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 칼럼] 위험하고 위태롭고 불안한 나라

강병균 대기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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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

뒤숭숭한 탄핵 정국 속 참사 잇따라
국회 마비·국정 공백으로 국가 위기

사법부 불신 탓 법치주의도 흔들려
각성·자정 통해 국민 신뢰 회복하길

헌재 판결 승복으로 후폭풍 막아야
안정과 통합 위한 총력적 대응 절박

대한민국이 위험하다. 잇단 어선 침몰, 무안공항 제주항공기 추락, 부산 반얀트리 리조트 공사장 화재, 사상 최악의 동시다발적 대형 산불 등등. 12·3 계엄령 이후 불안정한 탄핵 정국과 뒤숭숭한 사회 분위기 속에 소중한 생명을 마구 앗아가는 참사와 재난 발생이 잦다. 언제 어디서 또다시 인명 피해를 부르는 사고가 터질지 몰라 국민들 마음은 조마조마하다.

삼권분립에 입각한 국가 시스템도 위태롭기 짝이 없다. 국회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정파적 이익을 앞세운 정쟁 탓에 제 역할을 못한 지 오래다. 여야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는 아예 거리로 뛰쳐나와 헌재를 압박할 의도로 지지층 선동과 결집에 혈안이다. 여야 간 대화는커녕 대치가 격화해 경제와 민생의 안정을 위한 각종 현안 처리는 하세월이다. 특히 민주당은 당리당략이 농후한 쟁점 법안 통과를 강행하는 입법 독주와 정략적 탄핵 남발로 여권을 뒤흔든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24일까지 90여 일간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 체제로 운영되면서 미국 트럼프발 관세정책에 제대로 손쓰지 못하는 등 곳곳에서 국정 공백을 빚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사법부마저 불안하다. 사법부는 윤 대통령 탄핵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재판 과정에서 극단적인 보수·진보 세력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정치 사건 재판을 담당한 일부 법원이 최근 보안시설을 강화하려고 법원행정처에 추가 예산 6억 5300만 원을 요청한 데서 사법부의 불안감은 감지된다. 이는 올 1월 19일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한 극우 세력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한 폭력 사태의 영향이다.

지난 26일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린 서울고법 주변에서도 각각 유·무죄 판결을 촉구하는 양 진영 지지자들의 시위가 벌어져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더욱이 이날 판결은 정치 논쟁을 심화하며 사법부 불신까지 가중한다. 이 대표에게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중형을 내린 1심을 완전히 뒤집는 무죄가 선고된 것. 1·2심의 전혀 다른 판결은 재판부가 자신들 정치 성향에 맞춰 판결한 ‘사법의 정치화’란 게 여당 평가다. 야당은 ‘정치검찰’의 조작 수사, 억지 기소가 드러났다고 반박한다. 법원이나 재판부, 판사마다 들쭉날쭉한 ‘고무줄 잣대’는 오래전부터 국민의 사법 불신을 키워 온 주된 요인이다.

2018년 6월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이 재판 결과를 불신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당시 재벌과 국회의원 같은 기득권층에 대한 솜방망이 판결, 정권 편향적이거나 보수·진보 성향 판사에 따라 다른 판단, 대법원장의 사법행정 쇄신 의지 부족 등이 사법부 불신이 쌓이고 확산하는 이유로 꼽혔다. 그리고 서민들 사이에 진리처럼 여겨지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인식이 사법 불신의 심화에 한몫했을 테다.

앞으로는 사법 불신이 깊다 못해 법원 결정에 불만을 품고 불복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서울서부지법 군중 난동 사건이 단적인 예다. 존엄성이 생명인 사법부의 권위가 위협받는 꼴이다. 신뢰도가 더욱 높아야 할 광의의 사법부인 헌재에 대한 불신 역시 심각한 문제다. 코리아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 기관의 지난 17~19일 조사 결과, 헌재의 탄핵심판 과정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자가 앞선 조사보다 9%포인트 상승한 36%, 내 생각과 다르면 수용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42%로 나타났다. 탄핵 선고가 이뤄진 후 어느 한쪽 진영의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거센 저항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자기 요구와 다른 결과가 나오면 헌재를 박살 내겠다는 험악하고 위협적인 발언이 터져 나올 정도라 걱정스럽기만 하다.

사법의 신뢰 추락과 사법부 위협 행위는 정말 위험하다. 국가를 지탱하고 국민 권리를 보호하는 핵심 가치인 법치주의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따라서 사법부에 신뢰 회복을 위한 대오각성과 자정 노력, 독립·중립성 확립이 요구된다. 이런 차원에서 판사들은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판결해야 마땅하다. 헌재는 이의가 없을 만큼 엄정하고 신속한 심판을 통해 탄핵 정국의 국가적 혼란을 하루빨리 해소해야 할 것이다.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를 포함한 정치권은 법치의 위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야와 국민 모두 탄핵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경우 엄청난 후폭풍을 자초해 공멸할 수 있다. 여야는 나라가 무법천지로 전락하고 진영 갈등이 내란 수준으로 치닫는 걸 원치 않는다면, 당장 대립과 분열을 조장하는 정쟁을 접고 국가 및 사회 안정화와 국민 통합을 꾀하는 본연의 임무 수행에 나설 일이다. 엎친 데 덮친 국내외 악재와 중대 현안에 대해 시의적절하고도 실효적인 총력 대응이 절박하다.


강병균 대기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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