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빈껍데기' 부산해사법원… 해상 분쟁 전문화 가능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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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연내 처리 합의, 부산·인천 관할 배분
'쏠림' 강해, 제도·정책 더 정교하게 설계를

지난 7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가 법원조직법 개정안과 각급 법원의 설치 및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해사법원 관련 법안을 심사했다. 연합뉴스 지난 7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가 법원조직법 개정안과 각급 법원의 설치 및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해사법원 관련 법안을 심사했다. 연합뉴스

10여 년 넘게 염원해 온 부산해사법원 설치가 연내 처리 가능성을 높이며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20일 여야가 부산·인천 두 곳에 본원을 두고 관할을 남북으로 나누는 큰 틀의 합의를 이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 반응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문제는 관할 배분이다. 국회 논의대로라면 부산은 영호남과 제주 등 남부권을, 인천은 수도권과 충청을 포괄하게 된다. 국내 해운·물류 기업 대부분이 수도권에 몰려 있고 국제 해사 분쟁 역시 서울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사건은 인천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는 부산해사법원 설치의 근본 취지와 배치된다. 국제해사법원을 지향해 온 부산에 ‘빈껍데기’ 기관만 남을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부산이 해사법원 설립에 사활을 건 이유는 분명하다. 각종 해사 분쟁이 해외 법원으로 넘어가면서 막대한 국부가 유출되고 국제 해사 분쟁 해결 과정에서 한국이 늘 주변부에 머물렀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해양수산부와 관련 공공기관의 이전을 기반으로 해사법원을 부산에 두어 글로벌 해사 중심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구상도 존재했다. 그러나 관할 구분이 사실상 지리적 분할로 귀결되면서 부산이 기대한 국제 분쟁 전문화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법사위에서 법원행정처가 “부산은 국내 사건 중심으로 특화될 것”이라고 밝힌 점은 지역의 우려를 더 키운다. 이런 구조라면 국제 분쟁 해결 역량 확보라는 본래 목표는 달성되기 어렵다.

지금 중요한 것은 부산해사법원의 실질을 어떻게 채워 넣느냐다. 사건 기반과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이름만 해사법원이지 제 역할은커녕 지역의 법조·해양 산업 생태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관할 구조가 불리하다면, 그만큼 제도적·정책적 장치를 더 정교하게 마련해야 한다. 우선 항소심을 부산에 단독 설치하는 방안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후속 기업 이전도 빼놓을 수 없다. HMM과 같은 핵심 해운기업 이전은 상징적 의미를 넘어 실질적 사건 수요를 부산으로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중앙해양안전심판원 등 핵심 기관의 이전 속도도 높여야 부산이 진정한 해양수도로서의 위상을 갖출 수 있다.

국제 분쟁이 핵심인 해사법원의 성격을 고려하면, 제도적 보완 없이는 부산이 반쪽짜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결국 사건 수, 기관 이전, 항소심 집중 등을 통해 부산 해사법원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미 가덕신공항, 공공기관 이전 등 국가 현안에서 ‘명분만 있고 실속 없는 결과’를 경험한 만큼 이번만큼은 달라야 한다. 양보나 타협이 아니라 부산 몫을 제대로 확보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부산해사법원은 지역 숙원을 넘어 국가 해양정책 향방을 가르는 시험대다. 간판만 걸린 기관으로 남는다면 그 피해는 지역 산업과 국가 경쟁력 저하로 돌아온다. 정부와 국회는 수도권 쏠림을 방지할 실질적 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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