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해양강국 경쟁력은 배가 아닌 '사람'
류동근 국립한국해양대 총장
해양 선진국의 공통점은 인재 양성
혜택이 인력 개발로 돌아가는 구조
인재육성특별기금 법제화 등 시급
대한민국은 세계 6위권 해운국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조선기술 분야에서는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부산항은 세계적인 대표 환적 허브로 자리매김했고, 디지털 해운, 친환경선박, 해양플랜트, 해양에너지, 스마트 항만, 해양 금융, 해양바이오 등 신해양산업 또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화려한 성과 이면에는 갈수록 심화되는 해양수산 인력 기반의 구조적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해기사 부족과 선원의 고령화는 이미 임계점에 도달했고, 수산·양식·가공 산업 현장에서는 청년 인력의 유입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관련 산업은 빠르게 미래로 이동하고 있는데, 이를 떠받칠 인력 기반은 오히려 약화되고 있는 모순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해양정책은 선박 건조, 항만 확충, 물류 인프라와 같은 ‘하드웨어’ 중심으로 추진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해양산업의 중요한 경쟁력은 더 이상 선박의 크기나 항만 자동화 설비가 아니라, 이를 설계하고 운용하며 새로운 기술로 혁신할 수 있는 사람의 역량에 달려 있다. 자율 운항 선박, 대체 연료, 디지털 해양수산, 북극항로 개척은 고급 인재 없이는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분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재 정책은 여전히 정부 부처별 단년도 사업에 머물러 있고, 대학은 불확실한 재정지원 공모사업에 매년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해운 선진국들은 인재를 산업정책의 중심에 두는 선택을 이미 오래전에 끝냈다. 노르웨이는 선박 톤세제와 연계한 ‘해양인재역량기금’을 통해 해기사 양성, 해양대학 지원, 친환경·디지털 해운 인력 육성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안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조세 혜택은 곧바로 인재와 연구개발 투자로 환류되는 구조가 제도화되어 있다. 영국 역시 톤세 적용을 받는 선사에 최소 훈련 의무를 부과한다. 세제 혜택의 대가로 해기사와 선원 양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제도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해운·조선·항만 산업의 지원은 반드시 인재 양성과 연구개발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을 제도화했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한국에는 선박 톤세제, 선원·어선원 지원 사업, 수산발전기금, 해양항만 공공기관 사회공헌 예산 등 다양한 재원이 존재하지만, 이 재원들이 해양수산 인재와 연구개발을 전담하는 상설 국가 기금 체계로 통합·연계되지 못한 채 분절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이제 필요한 해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해양수산인재육성특별기금’의 제도화가 그 핵심이다. 선박 톤세 적용 기업의 일정 비율 출연, 항만공사와 수산 관련 공공기관 수익의 일부 배분, 국가와 지자체의 상시 출연, 민간기업 기부와 국제협력 재원까지 결합해 오직 해양·수산 인재와 연구개발만을 전담하는 국가 차원의 상설 기금을 구축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장학사업이 아니라, 해기사·선원·어선원 양성, 해양AI·첨단해운항만·스마트 양식·해양바이오·친환경선박 전문인력 교육, 재직자 재교육, 산학연 공동연구, 국제 인재 교류까지 포괄하는 종합 인재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
국내에는 11개의 수해양특성화 고등학교가 있고, 해양수산 발전을 위한 국립대학교 총장 협의회 8개 회원 대학의 해양수산관련 학과들이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우수한 인재들이 해양수산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첨단 미래 해양수산 산업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안정적인 재정 지원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해양 산업은 더 이상 해운과 수산을 분리해서 정책을 설계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데이터 기반 해운, 첨단 스마트 선박, 스마트 수산물 생산, 해양바이오 신약, 해양환경 관리, 해양에너지 산업이 하나의 가치사슬로 연결되는 ‘해양수산 융합 산업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 이 전환을 이끌 인재는 기존의 해기사나 전통 어업 인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융복합 해양수산 인재를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국가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
배는 자본으로 건조할 수 있고, 항만은 예산으로 확장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과 일관된 국가 제도가 있어야 길러진다. 지금 인재 투자를 미루면, 10년 뒤 대한민국 해양수산 산업은 회복이 어려운 인력 공백이라는 치명적인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해양을 지키는 힘은 선박이 아니라 사람이고, 수산을 살리는 주체도 어선이 아니라 사람이다. 이제 대한민국 해양정책의 중심축은 ‘시설’에서 ‘인재’로, ‘단기 사업’에서 ‘상설 기금’으로 과감히 이동해야 한다. 해양수산인재육성특별기금의 제도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산업 생존을 좌우하는 필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