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그렇다면, 기꺼이 '양비론자'가 되겠다
김종열 정치부장
12·3 계엄사태 이후 여야 대립
치킨게임 하듯 극단 치달아
여야 어느 한 편에 서지 않은 채
양쪽 모두 지적하면 오히려 비난
윤 대통령 탄핵 선고는 물론
이재명 대표 최종심도 서둘러야
요즘처럼 양비론자의 설 자리가 없던 시절이 과거 또 있었던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12·3 계엄사태 이후 “너도 잘못이 없진 않잖아”라고 하면 ‘내란세력’으로 몰아가고, 굳이 “물론 상대의 잘못이 더 크지만”이라 말을 보태면 그땐 ‘양비론자’라 매질한다.
양비론을 비난하는 그 마음을 아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지금껏 아주 많은 경우에, 특정 사안의 논점을 흐리기 위한 수단으로 양비론이 악용돼 왔다. 많은 논쟁적 사안에서 양쪽 모두 잘못이 있다한들 늘 똑같은 무게를 가지는 것은 아닐 터, 그걸 마치 대등한 듯 ‘등호’를 붙여 뭉뚱그리는 것에 물론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큰 잘못 앞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잘못이라 해서 아예 없었던 것처럼 눈감아지는 것 또한 반대다. 계엄 전후의 상황을 두고 치킨게임처럼 마주 보고 달리는 여야 모두를 탓하는 것이 그렇게 비난받을 일인가. 그런데, 시대의 양쪽 어느 한쪽에 서지 않으면 양쪽 모두에게서 비겁한 회색분자 취급을 받는다.
사사로이 군대를 동원하고도 무렴하게 애국을 핑계 삼았던 위정자를 위해 법조문 속 ‘날’(日)의 개념조차 제멋대로 해석한 사법부를 욕할 땐 정의롭다 하더니, 야당 대표의 유죄를 무죄로 뒤바꾼 사법부를 탓하면 흰 눈부터 치켜뜬다. 사법부는 ‘마치 내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던데, 조작한 것’이라고 했던 야당 대표의 말에 대해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어떠한 단서나 근거도 없다’라고 판단했다.
노자의 도덕경에 이르길, ‘대교약졸 대지약우’(大巧若拙 大智若愚)라 했다. 뛰어난 솜씨는 서툰 듯 하고, 큰 지혜는 어리석은 듯 하다는 의미다. 무려 100페이지나 되는 판결문은 복잡한 법률적 수사로 빼곡하지만, 오히려 진실은 단순하다. 문제가 된 허위사실공표의 여러 핵심 중 하나는 그가 (과거 특정 시점에는) 몰랐다고 주장한 그의 부하직원을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에 있다. 그래서 그가 (예의 부하직원을 모른다고 했던 그 시점에) 부하직원과 함께 이국땅에서 골프를 쳤는지의 여부가 궁금한 거다.
그런데, ‘마치 내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던데, 조작한 것’이라는 말의 뉘앙스 뒤로 ‘(사진은 조작된 것이니) 나는 골프를 친 적이 없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었다고 느끼는 나의 뇌 구조가 이상한 것인가. 하긴, 우리는 ‘날리면’을 ‘바이든’처럼 들었던 수많은 사람의 청각 구조가 이상하다고 주장하는 세력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굳이 덧붙이자면, 그는 당시 예의 부하직원과 함께 골프를 쳤다.
나의 이상한 뇌 구조보다 더욱 나를 걱정스럽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더이상 사법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의 항소심 재판 결과가 불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항소심 판결이 잘못됐다고 하겠지만, 또한 누군가는 그것이 1심의 잘못을 바로잡은 판결이라고 반길 수도 있다.
두 판결 중 어디에 손 드는 것과 별개로, 하나의 사안에 대해, 심지어 새로운 증거나 진술도 없는 상황에서,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린 두 재판부를 지켜 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사법부의 판단은 그저 한 재판부의 생각일 뿐, 그것이 사회정의의 실현이라 믿을 수 있을까. 결국, 재판부가 바뀌면 판단 역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누군가는 재난영화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로맨스물을 좋아하는, 그런 취향의 차이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그런 재판부의 취향에 우리 사회의 정의를 맡겨야 한다. 공연히 마음 한구석이 얹힌다.
사사로이 위법한 군대를 동원했던 위정자의 탄핵심판 선고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 헌법재판관들의 취향 차가 엔간해선 좁혀지지 않는가 보다. 이번 선고만큼은 헌법재판관들의 취향이 부디 일반 대중의 상식에 가까운 것으로 모아지길 기대해보지만, 자꾸만 미뤄지는 것이 어째 영 불안하다. 소문도 흉흉하다. 인용에 손들 재판관 6명을 못 채워 선고일을 못 정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는가 하면, 헌법재판소 기능을 마비시키기 위해 2명의 재판관 임기가 끝나는 내달 18일까지 선고가 나지 않을 것이라는 괴담도 떠돈다. 헌재 선고가 4월로 미뤄지면서 3월 마지막 주 전국 지표 여론조사에서 헌재의 탄핵심판 과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일주일 전에 비해 7% 가까이 하락했다.
이제라도 하루빨리 위정자의 탄핵심판 선고가 이뤄지길 바란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야당 대표의 대법원 판결도 조속히 진행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그런 사람을 향해 양비론자라 손가락질한다면, 나는 당당하게 양비론자임을 자처하련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