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오리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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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1965~)

세상이 산으로 가는지 바다로 가는지

통 모르고 살지만

무언가 쉼없이 태어나고 죽는다는 건

똑똑히 안다

사흘이 멀다 하고 문자가 오니까

이 정도만 알아도 사는 덴 지장이 없다

태어나고 또 죽어나가는

그 사이는, 원래

오리무중이니까

하지만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어떻게 살아갈까

어떻게 살다 죽었을까

가끔은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쪽도 깜깜

오리무중이니까

문자란 게, 워낙 엄지 첫마디처럼

짤막하니까

시집 〈아픈 천국〉(2019) 중에서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지만, 살아내야만 하는 현실의 방향이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이 와중에도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습니다. 누군가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죽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의 연민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가 포함된 감정입니다. 뭔가 자꾸만 피폐해져 가는 개인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온갖 소식을 짧고 간단하게 전해주는 스마트 폰. 예측할 수 없는 생과 사,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 죽은 자들이 산 자들에게 보내는 이 메시지는 세상이 아무리 오리무중이어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란 문구겠지요. 누군가의 삶에 대해 제대로 귀 기울여준 적이 있었던가 생각하게 됩니다. 삶은 길다 하더라도 항상 짧은 것이며, 절망 속에서도 언제나 조용한 희망은 있다고 한 어느 싯구가 떠오릅니다.

신정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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