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요구만 수용한 공기 계산… ‘적기 개항’ 약속은 뒷전 [6년 늦어진 가덕신공항 개항]
‘공기 106개월’ 어떻게 나왔나
재입찰 방침 발표 7개월 끌고도
연약지반 안정화 13개월 추가 등
현대건설보다 2개월 적은 공기
기자회견·유감 표명 없이 발표
부산시, 국토부 발표안에 반발
“여러 공정에서 공기 단축 방안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동남권 국민들의 30년 숙원인 가덕신공항 공사 기간 연장 발표에 지역의 비판이 거세다. 지난 22일 오전 비행기에서 바라본 가덕신공항이 들어설 부산 강서구 가덕도 전경. 김경현 기자 view@
정부가 가덕신공항 개항 목표를 2029년에서 2035년으로 6년이나 미룬 배경은 건설업계 수용성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동남권 국민들의 30년 숙원이나 여야 정치권이 특별법까지 만들면서 추진한 조기 개항, 무엇보다 정부의 ‘적기 개항’ 약속은 뒷전이었다는 비판이 거세다. 실제로 국토교통부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국책사업의 약속을 무겁게 여기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덕신공항 2029년 12월 개항은 2023년 3월 정부 발표 이후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는 목표다. 당시 국토교통부는 가덕신공항을 육해상 매립식으로 지어서 2024년 말 착공해 2029년 2월 개항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앞서 완전 해상 매립식으로 2035년 6월 이후에야 완공이 가능하다던 국토부의 사전타당성 용역 결과에 반발하던 지역사회는 공법 변경과 조기 개항 로드맵에 일제히 환영했다.
여야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합의한 가덕신공항 건설 특별법 또한 조기 개항을 위한 법이었다. 특별법은 가덕신공항의 신속한 건설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국토의 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하기 위해 제정된 법으로, 2021년 3월 공포돼 같은 해 9월 시행됐다. 2029년 12월 조기 개항을 실현하기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공항 건설을 전담할 별도의 조직인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을 설립하며, 이후 개정안을 통해 보상 업무 등 행정절차를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게 했다.
이후 정부는 1년 8개월간 153억 원을 투입한 용역을 통해 2023년 12월 기본계획을 고시하면서 84개월(7년)이라는 공사 기간과 2029년 12월 개항 목표를 다시 명시했다. 정부 예산이 투입된 공식 용역을 통해 안전을 최우선으로 수립하고, 전문가 자문회의 등을 통해 검증을 거친 공기였다.
당시 정부는 2030 부산월드엑스포(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도전적으로 설정한 일정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엑스포 유치와 관계없이 2029년 개항은 그대로 진행된다고 공식화했다. 국토부 관계자들 역시 건설업계 설명회나 언론 등을 통해 “가덕신공항은 특별법에 따라 추진되는 사업이며, 공항 건설은 엑스포 유치 결과에 관계없이 그대로 추진한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나 현대건설 컨소시엄의 부적격 기본설계안 제출 이후 추진 과정에서 정부는 이와 같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건설업계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후속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 달라는 부산시와 지역사회 요구에도 재입찰 방침을 발표하기까지 7개월을 끌었고, 결국 현대건설이 요구한 108개월(9년)보다 고작 2개월 줄어든 공기를 내놓았다.
연장된 공기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연약지반 안정화 기간만 해도 정부 스스로 “연약 지반은 현장 조건과 시공 방법에 따라 안정화에 소요되는 기간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해놓고는 “입찰 단계에서는 안정화 기간을 충분히 부여했다”고 밝혔다. 기본계획에서는 활주로 구간 성토 높이가 50m 이상인 만큼 매립 과정에서 압밀 과정이 진행된다고 봤지만, 여기에 13개월을 추가로 부여한 것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부산시는 전문가 기술 자문을 통해서 연약 지반 안정화뿐만 아니라 여러 공정에서 현대건설 안보다 공기를 단축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들을 공식적으로 전달했지만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국토부가 공식 용역과 달리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전문가 자문이라는 형식을 통해 사실상 건설업계 요구를 전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동남권 국민들은 미어터지는 김해공항 이용과 중장거리 노선을 위해 인천공항을 오가는 추가 비용을 6년이나 더 감수하게 됐다. 가덕신공항 로드맵에 따라 부산·울산·경남이 따로 또 같이 추진하고 있던 공항 배후 교통망 구축과 공항복합도시 개발, 광역교통망 구축과 국가균형발전 과제도 덩달아 늦어지게 됐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가덕신공항 건설은 남부권의 혁신 발전을 위한 중대하고 시급한 국가적 과제”라며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에 관문공항이 하나뿐이라는 현실은 국가균형발전과 글로벌 경쟁력 측면에서 심각한 제약”이라고 말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