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장기’ 콩팥, 자각 증상 있을 땐 만성화 다반사
당뇨병성 콩팥병
혈액 속 노폐물 거르는 정수기
사구체여과율 분당 90~120mL
당뇨병은 ‘조용한 신장 파괴자’
건강즙·생약 섭취는 콩팥에 부담
정년퇴직을 앞둔 직장인 김모(58) 씨는 10여 년 전 건강검진에서 당뇨병 진단을 받은 뒤 약 복용과 규칙적인 운동, 식이요법을 병행했다. 수년 간 별다른 증상이 없자 김 씨는 약물 복용과 식단 관리를 소홀히 하게 됐다. 1년여 전부터 피로감과 함께 얼굴과 양쪽 다리가 조금씩 붓고 무거워지기 시작한 김 씨는 최근 다시 병원을 찾았다. 심한 신기능 저하와 함께 단백뇨가 발견되면서 혈액투석 치료를 시작해야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당뇨병성 신장(콩팥)병 진단을 받은 것이다.
■이상 있어도 별다른 증상 없어
콩팥은 갈비뼈 아래 등쪽 좌우에 하나씩 위치하는 강낭콩 모양의 장기로, 어른 주먹만한 크기다. 혈액 속의 노폐물을 걸러내기 때문에 몸속에서 정수기 역할을 하는데, 여과 기능을 하는 것이 사구체다. 사구체는 콩팥의 기본 단위인 네프론 내 위치한 미세한 그물망 형태의 모세혈관 덩어리로, 혈액이 이곳을 통과하면서 노폐물이 걸러진다.
1분 동안 걸러주는 혈액의 양을 사구체여과율이라 하는데, 이 수치는 콩팥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하는지 보여주는 척도다. 사구체여과율은 나이와 성별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분당 90~120mL면 정상으로 간주된다. 60~89mL면 경미한 저하, 30~59mL는 중등도 기능 저하로 만성 콩팥질환의 진행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15~29mL면 콩팥 기능의 심각한 저하, 15mL 미만이면 투석이나 이식이 필요한 상태로 본다.
콩팥은 또 나트륨 등 몸속에 존재하는 전해질 균형을 맞춰주고 혈압을 조절한다. 적혈구 생성을 자극해 빈혈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는 호르몬도 생성한다.
문제는 콩팥에 이상이 생겨도 대개 아무런 증상이 없다는 데 있다. 좋은문화병원 신장내과 허수정 과장은 “자각 증상이 나타났을 땐 병이 꽤 많이 진행됐거나 만성화된 경우가 많다”며 “이로 인해 콩팥은 ‘침묵의 장기’로 불린다”고 설명했다.
■‘조용한 신장 파괴자’ 당뇨병
대한신장학회에 따르면 국내 만성 콩팥병으로 투석을 받은 환자의 절반 정도가 당뇨병 환자다. 콩팥을 망가뜨리는 당뇨병이 ‘조용한 신장 파괴자’로 불리는 이유다.
고혈당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사구체 내 압력을 상승시켜 콩팥의 여과 기능이 서서히 저하돼 단백질이 소변으로 배출되는 단백뇨가 발생한다. 초기에는 자각 증상이 거의 없어 방심하기 쉽지만 손상이 진행될수록 회복이 어려워 결국 투석이나 신장이식을 피할 수 없게 된다. 2018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30세 이상 당뇨병 유병률은 12.4%다. 65세 이상은 25.1%에 달한다. 65세 이상 4명 중 1명은 콩팥에 이상이 올 수 있다는 뜻이다.
당뇨병이 무서운 것은 콩팥 손상뿐만 아니라 뇌혈관 심혈관 발가락괴사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 구석구석에 합병증을 일으킨다는 데 있다. 실제로 만성 콩팥병 원인 1위, 망막 합병으로 인한 실명 원인 1위, 교통사고를 제외한 족부절단 1위가 당뇨성 합병증이다.
■약물·생활습관 관리 병행
당뇨병 환자는 특히 만성 콩팥병을 예방하기 위해 혈당 조절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주기적으로 소변 검사(단백뇨)와 혈액 검사(eGFR)를 병행할 것을 전문의들은 권고한다. 허 과장은 “이상 소견이 발견될 경우 사구체 보호 효과가 입증된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억제제(ACEi)와 안지오텐신수용체Ⅱ 길항제(ARB) 계열의 약물이나 최근 효과가 입증된 억제제(SGLT2)를 처방받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약물치료와 더불어 생활습관 관리도 중요하다. 콩팥 기능이 저하된 환자라면 수분 섭취를 하루 최대 2L로 늘리고 단백질 섭취는 과하지 않게 해야 한다. 짠 음식은 줄이고 규칙적인 운동과 체중 관리도 필요하다. 콩팥 기능이 나빠질수록 체내 노폐물 제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식단 조절은 혈압과 혈당 조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건강즙이나 생약 진액류의 무분별한 섭취는 콩팥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과도한 칼륨 섭취는 심장 박동 이상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어 모든 건강보조식품은 전문의와 상담 후 섭취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허 과장은 “당뇨병이 있다고 해서 모두 투석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방심하면 어느 순간 콩팥 기능이 급격히 떨어져 회복 불가능 상태로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당뇨병 진단 시점부터 콩팥을 동반자처럼 여기고 관리하는 인식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