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남해안 겨울 진객…어민도, 상인도, 소비자도 울상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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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성 어종 이상 고온 후유증
진해만 대구 어획량 1/4 토막
거제 대구축제 내년으로 연기

통영 물메기 5년여 만에 반등
공급량 증가에도 소매가 상승
메기탕 한 그릇 2만 2000원
소비자 “너무 비싸” 볼멘소리

국내 최대 대구 집산지인 거제시 외포항 대구 경매 모습. 부산일보DB 국내 최대 대구 집산지인 거제시 외포항 대구 경매 모습. 부산일보DB

올겨울 남해안 최고 별미로 손꼽히는 대구와 물메기 맛 보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구 온난화 여파로 찬 바다에 서식하는 한류성 제철 생선들이 갈수록 자취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어획난이 예상되자 거제시는 올해 대구 축제를 내년으로 연기했다. 그나마 잡히는 것들도 몸값이 치솟으면서 잡는 어민이나 파는 상인, 사는 소비자도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23일 거제시에 따르면 시는 ‘제18회 대구수산물축제’를 내년 1월 10~11일 장목면 외포항 일대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이 축제는 지역 대표 어종인 대구와 다양한 수산물을 맛볼 수 있는 이벤트로 그동안 대구 성어기인 12월 중 열렸다. 1월 개최는 축제 창설 이후 처음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상 고온 등 환경 변화로 대구가 아직 고향인 거제 앞바다로 돌아오지 않는 탓에 자칫 대구 없는 대구 축제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겨울 진객’으로 불리는 대구는 찬 바다를 좋아하는 ‘회귀성 어종’이다. 낮은 수온을 찾아 이동해 러시아 캄차카반도 등 북태평양 근해에서 살다 산란기가 되면 태어난 해역으로 돌아와 알을 낳는다. 주 산란지가 거제도와 부산 가덕도 사이 진해만이다. 어민들은 어군이 형성되는 11월 말부터 금어기가 시작되는 이듬해 1월 16일 전까지 대구를 잡는다.

지난해 12월 열린 제17회 대구수산물축제 현장 모습. 거제시 제공 지난해 12월 열린 제17회 대구수산물축제 현장 모습. 거제시 제공

진해만과 맞닿은 거제시 장목면 외포항은 전국 최대 규모 대구 집산지다. 그런데 최근 5년 사이 위판량이 급감했다. 거제수협 자료를 보면 2021년 11월∼2022년 3월 16만 7922마리였던 대구 위판량은 이듬해 12만 3842마리로 줄었다. 이어 2023년 11월∼작년 3월 사이 3만 4001마리로 급감하더니, 지난 겨울엔 1만 368마리로 불과 3년 사이 10분의 1 수준이 돼 버렸다.

어민들은 어획난 주범으로 개체수 감소와 함께 고수온을 지목한다. 대구가 회귀하려면 수온이 영상 10도 이하로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여름내 기승을 부린 고수온 후유증에 거제 앞바다를 비롯한 진해만 일대 수온은 아직 영상 13도 선을 유지하고 있다. 따뜻한 수온벽이 대구의 귀향을 막고 있는 셈이다. 산란 환경마저 최악이다. 지난여름 태풍 영향이 거의 없어 해저에 점토가 쌓이면서 대구가 선호하는 자갈층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어민들은 아직 조업 개시 시점도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거제어민연합회 공경일 회장은 “보통 땐 이달 말 시작했지만 올해는 다음 달 중순은 돼야 할 듯하다”면서 “성어기에도 어획량이 많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통영 추도가 주산인 물메기. 부산일보DB 통영 추도가 주산인 물메기. 부산일보DB

통영이 주산지인 물메기도 사정은 마찬가지. 남해안 수온이 적정 수준을 유지했던 6~7년 전만 해도 경남권 최대 물메기 산지인 통영 추도에선 소형 통발어선 한 척이 물메기 100마리 정도는 거뜬히 잡았다. 그러나 최근엔 섬 마을 주민이 잡은 걸 통틀어도 하루 100마리가 될까 말까다.

생물 생산량이 줄면서 이를 원료로 하는 건메기 위판은 아예 개점휴업 상태다. 건메기는 12마리를 묶어 위판한다. 추도산 진품은 1축에 20만 원을 호가한다. 2009년 경남에서 처음 건메기를 취급한 통영수협은 2018년 이후 매물이 없어 아예 위판을 중단했다.

그나마 올해는 초반 어획량이 나쁘지 않다. 수협 위판장에도 소량이지만 꾸준히 물량이 올라오고 있다. 통영수협 관계자는 “작년 겨울만 해도 잡히는 게 없어 하루, 이틀 걸러 마리 단위로 경매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꾸준히 경매가 이뤄질 정도는 된다”고 귀띔했다.

경남권 최대 물메기 산지인 통영시 추도 덕장. 부산일보 DB 경남권 최대 물메기 산지인 통영시 추도 덕장. 부산일보 DB

그럼에도 몸값은 여전히 상종가다. 식당에서 물메기탕 한 그릇을 맛보려면 최소 2만 원 넘게 내야 한다. 한 끼 식사 비용치곤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게다가 우상향인 가격과 달리 내용물은 갈수록 더 부실해진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며칠 전 2만 2000원짜리 물메기탕을 먹었다는 한 소비자는 “예전엔 제법 두툼한 살점이 여러개 였는데, 이번엔 얇은 게 딱 세 조각 있었다.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식당도 속이 타들어 간다. 원재룟값이 오르니 요리 가격도 덩달아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식당 업주는 “4~5만 원짜리 물메기 한 마리 잡으면 잘해야 네 그릇 정도 나온다. 그정도 못받으면 밑지는 장사”라며 “손님만큼 우리도 갑갑하다”고 하소연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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