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동남권 관문공항에 알맞은 시기는 언제인가
현대건설 공기 연장안에 가덕신공항 일정 흔들
무책임한 국책사업 지연에도 수도권 중심 논리
정부·대선 후보에 안전한 공항 제때 개항 촉구
4월 초, 진로 강의를 간 적이 있는 부산 한 여고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학생들이 수행평가를 위해 지역지와 중앙지의 차이점과 역할에 대해 궁금한 점을 메일로 묻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꼼꼼한 질문들에 답하면서 지방공항 논쟁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남부권 관문공항이 필요하다는 숙원에 ‘멸치 말리는 공항’ 운운하면서 국토 절반에 살고 있는 지역민들을 모욕한 일부 언론을 지적하고, 가덕신공항 건설 확정에는 지역의 목소리를 전한 지역 언론의 역할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때만 해도 지나간 이야기인줄 알았다.
한 달 만에 상황은 급변했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국가계약법을 어기고 정부 입찰 공고에서 약속한 공사 기간보다 2년을 더 초과한 공사 기간을 반영해 기본설계를 내놓으면서 가덕신공항 공사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국토교통부가 가덕신공항 부지조성 공사 입찰을 처음 공고한 것이 지난해 5월이다. 세 차례나 단독 입찰을 했던 현대건설은 이런 조건을 잘 알고 수의계약에 참여하기로 해놓고는 6개월 만에 입찰 조건을 어긴 기본설계안을 들고 왔다.
국토부 장관은 현대건설의 공기 연장안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했지만, 2029년 12월 개항, 착공 7년 후 준공이라는 정부 약속을 믿고 기다린 남부권 국민들만큼 황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덕신공항은 참여정부 때 국가적 이슈로 등장해 정권이 다섯 번 바뀌는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정부 기본계획으로 확정된 국정 사업이다. 국가계약법도 무시하는 전례 없는 건설사의 배짱으로 대규모 국책 과제가 최소 1년을 허비하게 됐다. 국정 과제를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할 국토부도 당연히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이 사태에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와서 정부 기본계획이 틀렸다면 동남권의 30년 숙원 사업을 정부가 타당한 근거도 없이 추진했다는 말이다. 공기 연장이 필수라는 건설사 논리가 맞다면 정부가 1년 동안 전문가 용역을 거쳐 수립하고 고시한 기본계획을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대신에 엉뚱한 이야기들이 다시 흘러나온다. 가덕신공항 규모를 이야기하면서 ‘여의도의 몇 배’ 운운하는 것 정도는 수도권 중심 시각의 가장 가벼운 단계다. 정부가 약속한 국책 사업을 지연시키고 흔들어놓은 쪽은 따로 있는데, 일부 언론은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고 애초에 정치적으로 무리하게 추진된 일정이라고 화살을 돌린다. 더 나아가 가덕신공항 자체가 표퓰리즘으로 결정된 사업이니 이참에 사업 추진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운운한다.
기막힌 이야기는 더 있다. 인천공항은 2033년에 여객 수용이 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지방공항의 눈치를 보느라 5단계 확장의 적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내년에 수립될 제7차 공항개발종합계획에 가덕신공항 등 지방공항에 승객이 얼마나 분산되는지를 먼저 검토하겠다는 것을 두고 무분별한 공항 건설은 정치 논리고, 선거용으로 결정된 가덕신공항 건설은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해공항은 포화 상태를 넘어선 지 오래고, 정부가 남부권의 관문공항으로 가덕신공항을 추진 중이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
선거철마다 남발되는 정치적 SOC(사회기반시설) 공약의 예견된 실패라는 분석도 등장했다. 가덕신공항과 나란히 예시로 든 것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 후보가 나란히 들고 나온 수도권광역급행열차(GTX) 확대 공약이다. GTX A·B·C 노선의 신속한 추진과 수도권 외곽, 강원까지 가는 연장 노선에 더해 D·E·F 노선의 단계적 추진을 검토한다고 한다. 약 134조 원이 필요하다는데, 가덕신공항 건설 사업 예산은 13조 5000억 원이다.
동남권은 안전한 공항의 적기 개항을 바란다. 2029년 12월은 2030월드엑스포 유치를 전제로 당긴 일정이 맞다. 동시에 엑스포를 지렛대 삼아 지역과 국가가 함께 생존하기 위한 전략상 마지노선이기도 했다. 나라를 망치는 수도권 일극체제에서 탈피해 국가의 새로운 발전 축을 가동하기 위한 목표다. 노인 인구가 청년 인구를 역전한 부산에서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가지 않고도 미래를 계획하고 세계를 꿈꿀 수 있는 시간표다. 지금 이 순간도 인천공항을 오가는 데 연간 1조 원이 넘는 돈을 길바닥에 쏟고 있는 동남권 국민들의 불편을 해소할 적기다. 지금 당장이라고 해도 늦었다. 안전은 기본이다. 신공항 논의가 본격화된 계기가 2002년 129명 사망자를 낸 김해 돗대산 중국 민항기 추락 사고다. 무엇보다 동남권 국민들이 직접 이용할 공항이다.
정부는 동남권 800만 국민들과 정부 약속에 대한 신뢰를 최우선에 두고 안전한 공항을 제때 개항하기 위해 가능한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국민들도 대선 후보들 중 누가 국가균형발전에 진정성을 갖고 가덕신공항을 말하는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최혜규 사회부 차장 iwill@busan.com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