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는 사회, SNS와 관음의 경계 [3인3색 性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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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현 성 심리학자

요즘 사람들은 타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데 익숙해진 나머지 관음에 대한 의식은 둔해지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타인의 SNS를 보며 그들의 식단, 감정, 쇼핑목록, 심지어 그 또는 그녀의 방안 구석구석을 본다. 또 방송에서는 내가 모르는 사람의 깊은 사생활을 다룬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다. 이 부분에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는 왜 타인을 보고 싶어하며 그 욕망은 어디까지 정상이고 어디서부터 병리적이라 말할 수 있을까?’

흔히 말하는 관음증은 타인의 사적인 순간을 몰래 관찰하면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 성도착 범주에 속한다. 이는 관찰 대상이 된 상대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동의하지 않은 상태로 이뤄진다. 하지만 요즘 사용하는 관음이란 의미는 훨씬 넓어졌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관음증으로 진단하는 기준도 넓어진 것은 아니다.) 이전에 관음이 성도착의 범주로 분류되었다면 지금은 성적 맥락을 넘어 타인의 일상과 감정 등을 지켜보는 시선으로 확장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관찰 대상의 허락도 없고, 그에 따라 지불되는 비용도 없음에도 타인의 일상에 대해서는 평가도 하며 그들의 불안이나 실패에 상대적 안도감을 갖기도 한다.

성심리학의 관점에서 관음증은 단순히 바라보는 욕망 그 이상이라 하겠다. 성적 흥분의 시작이 행위가 아닌 관찰에 방점이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심리적 회피 전략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현실의 성적 관계 속에서 느끼게 되는 불안, 거절로 인한 마음의 상처 또는 자기가 노출되는 위험은 최소로 하는 ‘거리두기’ 전략으로 즐거움, 즉 쾌감은 얻고 싶은 마음이라 하겠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리비도(성적 에너지)의 고착 현상으로 해석하면서 상대와의 접촉보다는 상상과 지배의 환상 속에 머무르는 것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비하는 리얼 컨텐츠는 관음증과 어떻게 다를까? 유튜브나 방송 프로그램은 그들이 자발적으로 올렸거나 출연을 결정한 것이니 괜찮다고 느낄 수 있다. 관음증과 구별되는 ‘동의 여부’나 ‘자발성’이 사람들의 마음을 한결 편하게 만들었다. 타인의 SNS나 개인방송과 같은 것들은 자신의 일상을 공개하고 그것으로 얻어지는 수익을 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SNS를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라고 할 수 없게 되었다. 감시와 관음이 혼재된 문화적 장치 또는 틀로 인식되어야 한다. 타인의 연애, 육아, 감정 심지어 몸매와 같은 신체 요소까지 평가의 대상이 되고, 이러한 비교를 하며 사람들은 심리적 우월감을 갖거나 ‘내가 좀 나은데?’라며 위로받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요즘의 관음증은 몇몇 사람들의 특이한 성적 취향으로 말하긴 부족하다. ‘보는’ 것에 중독되어 있고 타인에게 ‘보여짐’을 신경쓰는 요즘, 관음이란 시선의 욕망과 그 윤리적인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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