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아의 그림책방] 산불
산이 불탔다. 산 주변에 살던 이들의 삶이 불탔고, 그걸 지켜보는 우리 마음도 불탔다.
김지연의 <호랑이 바람>(다림)은 2019년 4월 강원도 고성에서 일어난 산불과 그 진화 과정을 담았다. 숲에 떨어진 작은 불씨 하나가 바람을 만나 큰불이 됐다. ‘성난 불이 산등성이를 타고’ 거친 불길을 내뿜으며 땅 위도 태우고 땅속도 태웠다. 거대한 산불이 세상을 태우던 그날, 작가는 한달음에 고성으로 달려가고 싶었다고 했다. 각지에서 달려온 소방대와 진화 요원들이 힘겹게 불길을 잡았다. ‘새까맣게 재투성이가 된’ 산 그림에서 느껴지는 막막함. 2025년 봄 우리는 다시 그 감정을 느끼고 있다.
지난 3월 산청, 하동, 울주, 의성, 안동 등 영남 지역에서 역대급 산불이 발생해 큰 피해가 났다. 괴물 같은 산불은 많은 것을 앗아갔다. 진화에 나선 대원들과 미처 대피하지 못한 주민들이 안타깝게 생명을 잃었다. 강풍을 타고 마을을 덮친 불길에 평생 가꾼 삶의 터전을 잃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
김병하 작가 <우리 마을이 좋아>(한울림어린이)에서 산불 이전의 삶을 본다. 평범한 시골의 작은 집, 마당에서 나물을 다듬는 할머니, 장독대에서 노니는 고양이, 할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와준 충직한 소, 마을 입구 정자나무 아래 모여 담소를 나누던 이웃들. 산불만 없었다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풍경이다. 그림책 속 평온한 일상에 대피소에 머무는 이재민의 모습이 겹치며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신문 사진에서 산불이 지나간 뒤의 흔적을 봤다. 산 곳곳이 검게 변해 있다. 흡사 거대한 갈퀴가 할퀸 듯하다. 산불이 산과 산에 깃들어 살던 생명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입혔는지 알 수 있다.
다시 <호랑이 바람>으로 돌아가면 산불 이후 피해를 입은 산에 묘목을 심는 사람이 등장한다(그림). 산이 다시 초록으로 피어날 수 있도록 마음을 더하는 장면이다. 영남권 산불은 불이 컸던 만큼 피해 복구에 오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작은 불씨라도 조심하는 마음, 산불 피해자 지원에 정성을 보태는 마음이 있다면 그 시간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대형 산불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