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바람개비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어릴 적 종이를 접어 바람개비를 만들어 논 적이 있다. 바람이 부는 언덕에서 바람을 맞으며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보며 신기해 했다.

바람이 멈추면 바람개비를 들고 냅다 달렸다. 바람개비를 보느라 넘어져 무릎을 깬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손에 든 바람개비는 살결에 와 닿는 바람만큼이나 시원하고 상큼했다.

어른이 돼 바람개비를 본 것은 골프장에서였다. 산 위에 우뚝 선 바람개비는 웅장했다. 전기를 만들기 위해 세워진 바람개비였지만 어린 기억을 소환하기는 충분했다.

전기를 생산하는 바람개비는 재생에너지 중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지구는 대류 현상 때문에 필연적으로 바람이 생긴다. 그렇다보니 다른 연료의 소비 없이도 발전이 가능하고, 다른 발전 방식과 달리 쓰레기나 폐기물 발생이 적은 풍력발전이 인기다. 설치 후 온실가스도 배출하지 않아 지구 환경에 악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일까. 풍력 발전은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경쟁력 있는 재생에너지 발전 방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단점도 있다. 바람만 불어준다면 밤낮 가리지 않고 발전이 가능한 장점이 어떤 때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런 지역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력 수요가 있는 곳까지의 접근성 문제도 있다. 접근성이 좋으면 소음 등에 따른 민원도 함께 발생한다. 연중 적절한 바람과 용이한 접근성, 민원도 없는 그런 곳은 이미 웅장한 바람개비가 세워져 있다. 새로운 바람개비를 세울 만한 곳이 줄어들면서 세계 각국은 먼 바다로 눈을 돌린다.

바다에 바람개비를 세우려면 배가 필요하다. 해상풍력설치선(Wind Turbine Installation Vessels·WTIV)이 그것이다. 국내에서 운용 중인 해상풍력설치선은 현재 단 1척뿐이다. 그래서 해상풍력 시장이 확대될 경우 외국산 의존도가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부가 풍력 설비 경쟁입찰에서 처음으로 공급망과 안보 요소를 반영한 ‘안보지표’를 평가 항목에 포함하기로 했다. 국내 공급망 기여 수준 등 안보 요소가 입찰 평가의 주된 요소가 되는 것이다. 해킹 등에 취약한 해외 기자재 사용이나 외국계 자본의 국내 해상풍력 공급망 잠식 우려 등을 선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두고 대선 후보자들도 입장이 엇갈린다. 분명한 건 종국에는 재생에너지가 답이라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에서 모처럼 바람개비처럼 시원함이 느껴진다.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