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에브리씽 폴링’… 내 자산 팔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코스피 한 달 만에 3900선 붕괴
가상화폐·금 가격도 동반 추락
AI 버블 논쟁에 Fed 변수 가중
시장선 ‘건전한 조정’ 분석 우세
코스피가 전장보다 151.59포인트(3.79%) 하락한 3853.26에 장을 마친 21일 서울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에브리씽 폴링(위험자산과 안전자산 모두 하락·Everything Falling)’.
지난 한 주 글로벌 금융시장을 관통한 표현이다.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경계가 무너진 채 모든 자산이 동반 추락하는 이례적 장면이 연출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인공지능(AI) 투자 버블 논쟁이 다시 불붙으며 투자심리가 순식간에 얼어붙은 탓이다. 충격의 파장은 주식, 가상화폐, 금(金) 등 시장 전반을 일제히 강타하고 있다. 시장 곳곳에서는 “거품이 터지는 것”이라는 위기론과 “과열을 식히는 건전한 조정”이라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극심한 변동성에 놓은 시장
특히 국내 증시가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21일 코스피는 4% 가까이 폭락하며 패닉 장세를 연출했다. 외국인은 이날 하루에만 3조 1000억 원을 순매도했는데, 이는 역대 최대 규모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 지수는 151.59포인트(3.79%) 내린 3853.26으로 장을 마감했다. 지난 3일 코스피 지수가 4221.87포인트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한 달도 되지 않아 3900선이 붕괴된 것이다.
이달 들어 코스피의 변동성은 심상치 않다. 하루 100포인트 이상 등락한 것이 이달 들어 15거래일 중 7거래일에 달할 정도다. 특히 이달 14일에는 3.81% 급락했다가 다음 날 1.94% 반등하는가 하면, 17일 다시 3.32% 급락하는 등 '롤러코스터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시장 역시 불안하다. 기술주 중심의 미국 나스닥 지수도 10월 29일 2만 3958.45에서 22일 2만 2273.08로 1685.45포인트(7.03%) 하락했다. S&P500 지수도 같은 기간 4.17% 내렸다.
높은 변동성을 보이는 코인 시장은 한 마디로 '초토화' 상태다. 가상화폐 대장주 비트코인은 올해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한국시간 22일 오후 3시 50분 현재 비트코인 가격은 8만 4584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달 6일 사상 최고치(12만 6251달러)와 비교하면 33%나 급락한 것이다. 이더리움과 다른 코인들은 낙폭이 이보다 더 크다.
안전자산인 금 가격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60% 이상 상승하며 ‘에브리씽 랠리’에 동참했던 국제 금 가격은 지난달 온스당 4361.58달러 고점을 찍은 뒤 4000달러 초반까지 밀렸다.
■AI버블 우려에 투자심리 급랭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극대화되고 있는 중심에는 AI버블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이 자리한다. 지난해와 올해 글로벌 증시 상승의 중심에는 엔비디아로 대표되는 AI 기업이 있었지만, 최근 데이터센터 확대를 위한 차입 투자 증가가 논란을 부채질했다. 주가 수준이 이미 과도하게 높다는 비판도 거세다.
12월 금리 인하가 예상됐던 미 연준의 매파적 기조(통화 긴축 선호) 강화도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최근 리사 쿡 미 연준 이사는 “일부 위험자산에 거품이 있다”고 언급하며 금리 인하 반대를 공식화했다.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로 분류됐던 오스턴 굴스비 시카고 연은 총재가 ‘기저 인플레’가 우려된다고 언급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
투자심리 급랭은 가상자산 시장에 더 큰 파급력을 미쳤다. 블록체인 데이터분석업체 난센의 선임 애널리스트 제이크 케니스는 “이번 매도세는 장기 보유자의 차익 실현, 기관 자금 유출, 거시경제 불확실성, 레버리지 롱포지션 청산이 한데 겹친 결과”라고 설명했다.
증시와 가상화폐로 대표되는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인 금 가격 마저 약세로 돌아서며 시장에서는 “시장 불안이 극대화되며 모든 자산에서 가격이 하락하는 ‘에브리씽 폴링’이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작은 뉴스 하나만으로도 시장이 크게 반응하는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리사 쿡 미 연준 이사의 ‘거품론’ 강연에 지난 20일 486.18포인트나 폭락했던 나스닥이 지난 21일 존 윌리엄스 미 연은 총재의 ‘금리 인하 여지’ 인터뷰에 195.03포인트 반등한 것도 이를 보여주는 예다.
■붕괴인가 조정인가, 시장은 ‘조정에 무게’
다만 시장에서는 AI버블이 맞다고 해도 붕괴로 이어질 우려는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오히려 올해 들어 급등했던 오버슈팅에 대한 정상 조정이라는 반론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 기업 실적이 뒷받침되고 있고, 실제 AI 인프라 투자가 여전히 증사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AI 산업의 대표 주자인 엔비디아는 지난 19일(현지시간)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실적을 내놓으며 ‘거품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 이날 컨퍼런스콜에서 “AI 버블 얘기가 많지만, 우리 관점에서 보는 세상은 완전히 다르다”며 “AI 가속기 수요는 매우 강력하며 실제 비즈니스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빅테크들이 AI 투자를 위해 대규모 ‘빚투’에 나서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황 CEO는 엔비디아의 AI 관련 투자는 완전히 현금흐름으로 충당하고 있다고 우려에도 선을 그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최근 BBC와의 인터뷰에서 “버블이 있다고해도 AI붐은 계속된다”고 말했다. 또 헤지펀드 거물인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어스시에이츠 회장 역시 “분명히 시장에 거품은 있다”면서도 “거품이 존재할 경우 기대수익률을 낮추긴 하지만 팔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다음 달 미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미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며 유동성을 공급하면 현재의 공포심리가 완화되며 반등의 발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AI투자 사이클과 주요 기업의 실적 전망도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AI는 기술 유행이 아닌 산업 구조의 전환이고 아직 각국 정부의 투자가 본격화되지 않았다”며 “최근 조정은 과열을 식히는 건강한 조정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내다봤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