한 광주·전남 대표 건설사인 한국건설도 법정관리 절차에 돌입했다. 지역 건설사들은 “1997년 외환위기나 2007년 금융위기만큼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위기는 취약한 고리에서부터 시작한다. 원자잿값 폭등, 고금리 장기화,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여파, 분양시장 침체 등 각종 악재가 업계를 휩쓸고 있지만 대기업과 지역 중견·중소업체가 체감하는 피해는 사뭇 다르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업체들이 같은 비율로 추가 비용을 감당해도 지역 업체는 당장 다음 달의 현금 유동성을 걱정해야 한다.
그나마 서울이나 수도권은 부동산 시장이 지방처럼 침체돼 있지 않아 미분양 걱정은 덜 해도 된다. 지역 업체들은 지역 내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발주로 숨통을 틔워야 하는데, 최근에는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단가가 맞지 않아 입찰마저 시들하다. 서로 끈끈하게 연계된 업체들도 많아 도미노처럼 줄도산 우려도 상존하는 게 지역 건설업계다.
업계는 정부와 지자체의 특단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간담회 몇 번 한다고 자금 경색이 해소될 리 만무하다. 이대로라면 부산 역대 최대 규모의 건설사업인 가덕신공항 건립공사에 지역 업체들은 들러리도 못 설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물론 하도급 대금을 제때 지불하지 않거나 경영권을 둘러싸고 소송전만 해대는 일부 지역업체들을 마냥 옹호하자는 건 아니다. 다만, 지역 건설업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건설현장에 투입되는 인력, 장비, 자재 대부분이 지역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벼랑 끝에 몰린 이들에게 지금 당장 손을 내밀어 줄 정책적 수단이 절실하다.
2024-06-2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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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우의 맛있는 여행] 박 시장, 불편 못 느꼈나?
매일 0시 35분 부산 도시철도 동래역 5번 출구 인근 고깃집 ‘세연정’ 앞의 공터는 웅성거린다. 세상이 온통 깜깜한 시간인데도 적지 않은 사람이 보인다. 다들 얼굴에 기쁨과 기대감이 흘러넘친다.
이들이 어둠을 무릅쓰고 모인 까닭은 버스다. 이곳에서는 인천공항으로 직행하는 동부하나리무진 버스가 출발한다. 정확히 말하면 부산역에서 출발한 버스가 이곳에서 손님을 더 태워 인천공항으로 간다.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떠나기 위해 세연정 앞에 모인 것이다.
세연정 앞에서 손님을 다 태우고 0시 35분에 출발한 리무진버스가 인천공항 1터미널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전 5시 40분이다.
해외여행에 나선 부산 사람들이 인천공항에 가면서 새벽 버스를 타는 데에는 씁쓸한 이유가 있다. 인천공항으로 직접 올라가는 항공기가 없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항공기가 이른 오전 시간에 김해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향하지만 아무나 탈 수 있는 건 아니다. 대한항공 국제선 항공권을 가진 승객만 탈 수 있고 다른 항공사 표를 가진 여행객은 이용할 수 없다.
일부 항공사가 김해공항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해 김포공항으로 가는 항공편을 운항하지만, 김포공항~인천공항 이동 시간까지 감안하면 인천공항에서 오전 10시 이전에 출발하는 국제선을 타기는 어렵다.
오후에 출발하는 국제선 항공기라면 부산에서 이른 오전에 기차나 김포공항행 항공기를 타고 가면 되지만 오전 10시 이전에 이륙한다면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부산 사람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해외여행을 위해 새벽에 피곤한 몸을 끌고 버스를 타야 하는 것이다. 탑승료가 5만~6만 원대인 새벽 버스를 타기 싫다면 전날 서울이나 인천공항 인근에 미리 가서 10만~20만 원을 더 내고 호텔에 숙박해야 한다.
앞으로 가덕신공항이 생기면 이런 불편은 줄어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가덕신공항이 예정대로 추진되더라도 앞으로 5년 6개월 뒤인 2029년 말 개장한다는 점이다. 부산이 2030월드엑스포를 개최한다고 봤을 때 개장 일자가 이러했지만, 월드엑스포 개최가 무산된 현재 상황에서는 개장이 상당 기간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오랫동안 부산 사람은 인천공항을 통해 해외여행을 가려면 새벽 버스를 타거나 전날 서울에 가서 호텔에 숙박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궁금한 게 있다. 월드엑스포 부산 유치전을 벌이기 위해 수차례 인천공항을 통해 해외 출장을 다녀온 박형준 부산시장은 전혀 불편을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수백만 부산 사람이 겪는 불편을 서둘러 해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일까.
2024-06-1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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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철의 정가 뒷담화] 녹취 정치
‘정치·업자·녹취’. 연관성 없는 세 단어가 한자리에 모이면 아마도 누아르 영화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정치인이 업자들로부터 뇌물을 받거나 경쟁 상대를 좌초시키기 위해 몰래 녹음한 사적 대화를 공개하는 그런 ‘클리셰’ 말이다. 그런데 오는 19일부터 후보 등록으로 본격적으로 레이스가 시작되는 부산시의회 의장 선거에서도 이 단어들이 핵심 키워드로 등장했다.
우선 부산시의회의 수장을 뽑는 선거에 업자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황을 종합하면 이렇다. 선배 정치인이자 업자 A 씨는 2년 전 부산시의회 의장 선거에 출마하는 B, C 후보를 만나 교통정리에 나섰다. 선배·동료 정치인이라는 이유에서 편하게 주고 받은 대화들을 누군가가 녹음해 이후 정치적으로 이용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2년이란 시간이 흘러 A 씨가 됐든 B 후보가 됐든 이들 음성이 담긴 녹은 파일이 부산 정가에서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나 B 후보가 본인 스스로 이러한 사실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다닌다는 점을 감안하면 작금의 정치 현실과 맞물려 안타까움은 더욱 커지는 부분이다.
정치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상호 간의 신의가 있기 때문이다. ‘약속 뒤집기’를 용인하자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정치는 생물이기에 언제든 상황이 복잡다단하게 변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기에 서로의 복잡한 셈법 속에서 끊임없이 대화로 답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치에 몸담아온 시간이 수십년에 달하는 이 후보의 문제 해결 방식에서 정치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대한민국 정치 현실의 단편이다. 앞서 지난 대선 때는 당시 국민의힘 경선을 앞두고 이준석 대표가, 지난달에는 배현진 의원이 통화 녹음을 공개했다. 당시에는 국회의원뿐 아니라 정치권, 나아가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녹음 포비아를 호소하고 있다”는 반응이 나오기까지 했다.
여기다 두 사람과 B 후보의 공통점은 또 하나 있다. 모두 외부가 아닌 같은당 인사를 대상으로 이같은 선택을 내렸다.
누구보다 정치로, 대화로 풀어야 할 정치인이 사법부처럼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면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가 아닐까. 통렬하게 반성하기를 바란다. 특히 외부인이 시의회 경선을 휘젓는 것은 시민 눈높이에도 적절하지 않다.
협치가 사라진 대한민국 정치가 다시 정상화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배지의 무게를 아는 정치인들이 늘어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2024-06-0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