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갑오징어와 을오징어
김언 (1973~)
둘은 일관된 앙숙이었다. 둘이 화해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제삼자가 나섰다. 제삼의 인물은 어느 편도 들 생각이 없었지만, 이쪽을 만나면 이쪽에서 저쪽을 만나면 저쪽에서 다른 말이 나오는 것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쪽은 이쪽대로 옳은 말이고 저쪽은 저쪽대로 사정이 있었으니 둘 다의 말을 종합하면 어느 쪽도 만족할 만한 말을 들려줄 수 없었다. 그래서 돌아오는 말이 너는 누구 편이냐? 둘 중 하나만 택하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그는 일관되게 제삼자였다. 소주 한 병에 오징어 두 마리면 충분한 사람이었다.
시집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2018) 중에서
이런저런 서류를 쓸 때마다 언제나 ‘을’이었던 나도 누군가에게 ‘갑’질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부터 하게 됩니다. 그나저나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자들이 화해의 물꼬를 터주려는 자에게 어느 쪽인지 채근하는 것도 어쩌면 폭력 아닐런지요.
편 가르기, 그것만이 풀어야 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개개인의 의사나 능력이 반영되지 않는 갑과 을.
세상에 대한 태도나 삶에 대한 방향이 하나의 방법이나 태도로써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게 옳은지 아닌지 고민스러워집니다.
번번이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제삼자가 되기도 합니다. 가벼워 물에 뜨는 갑오징어의 패각으로 배를 만들어 놀았던 어릴 적 생각이나 합니다. 신정민 시인