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이지스구축함은 우리 것!”… 거제·울산 1년 넘게 기싸움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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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8조 투입 한국형 구축함 사업
한화오션·HD현대중 경쟁 ‘치열’
방위사업청, 사업자 선정 못 해
미 해군 함정 시장 진출 걸림돌
동남권 경제 침체 우려도 ‘솔솔’

대한민국 해군의 미래 전략자산이 될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프로젝트가 사업자 선정 방식을 둘러싼 논쟁으로 첫 단추를 끼우지 못한 채 1년 넘게 표류하고 있다. 국내 해양 방산 양대 산맥으로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는 거제 한화오션(위)과 울산 HD현대중공업 사업장. 부산일보DB 대한민국 해군의 미래 전략자산이 될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프로젝트가 사업자 선정 방식을 둘러싼 논쟁으로 첫 단추를 끼우지 못한 채 1년 넘게 표류하고 있다. 국내 해양 방산 양대 산맥으로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는 거제 한화오션(위)과 울산 HD현대중공업 사업장. 부산일보DB

대한민국 해군의 미래 전략 자산이 될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프로젝트가 사업자 선정 방식을 둘러싼 논쟁으로 하세월이다. 주무 부처인 방위사업청이 망설이는 사이 경남 거제시의 한화오션과 울산시의 현대중공업이 1년 넘게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 해군력 증강 전략이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미국 방산 시장 진출은 물론, 낙수효과를 기대해 온 동남권 경제에도 먹구름이 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KDDX는 스텔스 기능을 갖춘 최초의 국산 이지스구축함이다. 선체부터 이지스 체계까지 모두 국내 기술로 완성한다. 방사청은 2030년까지 7조 8000억 원을 투입해 6000t급 KDDX 6척을 건조할 계획이다.

통상 함정 건조는 1단계 개념설계, 2단계 기본설계, 3단계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4단계 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하는 데, 남은 건 3~4단계다. 개념설계는 거제시의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이, 기본설계는 울산시의 HD현대중공업이 맡았다. 2023년 12월 기본설계가 완료돼 지난해 3단계에 착수할 예정이었지만, 지금까지 답보 상태다.

관건은 사업자 선정 방식이다. 현재 KDDX 건조 능력을 갖춘 조선소가 거제시의 한화오션과 울산시의 HD현대중공업 뿐인 상황이어서 유불리가 극명하게 갈린다. 원칙은 경쟁입찰이지만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는 예외적으로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와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복잡한 무기 체계와 전투 체계가 집약되는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는 연속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현대중공업도 관행대로 기본설계 수행사와 수의계약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화오션은 경쟁입찰을 주장한다. HD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전력 때문이다. 앞서 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해군본부와 방위사업청을 방문해 기밀 자료를 몰래 촬영한 뒤 이를 미인가 서버에 보관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방사청은 보안사고 감점 규정을 근거로 HD현대중공업에 올해 11월까지 무기 체계 제안서 평가에서 1.8점을 감점하기로 했다. 소수점 단위로 승패가 갈리는 수주전에서 이는 치명적인 페널티다.

하지만 수의계약이든, 경쟁입찰이든 한 쪽의 거센 반발이 불 보듯 뻔해 방사청도 갈팡질팡이다. 이런 상황에 나온 최적안이 ‘공동개발’이다.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함께 진행하고 나머지 5척도 적절한 비율로 나눠 갖는 방식이다. 이 경우 양사가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함정 건조 역량을 극대화해 개발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늦어진 전력화 일정도 만회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방사청은 이를 토대로 이달 중 공동개발 안건을 분과위에 상정하기 위해 양측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최종 합의안은 도출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방사청이 머뭇거리는 사이 차세대 함정 전력화 차질과 국내 방산업계 신뢰도 하락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악의 경우 세계 최대 해양 방산 마켓인 미 해군 함정 시장 진출에도 걸림돌이 될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곧 거제시와 울산시 뿐만 아니라 동남권 경제의 동반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당장 이들 두 조선소와 거래하는 지역 방산 관련 협력사만 해도 수 백여 곳이다.

지역 상공계 관계자는 “이대로 계속 방치하면 기대했던 낙수효과는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면서 “최적안이 나온 만큼 하루빨리 사업자 선정이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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